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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임 Mar 16. 2021

14. 새 것 아니고 새로운 것

지구를 위한 생일 선물


  1호가 4살 무렵이었나, 오빠가 명절에 내려오면서 조카가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다며 베이블레이드 팽이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팽이 경기장이 따로 있다는 말을 듣고 중고마켓에서 싸게 나온 경기장도 사서 갖췄다. 그때는 팽이를 잘 모를 때라 그런지 별 관심이 없어서 팽이와 경기장은 줄곧 창고방에 갇힌 찬밥 신세였다. 요즘 1호는 팽이에 푹 빠져있다. 유치원 마치고 집에 오면, 밥 숟가락 놓고 나면 , 퇴근해서 문 열고 들어오는 아빠를 보기만 하면 "우리 팽이 경기하자!"를 외친다. 


  역할극에 쥐약인 나는 뭔가 어색한 말을 계속해야 하는 그런 놀이보다 이기고 지는 것이 분명하고 나도 약간 흥분에 휩싸여 '함께 놀 수 있는' 팽이 경기가 훨씬 수월하긴 하다. 어제도 팽이 경기장을 사이에 두고 숨 막히는 팽이 경기가 펼쳐졌다. 팽이를 돌리는 사이사이 아이는 동영상에서 봤다며 새로운 팽이들을 열심히 설명하기도 한다. 스프리가 레퀴엠은 어쩌고 저쩌고, 블러드 롱기누스는 어쩌고 저쩌고, 비트 쿠쿨칸은 이렇고 저렇고... 내 눈에는 그저 빨간색, 파란색, 좀 큰 거, 좀 작은 거 이런 수준으로 밖에 구분이 안 되는 팽이들을, 이름도 어려운 그것들을 어떻게 다 기억하고 특징들을 설명해 내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열심히 팽이를 돌리다가 내가 물었다.


나 : 여름이는 요즘 팽이 놀이가 제일 재밌나 봐?

1호 : 응. 재밌어. 

나 : 여름이는 새로운 팽이 안 갖고 싶어?

1호 : 갖고 싶지.

나 : 그런데 왜 엄마한테 사달라고 안 해?

1호 : 사달라고 말해도 어차피 안 사줄 거잖아!

나 : 흠.. 그건 그렇다. 

1호 : 사주지도 않을 거면서 왜 물어보는데!! 엄마는 내가 장난감 사달라고 해도 하나도 안 사주면서! 비싸다고 안 된다고 하고, 필요 없다고 안 된다고 하고, 집에 있다고 안 된다고 하고.. 그럴 거잖아.


  1호는 말을 하다 보니 그간 서운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는지 약간 마음이 상한 듯 보였다. 옆에서 아빠가 아이에게 다시 묻는다. 


남편 : 여름이는 생일이 좋아, 크리스마스가 좋아?

1호 : 크리스마스.

나 : 왜? 산타할아버지가 여름이 마음에 딱 드는 선물을 주시니까?

1호 : 응!


나와 남편은 그저 웃는다. 


  1호 생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3월에 들자마자 생일 선물 뭐 사줄 거냐며 매일같이 물어본다. 뭐 받고 싶은지 얘기해 보라고 하면 어느 날은 변신로봇을 말했다가 또 어느 날은 팽이를 얘기했다가 또 어느 날은 세상 듣도 보도 못한 것을 이야기한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이것저것 사내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이도 안다. 본인이 누울 자리가 어디인지, 어디로 다리를 뻗어야 하는지. 


  아이 생일 선물은 벌써 준비가 되어 있다. 오래전부터 이야기했던 변신 로봇을 준비해 놓았다. 새것으로 사려다가 중고마켓에 아주 저렴하게 올라온 것이 있어 얼른 사두었다. 아이 생일 선물 사주라며 아이 할머니께서 맡기신 돈으로 팽이도 사두었다. 로봇이나 팽이 같이 시기와 유행을 타는 장난감은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선뜻 사주지 않는다. 그리고 가급적 새 것보다는 중고를 알아본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냥 버려지면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 물건을 다시 사용하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다. 아이와 함께 마트에 가서도 킨더조이나 뽑기 같이 1회성으로 끝나기 쉬운 플라스틱 장난감이 갖고 싶을 때는 신중을 기하도록 연습을 시킨다. 꼭 필요한지, 얼마나 가지고 놀 것인지, 이것이 버려졌을 때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한 번 더 고민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 살 때보다 그냥 두고 오는 때가 많아진다.  


  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은 보고 보고 또 봐도 배부른 장면이다. 나도 아이와 마트에 갈 때마다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을 주저 없이 사주고 싶고, 새 장난감 사며 신나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끼는 평범하디 평범한 엄마다. 가끔, 아주아주 가끔은 그렇게 기분을 내보기도 하겠지만 인생이란 것이 기분대로만 살아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원할 때마다 새 장난감을 갖는 기쁨 말고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많은 부모이기도 하다. 늘 욕구와 이성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하며 줄타기하는 것이 부모 된 자의 숙명이다. 


  이제 1호는 물려받은 옷이며 신발, 장난감이 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새 물건의 상징인 택과 멋진 상자, 예쁜 포장 봉투가 없는 것은 누군가의 손을 거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아직은 꼭 새것을 원하지 않는다. 사용한 흔적이 있을지라도 '새로운' 것이라서 좋다. 며칠 전 사촌 언니가 한가득 가져다준 옷 보따리 속에 있던 형이 신었던 신발도 정말 멋지다며 신고 나섰다. 기특하다. 본인이 건강한 지구를 만드는 데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까. 오늘 집에 돌아오면 꼭 칭찬을 해줘야겠다. 어린이로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내고 있는지 꼭 알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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