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홍 구두 Oct 10. 2018

저만 바쁘다고 끼어들기 하다 망신당하다

              

  선배 문인이 문학상을 받는 날이었다. 어쩌다 보니 시간이 촉박하게 되어버렸다. 시상식에 맞추어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조마조마하였다. 차를 몰고 나가니 이미 퇴근시간까지 겹치는 바람에 도로는 차들로 빽빽하였다. 가뜩이나 바빠 애가 타는데 차까지 막히니 속이 속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차 안에서라도 뛰어가고 싶었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고가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터널로 진입을 하여야 했다. 터널만 지나면 밀리는 구간이 없어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까스로 밀린 지점을 벗어났다. 차들이 싱싱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임박하더라도 시상식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터널 진입로로 들어서는 차선으로 바꿔야 할 지점에 가서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터널로 들어서려는 차들이 수백 미터나 밀려 있는 것이 아닌가. 첩첩산중이었다. 옆 차선의 차들은 쌩쌩 달리는데 터널로 진입하는 차선만 꼼짝 않고 밀려 있다니.  도저히 시상식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순간 반짝하고 한 생각이 떠올랐다.    





  평소 한 모범 하는 성격이지만 사정이 사정이니만큼 한 번만 눈 딱 감고 끼어들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홱하고 차선을 바꾸었다. 그리고는 엑셀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길게 늘어서서 기다리고 있는 차들 옆에 텅텅 비어 있는 차도를 타고 터널 진입로 근처까지 쌩쌩 달려갔다. 그리고 끼어들 만한 곳을 찾아 비상등을 깜빡이며 기회를 엿보았다. 마침내 앞 뒤 차의 간격이 벌어진 곳을 발견하고 서서히 끼어들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빨간 불이 켜진 막대 등을 든 경찰이 터널 진입로에 서서 차량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막무가내로 끼어들려고 하던 나를 발견한 경찰은 호각을 요란하게 불며 나를 향해 차를 빼라는 손짓을 했다.     


  한 모범 하는 성격에 여러 사람들이 차 안에서 쳐다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시간이 없지 않은가. 부끄럽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사정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혹시 사정 이야기를 하면 들어줄지 누가 아는가. 부끄럽고 뻔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운전석 유리창을 내리고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저기요 경찰 아저씨, 지금 너무 바쁜 일 때문에 그런데 한 번만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됩니다. 여기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다 바쁜 사람들입니다. 안 바쁜 사람 없습니다. 그러니 끼어들면 안 됩니다. 차 저쪽으로 빼세요.”

  “그래도 한 번만 봐주세요. 중요한 자리인데 이미 시간이 지나서 그럽니다.”

  “아니 안 된다고 하는데 왜 이러십니까. 계속 이러시면 범칙금 발부합니다. 그렇게 할까요?”    


   결국 터널로 들어가지 못하고 말았다.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직접 대놓고 보는 사람은 없을지라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는 수없이 빙 둘러서 가야 하는 길로 차의 방향을 틀었다. 터널은 산을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인데 비해 기존의 길은 구불구불 돌아서 가야 하는 길이니 시간이 배로 든다. 조금 빨리 가려다 왕창 늦게 되어버린 것이다. 식이 거행되는 장소에는 시간이 훨씬 지나서 도착했다. 이미 시상식은 끝이나 아쉽게도 선배가 상을 받는 순간은 지켜보지를 못했다. 하지만 기념촬영은 함께 할 수 있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는데 규범을 어기면서 조금 더 일찍 가겠다고 얄팍한 꼼수를 부리다가 보기 좋게 당한 것이었다.            

이전 05화 남의 집 쓰레기통을 자기 것인 줄 아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