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보는 유럽의 성당들은 그 자체가 예술 작품입니다. 오르기도 힘이 들 것 같은 높은 천장에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화가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실내와 외벽 또한 뛰어난 조형물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한 편의 종합 예술 작품입니다. 똑같은 종교적 의식이라도 그런 곳에서 행하면 더 큰 영적 감동으로 와 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볼 때마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벼르고 별러 떠난 여행지에서 그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행하는 미사에도 참여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의 성당을 직접 보게 되니 가슴 가득히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행해졌던 슈테판 성당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외관과 정교한 장식, 오랜 역사를 지닌 대성당에 들어섰다는 사실만으로도 막연한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모차르트가 이 슈테판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생각하니 마치 모차르트와 내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서로 교감이 이루어지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마침 미사가 막 시작되고 있었기에 그 역사적인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는 행운도 얻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 대성당에서 행하는 미사라 꽤 큰 울림을 얻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여느 미사와 다르지 않아 조금 실망감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눈을 크게 뜨고 대성당의 특징이 될 만한 모습들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카메라 셔터를 쉴 새 없이 눌렀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슈테판 성당에서 느낀 그 설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슈테판 성당을 나와 몇 걸음 걷지 않은 곳에 또 다른 큰 성당이 떡 하니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까. 역시 탄성을 지르며 성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유럽의 성당들은 하나같이 웅장하고 화려한지 그 성당 역시 아름다운 그림과 조형물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이번에도 사진을 찍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 또 나와 길을 걸어가는데 여기저기서 웅장한 건물의 성당들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슈테판 성당을 보고 느꼈던 탄성은 연달아 나타나는 커다란 건물의 성당들에 의해 사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시쳇말로 한 다리 건너 성당이니 짧은 시간에 식상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식상했을 뿐만 아니라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웅장한 성당들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서 옛날 유럽에서 행해졌던 가톨릭의 부패했던 역사적 사실들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교황의 절대 권력과 면죄부를 팔아 부를 축척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휘둘렀던 가톨릭의 역사적 폐단들 말입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성당을 짓기 위해 들어갔을 비용과 또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며 거기에 딸린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종교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돈이 연관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점을 이용하여, 종교의 이름을 앞세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사욕을 추구하는 폐단이 있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가톨릭도 한 때 얼마나 부패했으면 종교 개혁까지 일어나 오늘날 신교 구교로 갈라져 모양새를 구기고 있습니까.
이론은 대개 실천하기 힘든 무지개와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가 생활화되어 있는 나라들도 전쟁을 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가난으로 죽거나 고통을 받는 것 또한 여느 나라와 다르지 않습니다. 거대한 종교적 시설물들이 많은 것과 평화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거대한 건물을 가진 종교적 시설들은 약자가 다가가기 힘든 저 높은 곳입니다. 일요일, 이름 있는 큰 성당이나 교회 근처에 한 번 가 보십시오. 고급 차량들과 잘 차려입은 신자들이 대부분인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는 굳이 웅장한 건물로 위상을 내세우지 않아도 종교 자체만으로도 위엄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실용성만 가진 시설을 지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한다 하는 종교는 양적인 팽창에 더 공을 들이는 것 같아 종교의 본질에 회의가 들 때도 많습니다. 커다란 건물의 위상은 그렇잖아도 움츠러드는 약자에게 더욱더 다가가기 어려운 곳처럼 여겨지게 합니다.
가끔 허드레 소리로 종교도 사업이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 기준에서 보면 유럽의 나라들은 종교 사업이 아주 잘 발달한 나라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교 역시 사람 속에서 존속되는 것이기에 경제적 요인을 빼놓고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종교가 가진 특성은 선과 영적인 면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인간들의 탄생과 죽음, 사후 세계에 대한 알 수 없는 원초적 불안의식이 절대자를 상정하여 신봉하게 되었고, 더불어 선하게 살면 행복한 사후를 보장받게 된다는 줄거리를 가진 종교를 만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럽에 있는 나라들은 정치와 경제, 문화적 · 역사적으로 많은 부분 가톨릭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저기에 성당이 너무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가톨릭은 일정한 조건이 되어야 성당을 새로 지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신자 수가 늘어나 성당을 새로 짓지 않으면 안 될 때만 짓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여행지에 머무르던 어느 날 저물녘, 근처에 있는 성당에서 울리던 종소리를 들을 때 떠올랐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