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입는 곳은 주제가 한정되지 않은 세상의 온갖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매일이다시피 보는 사람들끼리 잠깐이지만, 때로는 우스갯소리도 하고 때로는 가슴 아픈 사연도 풀어놓으며 서로 웃고 다독이는 그 곳은 요샛말로 힐링의 공간인 거죠.
어떤 날은 여물대로 여문 봉숭아 씨앗주머니 터지듯 웃음보가 터져 한바탕 웃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잠깐이지만 서로 공감의 추임새를 주거니 받거니 하기도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한 사람이, 종종 시부모님을 응원하는 문자를 보내는 자기 며느리를 자랑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곧이어 또 다른 사람이 며느리 이야기의 바통을 받았는데 실제 있었던 일이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아들이 결혼할 사람이라며 여자 친구를 데려 왔답니다. 그런데 아들의 어머니는 며느리 감으로 데려온 아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적지 않은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정해 주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상대와 고분고분 결혼하던 시대의 아이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부모의 심한 반대에도 어찌어찌하여 결혼을 하기로 하였답니다.
드디어 결혼식 날짜가 다가와 식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결혼식 순서에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는 차례가 알다시피 있지 않습니까. 신랑 신부가 부모님께 다가와 예를 마치고 난 직후였다고 합니다. 신부가 시어머니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고 합니다.
“어머님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심하게 반대하셨죠. 각오하세요. 이제부터는 제가 두고두고 그 복수를 할 거예요.”
며느리 감으로 못 받아들이겠다는 반대에 부딪치며 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었기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낳아준 시어머니에게, 그것도 결혼식을 올리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젊은 사람이 당차도 너무 당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은 너도 나도 시어머니 될 사람이 앞으로 며느리한테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당하겠는데 하며 혀를 찼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아주 극적인 반전이 말입니다. 며느리로부터 한 방 먹은 것 같은 말을 들은 시어머니가 조용히 일어섰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이크를 들고 하객들을 향해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 저희 혼사를 축하해 주시기 위해 참석해 주신 하객 여러분 죄송합니다. 오늘 이 결혼식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음식은 미리 잡아둔 곳에 가서 드시고 축의금은 나가실 때 돌려드릴 테니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결혼식은 남남인 신랑 신부를 비롯한 양가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알아가고 이해하기 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신성한 첫 발자국을 떼는 것을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예식이 아닙니까. 그래서 초대한 하객들이 보는 앞에서 두 혼주가 조심스럽게 화촉의 불을 붙여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될 신랑 신부의 앞길을 밝히며 힘을 실어 줍니다. 또 하객들은 신랑 신부가 살아갈 날들이 행복으로만 차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결혼식 날 만큼은 아낌없는 축하와 박수를 보냅니다.
결혼을 함으로써 남남이었던 신랑 신부를 비롯한 양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때로는 깎이기도 하고 때로는 마모되기도 하면서 실질적인 가족이 되어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출발부터 같은 극의 자석이 부딪치듯 서로 강하게 튕겨내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고 말았으니 신랑 신부를 비롯한 양가 가족과 친지들의 놀람은 물론이고 하객들마저 믿을 수 없는 드라마 같은 일에 어리둥절하였다고 합니다.
비용은 비용대로 날리고 힘들게 꿈을 이룬 신랑 신부도 헤어지게 되었고, 덤으로 하객들에게 못 볼 모습까지 보였으니 서로 손해와 상처만 남게 된 것이 아닐 수 없었죠. 시어머니는 자신으로 인해 고개 숙인 아들을 보며 가슴 아파할 것이고 며느리는 젊음의 치기를 참지 못한 대가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눈물을 흘리는 참담한 현실을 만들고 만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쉽게 서로 조금만 참지 하면서 혀를 찼지만 실제로 상처를 받은 당사자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조금만 물러나 생각을 했더라면 되돌리지 못할 상황을 만드는 것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