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홍 구두 Nov 07. 2018

우리는 외딴 바다로 가서 ​울분을 토한다


  글 모임 회원 가운데 웃음박사가 있습니다. 직업이 사람을 웃기는 것인 그가 언젠가 문학기행을 갈 때 차 안에서 여러 사람을 웃기고 난 후에 한 이야기입니다. 고함을 지르거나 욕을 하는 것도 화병을 예방하고 고치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위 글을 쓴다는 사람들이 대놓고 욕설을 할 수는 없으니 점잖게 욕하는 방법이 있다며 가르쳐 주었습니다. 역시 웃음을 전문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점잖게 욕하는 방법도 웃음을 자아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가 가르쳐 준 점잖게 할 수 있는 욕설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에라이 신발끈, 에라이 십팔 색 크레파스, 에라이 조카 색연필 등입니다.    


  물론 항간에는 돌려서 하는 욕설로 시베리안 허스키와 같은 말들이 있긴 하지만 그가 가르쳐 주는 것을 들으며 얼마나 포복절도했는지 모릅니다. 살아가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크든 작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사람살이 아닙니까. 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말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스트레스를 적게 받으며 사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기필코. 단연코 말입니다.    




  그러니 기회가 되면 나도 웃음박사가 가르쳐준 대로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땅한 장소가 없어 고민이었습니다. 고함을 지르는 것은 아파트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옷장 속에 들어가 이불에 얼굴을 묻고 고함을 지른다면 밖으로 새 나가지 않을 것 같아 언젠가 한 번 시도해 볼 생각을 먹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만든 모임 날짜가 마침 다가왔습니다. 모임 자리에서 지난번 문학기  들었던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손뼉을 딱 치며 자기는 벌써 그 방법을 사용해 보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깜짝 놀라 어디서 해보았느냐며 좀 가르쳐 달라고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방법은 의외로 쉬웠습니다. 사람이 드문 외딴 바닷가에 가서 있는 힘을 다해 자기에게 화를 돋운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욕이란 욕을 다 퍼부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절을 찾아가 부처님께 절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본의 아니게 욕설은 하였지만 행위 자체에 대한 나쁨을 알기에 나름 속죄하는 절차를 밟았다고나 할까요.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라고 했습니다. 욕을 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사람의 체험담이었던 것이죠. 상상해 보세요. 평소에는 차마 입에 담지조차도 못하는 그 거창한 욕설들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내뱉는 장면들을 말입니다.     



  “야 이 XX야, 니가 그렇게 잘 났니. 니가 뭔데 나를 이렇게 괴롭히냐고, 니 눈에는 내가 뭐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도 한 때는 잘 나갔거든. 야 이 XX야, 그러니 앞으로는 그러지 마. 어차피 너라는 인간도 별수 없는 똑같은 인간이야.”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한 목소리로 그렇게 좋은 방법을 왜 지금 이야기하느냐며 저마다 눈을 흘겼습니다. 그러면서 가까운 시일에 날을 잡아 사람이 드문 외딴 바다로 당장 가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왕이면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김밥과 간식도 싸가지고 가자고 했습니다. 가서 각자 마음에 화를 돋우게 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마음껏 욕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가지고 간 음식을 맛있게 나눠 먹자고 했습니다.     




  상상만 해도 마음이 뻥 뚫릴 것 같지 않습니까. 먼 대양에서부터 받은 화를 삭이기 위해 애꿎은 기슭을 향해 속내를 쏟아내는 파도처럼, 속을 있는 대로 뒤집어 놓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온갖 욕설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하루라도 빨리 외딴 바다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또 한바탕 실컷 웃었습니다.     


  혹시 그대들이 어느 한적한 바다를 지나게 될 때, 삼삼오오 여자들이 모여 포효하듯 욕설을 내뱉는 모습을 보더라도 그런 속내가 있으니 돌을 던지지 말기를 부탁합니다. 우리는 곧 외딴 바다로 갈 것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