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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밤 과자점 Jul 22. 2021

다시 학생이 되어 보니

배움에는 때가 있다

 감개무량하게도, 다시 학생증(Student ID card)을 받았다. LSE ID가 생겼고,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도 학생이면 6개월이 무료이고, 학생 요금으로 미술관 회원권을 끊을 수 있다. 각종 온라인 쇼핑몰과 오프라인 상점에서 학생 인증을 하면 할인을 해주는 다양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비싼 물가를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내게 '학생입니다'라는 말은 그런 자잘한 물질적 혜택이 주는 기쁨보다 학생 신분이 주는 달콤함이 먼저였다. 그 옛날 마땅히 학생이어야 해서 학생일 때는 몰랐었다. 어렸기도 했고, 그저 남들도 다니는 학교였기 때문에 '배우는 중'인 신분이 가질 수 있는 면죄부를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사회에 던져지고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거나 혹은 버텨내다가, 다시 돌아온 학생이라는 신분이 주는 안락함의 첫맛은 달콤했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것,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내가 아닌 제삼자 혹은 내가 몸 담은 조직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과 싫어도 계속 봐야 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이 맞추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등등등. 처음에는 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내게 찾아온, 오래간만에 느끼는 해방감에 심취하였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앞이 있으면 뒤가 있고,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삶이다. 학생이라고 '자유'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인이었다가 학생이 되어 보니 사회인으로 살 때 내가 얼마나 '생각하지 않고' 그저 살아만 왔는지, 그리고 귀한 학생이었던 시절에는 정작 '했어야 했던 고민들을' 하지 않고 살았는지를 시시 때때로 깨닫고 있다. 유학을 온 덕분에,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기에 가능하기도 했고, 한국의 교육 환경과 사뭇 다른 교육 철학을 접했기 때문에 더 크게 느꼈다. 내가 다니는 LSE는 런던 내의 다른 학교의 커리큘럼에 비해서도(물론 옥스퍼드나 캠브리지와 비할 수는 없겠지만) 매우 자유 방임주의적 교육 시스템이었다. 구하는 자가 얻을 것이고, 스스로 돕는 자가 도움을 받는 시스템이었다. 비록 온라인 수업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교수님들과 조교들은 열정적이었다.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해주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질문과 잘못 해석하였거나 간과한 부분이 있는 의견에도 존중의 뜻을 표현해 주면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모든 열정적 피드백은 하나의 전제가 필요했다. '준비되어 있는가'라는 전제.

LSE 건물, LSE ID, 수업 자료 사이트(Moodle)

 하나의 수업을 듣기 위해 매주 필수로 읽어야 하는 논문이 있고, 더 읽으면 좋은 논문들이 있다. 관련된 사례들을 찾아 읽고, 미리 질문을 보내거나, 발표를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는다. 스스로 고민하여 준비하는 사람은 그만큼 얻어갈 것이 많아지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 대학 수업을 돌아보면, 강의 시간에 교수님의 일방향적인 지식 전달이 중점이었다. (부디 지금은 다르기를 바란다) 그러나 LSE의 모든 수업은 지식 전달성의 강의 비중이 매우 적다. 사전 녹화된 강의를 보긴 하지만 대부분 30분 이내이고, 실제 수업은 Q&A로 운영되고, 세미나 시간은 소그룹 토의와 읽은 논문들에 대한 세밀한 논쟁들이 오고 간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가면 일주일에 3시간가량 주어지는 수업 시간을 그저 허공에 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움'은 실수해도 되는 면죄부일지언정,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는 될 수 없다. 요즘 대학생들은 아니라던데, 내가 다닐 때만 해도 자체 휴강이 낭만이라 생각하고, 대학생활의 꽃은 밤에 학교 앞 술집에서 피었다. 도서관이 아니라. 그러니까 그 시절에는 몰랐다. 내가 지금 어떤 것에 도전해야 하는지.


 학생이 해야 할 가장 큰 도전은 결국, 사회에 던져졌을 때보다 더 치열한 시간 관리와 자기 관리였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는 결국 온전히(누군가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물론 논문에는 끌려다닐지언정) 나의 계획과 관리 하에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은 '고민하는 힘'이다. 논문을 읽을 때, 까만 것은 글자요 하얀 것은 여백이니, 이 여백에 술잔을 동동 띄울 것이 아니라, 비어있는 여백까지도 고민하며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 두 도전에서 끊임없이 시도하고 또 수없이 실패했다면, 나의 사회생활은 어쩌면 더 명확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저 편안하게 사회의 잣대에서 무리 없이 평탄한 삶을 사는 것에 급급한 지금의 내가 아닐 수 있지 않았을까? 늦은 나이에 유학을 왔고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제는 마흔이라, 읽어도 예전처럼 머릿속에 남지를 않고, 자잘한 글씨를 하루 종일 보는 것도 피곤한 저질 체력을 마주하게 되니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20대 때 이렇게 노력하고 고민했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을까. 소크라테스가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문답법의 의미를 그때 알았더라면. 당연히 했어야 했을 질문을 오랜 시간 두고 고민했더라면, 지금의 내가 주어진 질문과 문제 해결하기 급급하지 않고, 사소한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내가 다시 한번 말하는 바, '배움에는 때가 있다'. 그리고 동시에 '배움에는 끝이 없다'.

가장 배우기 좋은 때를 놓쳤지만, 그렇다 하여 배움을 놓아서는 안된다. 늦은 나이에 유학을 온 덕분에, 그래도 나는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했을 것들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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