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13번지 7화. 증조할머니가 된 장골댁
@류병석 지음
52세, 현 70세.
어느날 갑자기 자전적 소설을 쓰시겠다고 선언한 촌부.
과연 아버지는 무엇을 기록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를 기억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무엇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게 장골댁의 손자이자 며느리의 아들이 입양된다.
그 사람이 바로 나의 아버지, ‘태’이다.
큰아들은 대를 이어야 하니 안 되고 그 집도 둘째는 병약해서 안 되고 셋째는 머리가 좋아서 아까워 안 되고, 결국 8살짜리 막내가 낙점되었다. 장골댁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죽골로 온다. 며느리가 있었지만 모든 집안일을 혼자서 좌지우지하는 장골댁이었다. 무소불위다. 아들이 아니라 손자로 데려왔지만, 며느리와는 합의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혼자서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럴 법도 하다. 며느리는 시집올 때부터 병약해 사람 구실을 못 할 것 같았다.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아들이 더 병약하니 어찌하든 짝을 지어 손자를 볼 목적이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을 얼마 못하고 아들이 저세상으로 가버리고 며느리도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으니 서둘러 양자를 들인 것이다. 손자 태는 장골댁의 새로운 활력소가 됐다.
저승을 가더라도 조상님들께 이승에서 열심히 살고 할 도리는 다하고 왔다고 큰소리칠 수 있었다. 이제 대를 이을 손자가 생기지 않았는가. 장골댁은 기세등등 더욱더 열심히 일했다. 즐거운 일도 많아졌고 자랑거리도 늘어났다. 하지만 얼마 후 병약하고 골골대던 며느리는 더 못 버티고 저세상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태는 정들 틈도 없이 양어머니가 저승으로 가버렸으니 할머니 품으로 들어가서 장골댁을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외로움을 달래며 살았다. 이제 남은 사람은 장골댁과 양손자인 태뿐이었다. 마음은 모든 걸 다 해줘도 아깝지 않았지만,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서슬 퍼런 일본놈들 세상이 아니든가. 그 시대에 산골에서는 교육기관 이래야 글방뿐이었다. 그것도 몇 동리에 하나밖에 없었는데, 장골댁 사정으로는 태를 글방에 보낼 형편이 못 됐다.
조칼 뻘되는 사람에게는 양자 삼아 잘 먹이고 공부시키겠다며 구워삶아 빼앗아 오듯 데려왔지만,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서당을 보내려고 해도 가까운 곳에는 없어 몇 동리 너머로 유학을 보내야 하는데 그만한 여력이 안 됐다. 장골댁이 아무리 여장부라지만, 산골에서 둘이 살며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여덟 살 ‘태’는 학교는 고사하고 지게 멜빵을 지고, 산으로 일을 하러 가기 시작했다. 어린 태가 그때 무엇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무엇을 알았겠는가. 그저 어른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는 수밖에. 그렇게 양 할머니인 장골댁과 태는 죽골에서 한해 한해 보내면서 성장해 갔다.
십수 년의 세월이 흘러 태는 그럴듯한 청년으로 변했다. 장골댁은 대를 공고히 다지기 위해 태를 장가보내기로 마음먹고 여기저기 매파를 놓았다. 일본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을 때라 결혼 안 한 처자들을 잡아간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돌았다. 과년한 딸을 가진 부모들은 서둘러서 딸들을 출가시키려 했다. 결국 50리 밖에 있는 원골에 사는 열일곱 살의 처자가 매파를 통해 태와 혼인을 하게 됐다.
장골댁은 손자며느리도 보고 세상을 다 얻은 것마냥 기뻤다. 지난 고생을 다 잊어버리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걸걸한 성격에 누구와도 친화력이 있는 여장부 장골댁이 아니든가. 이제는 식구가 하나 늘어서 셋이 되었다. 산골 농경사회에서는 일꾼 하나 느는 게 얼마나 가계에 보탬이 되는가.
게다가 손자며느리를 들인지 일 년이 지나 경사가 났다. 손이 귀한 집에 새 생명이 태어난 것이다. 장골댁은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손이 귀해서 양자를 들여서 겨우 대를 잇게 됐는데 증손이 태어나다니 무엇이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장골댁은 40대 후반에 증조할머니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