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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19. 2020

어쩌면 해피엔딩

20대의 기록 #6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 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슬아슬하게 필기에는 합격했지만, 당락을 뒤집었어야 할 면접장에서 시원하게 대답 한 번 못 하고 구차한 눈물까지 보였다. 아이를 데리고 와 잠실 집에서 지내던 중, 평일 대낮에 낮잠을 재우다, 한 줄 짜리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냥,

슬펐다.


두드려도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내 앞의 문이, 이제는 시멘트를 부어 굳어진 벽처럼 느껴졌다. 온 세상 평화가 다 깃든 얼굴로 잠든 아이 옆에, 아무렇게나 너부러져 눈물만 주룩 주룩 흘렸다. 이번에도 불운은 먹구름처럼, 내 머리 위에만 머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곧장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일상이었다. 세 살짜리 아이에게 엄마를 헤아리는 자비가 있을 리 없었다. 이글대는 뙤약볕 아래 차양막을 씌운 세발 자전거를 밀어 놀이터로, 키즈 카페로, 마트로, 아파트 분수로. 구슬땀을 흘리고 돌아오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쉬어가기. 아주 단순한 하루들을 지나며, 열패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치열한 육아의 일상이 나를 구원해 준 셈이다.

준비되지 못한, 철 없는 엄마에게도 아이의 존재는 결코 무겁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순간을, 무너지지 않도록. 네가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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