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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 Sep 22. 2020

어른이 될 시간

선물 같았던 여행의 끝에는 청천벽력 같은 엄마의 사고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원이를 맡아 주시기로 했던 며칠을 쪼개어 시부모님께 아이를 보내고 지인들과 떠난 제주 여행에서 엄마는 낙상으로 골절상을 입었고 공항에서 곧장 엠뷸런스를 타고 서울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여행을 망치게 될까봐 사고 소식도 전하지 않은 엄마 덕분인지, 때문인지로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린 직후에야 엄마의 안부를 전해들었고 곧장 엄마가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갔다.




몇 년 전만 해도 언제나 좀 더 분명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사소하게는 슈퍼에서 흙 묻은 대파나 손질 안 된 오징어를 자신있게 척척 집어 담는 것이라든지, 한번 맛보고 가시라는 시식코너의 러브콜을 받는 것만으로도 나도 제법 어른이 된 것 같은, 묘한 의기양양함을 느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확실히 더 어른 대접을 받게 되었다. 어디 가면 일단 어머님이고 어린이집에선 학부형이고 남편이랑 집 보러 다닐땐 또 사모님이다. 다만 엄마가 되었다는 것은, 사모님이 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무겁고, 엄숙한 책임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걸맞는 어른으로 발맞춰 성장하지 못한 채 여전히 허덕이기 바빴다.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일말의 죄책감이나 간신히 붙들고 사는 정도였으니까.

아직 제대로 된 부모노릇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달랑 하나 뿐인 아이 엄마 노릇만으로도 벅차다고 엄살부리며 살았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어느덧 내 부모님이 훌쩍 나이가 들어 계셨다.

엄마가 허리를 크게 다치셨다는, 날벼락이 우리집에 떨어진 후 오늘까지 2주. 그 2주 전과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다. 그럴 수밖에. 여태껏 살면서 엄마가 오랫동안 아프거나 살림을 떠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엄마가 나의 보호자이지 않은 적은 더구나 한번도 없었다. 내가 엄마가 되었어도 엄마는 늘 그렇게 내 엄마로 계셨다. 시어머님 생신상을 차리고 남편 밥상은 차려주었어도, 아부지가 드실 식사는 어설프게나마 차려 보았어도, 엄마가 계시는데 내가 엄마 밥을 차려 드린 적이 있었던가. 부끄럽게도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30년을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살았으면서. 고작 2주 동안 밥 차리는 일이 힘들어서 후라이팬 고무 태운다는 엄마의 잔소리에 그만 빽하고 짜증을 내버렸다. "엄마! 나도 힘들어!" 엄마도 그런 딸이 괘씸하셨는지, 너 아니어도 굶어 죽지 않으니 다 그만 두라며 방으로 들어가 다음날까지 문을 꼭 닫고 계셨다. 그것 또한 일전에는 보지 못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나도 서운하기는 했다. 해주는 음식마다 맛이 없다고 타박만 하고. 맛깔스런 음식이나 있어야 입맛이 날 것 같다는 둥. 고작해야 세 식구 먹을 저녁 반찬 한 두 가지로 연명하던 내 수준에 깍두기를 담그라고 하질 않나. 쪽파 한 단이 시들까봐 아깝다고 파김치를 담그라질 않나. 지금 그 지경인데 오빠네를 불러다 명절을 쇤다고 갈비를 재우라질 않나! 통증으로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던 밤에는 기겁, 식겁하고 눈물콧물 범벅되어 앞으로 찍소리 않고 잘하리라 그렇게 다짐했는데, 이제 아주 조금 괜찮아지셨다고, 배은망덕 모드로 돌아가는 건 순식간이다.


연휴 끝, 어젯밤 자리에 누워 주원이의 작고 동그란 등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이 아들내미는 이렇게 아기인데. 부모님이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드셨을까.'

잠시 눈을 감자 어린 시절, 엄마 아빠가 맞벌이를 하며 우리 남매를 돌보느라 문자 그대로 정신 없이 ‘굴러가던집안 풍경이 어렴풋이 떠올랐고, 그나마 우리가 조금  가자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프시기 시작하신 , 그토록 기다려  휴식이었을 여름방학을 맞이한 엄마가, 아빠도 없이 우리들을 챙기며 거동이 불편해진 시어머님을 모셔야 했던   여름까지, 모두 기억이 났다. 그렇게 엄마 아빠의 청춘이  지났었지.

그땐 그게 막연히 어른들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는데, 나에게도 그 어른의 시간이 다가오는구나, 싶었다. 지금처럼 어른인 척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아니라, 진짜 단단한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그런 때.


엄마. 엄마 허리가 다 구멍이 숭숭 나는줄도 모르고..이제껏 의지만 해서 미안했어. 주원이를 맡겨놓고 애 보게 해 드려서 미안했어.. 난 그런데 이까짓게 뭐라고, 벌써 힘들다고 생각을 해 엄마. 이까짓 게 뭐라고. 엄마를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나도 이제 어른인데 말야.

엄마. 돌아보니 여지껏 뭐든지 내 힘으로만 해온 것이 없어. 늘 엄마가 도와 주셨지. 엄마가 얼마나 커다란 존재였는지, 나는 얼마나 철 모르는 딸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껴.

엄마. 꼭 다시 건강해지시고, 별러뒀던 남미 여행도 더 나이 드시기 전에 꼭 다녀오세요. 우리. 잘 해나가요. 씩씩하게 하나씩. 다 좋아질거야. 건강하자! 행복하자.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 말고..)


2016년의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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