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기록 #1
내가 옳았는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 솔직히 할말은 없다. 나는 옳지 않았을 수도 있고 옳았을 수도 있다. 그것은 나 자신이 아닌 어느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평가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다. 무슨 상관인가? 내가 옳았든 옳지 않았든 나는 지금 이미 이렇게 살아와 버렸는데.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평가한들 그게 무슨 상관일까. 앞으로도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고, 아파하겠지만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고, 또 그때마다 찾아오는 후회를 외면하려고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한 길로 간 후 찾아오는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는 지워낼 수 없다. 나는 어쨌든 인생의 굽이마다 결정했던 선택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되어 있고 내가 옳았느냐 옳지 않았느냐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열심히 살았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긍정하겠다. 내가 말하는 열심히 산다는 것의 의미는 자기 존재에 대해 철저하게 아파했다는 뜻이다. 나는 아파했다.
8p '네 멋대로 해라', 김현진, 한겨레신문사
필름아카데미에서 연출 실기 수업을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자비를 들여 장소 허가, 배우 섭외, 스탭 꾸리기, 대본, 촬영, 편집까지 셀프로 마친 허접한 단편을 하나 만들었다. 겨우 겨우 만들었다. 체력적으로 금전적으로 성격적으로 모든 방면으로 눈물나게 힘이 들었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큰 재능이 없었다.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다른 것이라는 걸 깨닫는 데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
시작은 이러하다. 중학교 시절 네 멋대로 해라, 라는 청소년 진로선택 추천서적을 읽고 고교 자퇴 후 최연소 영상원 합격, 영화 감독이 되겠다던 그이의 꿈을, 삶을, 취향을, 그저 똑 같이 따라가고 싶었더랬다.
아니나다를까. 자퇴를 하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자퇴 소동이 간신히 잠잠해진 뒤에는 영화 감독이 되겠다며 설치기 시작했다. EBS에서 주말마다 틀어 주던, 왜 명작인지 나는 결코 모를 명화를 녹화해서 돌려 보기도 하고 비디오 테이프도 작품성을 인정받아 유난히 졸려운 것만 빌려 보느라 애를 썼다. 지금은 폐간된 필름 2.0을 꾸준히 구독했으며, 중간고사 전날에는 애타게 응모해온 시사회에 당첨되어 기어이, 몰래 다녀오기도 했다.
대학 입시 선택지에도 있었지만ㅡ코웃음도 사지 못할까 두려웠다ㅡ밀어붙일 용기는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워 늘상, 남의 마당을 기웃거릴 마음이 남아있었는지도 모른다.
⠀
결국 그 시절 내 우상이었던 그녀도, 알려지지 않은 연출작이나, 이후로 꾸준히 발표한 꽤 많은 저서들보다 '네 멋대로 해라' 라는 베스트셀러 한 권으로 더 큰 반향을 남긴 사람이었던 걸 보면 나는, 영화가 아니라 잘 쓰여진 책 한 권에 낚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방황하는 사춘기 감수성이 물씬하던 그녀의 글에, 나와는 달리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사는 멋진 소녀에게, 말하자면 그저 완전히 반했던 것이다. 수많은 또래들을 흡인하는 글솜씨를 가졌던 그가, 훗날 전업 작가가 될 줄은 모른 채.
⠀
서른 넷. 스스로가 가진 기호나 취향에 대해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는 나이가 되어 바라본 나는 작품성 짙은 영화는 이해하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자다. 여전히 인생 최고의 영화는 타이타닉이며 영화제 수상작의 심오함을 견딜 수 있는 한계는 미국의 아카데미 정도다. 극장에서 선택하는 작품은 주로 oo맨으로 끝나는 히어로물이며 영화관에 가는 가장 큰 이유가 영화관에서만 먹을 수 있는 팝콘인 것은 말해 무엇하랴.
반면에 서너 권으로 분절된 장편 고전을 읽을 때는 때로 스펙터클한 재미마저 느낄 수 있다. 적당히 땀이 나는 등산처럼, 쉽게 읽히지 않더라도 충분한 감상을 얻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한다.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여전히 유투브보다는 블로그를 검색한다. 나는, 분명 영상보다는 활자가 재미나고 편안한 사람인 것이다.
⠀
열 일곱.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꿈, 그저 멋져서 꿈인 꿈, 직접 키우고 가꾸려는 노력도 없이 분양받은 내 꿈은 양분 하나 없는 흙에 심겨져 무럭무럭 자라났다.
스물. 겨우 대학 수험이나 마친 애송이에게 꿈이라는 단어는 거창하고 과분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