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기록 #2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315p
비행운, 김애란
졸업하던 해에 본 첫 시험. 1차에서 떨어졌다. 내가 받은 점수도, 커트라인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는데. 벌써 기억이 흐려졌다는 게..이상하다. 2.5점짜리 한 문제만 더 맞으면 되었더란 것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정답 발표 직전 한 문제를 두고 답이 갈렸던, 친구는 합격, 나는 떨어졌기 때문이다. 억울할 것도 없었다. 우린 결코 2.5점의 차이가 아니었으니까. 친구는 충분히 합격할 만큼의 실력도, 성실했던 대학 4년간의 배움과 노력도 곳간 가득 쌓여 있었던 반면, 내게는 그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했었다.
2009년. 학교 도서관은 여름방학부터 시험을 준비하는 동기들로 가득했고, 스터디 팀에도 들어가 있었기에 외롭지 않게, 같이 밥도 먹고, 자주 웃으며, 수험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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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구립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가을까지는 교회 오빠도 자격증을 준비한다고 해서 공부나 출퇴입은 달리 해도 도시락은 같이 먹을 수 있었는데, 가을부터 여자친구가 생겼다면서 생물학적 여성인 나와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선언을 했다. 그러고 나니 점심도 저녁도 대개 혼밥이었다. 외로웠다. 한 주에 한 번 하던 스터디도 얼마 전 해산한 터였다.
출근을 시작한 친구는 가끔 전화를 걸어와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푸념을 했다. 그조차도 부러울 시절이었다. 먹기 싫어 내다둔 음식을 보고 입맛 다시는 사람이 된 듯 초라한 기분이 들어 한 번, 두 번. 미뤄 받기 시작하던 전화는 차츰 받지 않게 되었다. 자격지심이었다.
와중에 교회는 열심히 다녔다. 소모임의 리더 자리도 맡고 있었다. 시험을 앞두고 많은 기도도 응원도 받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이번에는 턱도 없는 점수로 1차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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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불합격한 동기들도 대거 합격. 초등까지 복수전공하느라 졸업이 일 년 늦어진,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보았던 능력자 동기도 역시 합격. 한 명이 합격하고 셋이 남았던 스터디 모임에서도 또 한 명이 합격을 했다. 무척 의지하고 따르던 언니였다. 올해는 무조건 합격이리라, 자신은 몰라도 누구나가 알고 있었던 똑똑하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맘마저 넉넉했던 언니는 공부하던 교재며 값비싼 원서들을 아낌없이 물려 주었다. 그 기운을 받고도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해 미안할 만큼. 합격한 다음에는 누구도 앞이 아닌 뒤를 돌아봐 준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기꺼이 뒤를 돌아봐 준 언니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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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봄, 엄마에게 등 떠밀려 TESOL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나니 시험까지 반년. 여름, 멀쩡한 집을 두고 노량진으로 들어갔다. 합격자들은 인터넷 강의로도 충분히 합격했다지만, 아직도 의지 박약인 나를 절박한 환경에라도 몰아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서울의 집을 두고 시키지도 않은 사서 고생이었다. 고시원의 줄침대는 짧게 잠만 자기에도 불편했다. 복장은 늘 같은 추리닝 바지. 그마저 가끔 빨아 입으며, 지저분한 노량진 거리 위로 지저분한 슬리퍼를 끌고 다녔다. 고시생인지 고시생 코스프레인지. 나름의 효과는 있었다. 난생 처음, 강의실 명당 자리를 맡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경쟁에 뛰어드는 내가 되어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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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학교 밖 친구들은 취업을 했고, 정장 차림으로 노량진에 놀러오기도 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 줄도 모르고, 그마저도 나보다는 자유로워 보이던 시절.
살던 집에서 멀어지며 교회의 직책도 내려놓았다. 점점 누구도 만나지 않게 되었고, 동시에 점점 누구도 만날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렇게 노량진 바닥에서 여름부터 열심히 웜업을 한 덕인지 적어도 마지막 몇 달만은, 잘 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열심히는 살았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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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런 이야기의 끝은 합격이겠지만, 또 떨어졌다. 2차 시험장에도 한 번 가보지 못하고 내리 쭉, 실패였다. 단번에 합격, 당당하게 자신을 증명하는 이야기의 주인공도, 적당한 인생 교훈도 얻고, 합격도 해내는 인간적인 이야기의 주인공도, 많이 돌아왔지만 결국은 해낸다는,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의 주인공도 될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어코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