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0일의 썸머
첫 만남엔 분명 날 기분 나쁘게 했던 사람이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와 난 비슷한 점이 많았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항상 무언가를 하려 하는 것도, 말이 지나치게 빠른 것도, 일과 관계에 욕심이 많고 관심받는 걸 즐기는 것도 비슷했다. 우리는 각자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대화를 끊지 못한 채 결국 내가 타는 버스에 함께 올라탔다.
[여름]
그를 처음 만난 건 학교 정문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초여름이었다. 나란히 서서 각자 핸드폰을 보고 있던 둘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햇살이 내려앉은 그의 얼굴을 그때 자세히 처음 보았다.
“안녕하세요. 저랑 같은 수업 들으시죠?”
아는 얼굴이라 지나치지 못한 나는 웃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민희와 아는 사이라 지난번에 학생회관에서 한 번 봤었죠.”
다소 퉁명스러운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괜히 말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버스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다시 말을 걸었다.
“이름은 민희에게 들었어요. <여름> 맞죠?”
나도 그의 이름이 <서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개강 후 같은 수업을 듣던 두 달 동안 그는 종종 눈에 띄었다. 외모나 목소리는 아주 평범한 편이었지만 그는 수업 중에도 교수님께 자주 질문을 하던 적극적인 학생이었다. 서우는 그 큰 눈을 굴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서우의 눈동자는 그의 머리카락 색깔과 같은 밝은 갈색이었다.
“민희 말로는 항상 이것저것 하며 열심히 사는 언니라고 하던데.”
“민희가 그래요? 제가 열심히 산다고?”
나는 누군가 칭찬을 하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누가 봐도 잔뜩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랑 크게 다를 것 없는 스물네 살 대학생이죠. 뭐. 재미있어 보이는 건 다 해보고 궁금해지는 사람들은 만나보고 그러는 거요. 평일엔 학교 마치고 동네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요. 좀 피곤하기는 해도 보람 있고 재밌어요.”
이렇게 늘 칭찬이 어색할 때면 칭찬에 받아칠 말을 생각해 내느라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늘어놓는다. 학교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동네까지 가는데 왕복 세 시간이 걸린다고 덧붙이자 그가 픽 웃으며 말했다.
“일주일에 다섯 번 수업 들으러 달려오는 것도 힘든데 술 마신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진짜 열심히 사는 거 맞네요.”
그의 말에서 약간의 시니컬함이 묻어 나왔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런 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관계로부터 얻는 에너지가 좋아서요.”
“그 잠깐의 에너지가 좋다고 해도 그게 진짜 가치 있는 관계일 거라 확신할 수 있어요? 술에 취한 채 모르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나중에도 가치 있게 느껴질 거라고?”
불쑥 들어온 그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생각하느라 머뭇거렸다. 당황해서 얼굴이 잘 익은 체리처럼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도통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감정은 상황에 따라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고 만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그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시간을 가치 있는데 쓰는 게 중요해요. 나중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 가벼운 관계들을 만들고 유지하느라 소비하는 시간은 가치가 없어요. 그 시간을 더 가치 있는 데 써보는 건 어때요?”
그 순간 나는 빨리 버스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에 맞받아칠 다른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한 편으로 그가 무례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우린 오늘 이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이야기를 나눈 사이가 아닌가. 생계를 이어 가려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하는 상황인 사람도 있을 텐데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쩔 셈인가. 면전에 대고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 무례하게 느껴졌다. 괜히 먼저 아는 체 했구나 하고 내심 후회 했다. 때마침 탈 버스가 먼저 도착하자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버스를 탔다.
“같은 버스네요? “
버스에 함께 올라타며 그는 또 싱글싱글 웃었다.
[서우]
빗방울이 날리던 흐린 여름, 오후 수업 하나가 취소되어 일찍 강의실을 나섰다. 학교 정문에 도착했을 때 버스 정류장에 기대고 서있던 구불거리는 적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한 여자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익숙한 뒷모습. 여름이었다.
그녀와 처음 이야기를 나눴던 버스에서 헤어진 뒤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우리는 학번이 달랐지만 휴학 후 막학기를 보내는 복학생이라는 점에서 나처럼 그녀도 학교에 친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녀와는 우연히 강의 몇 개가 겹쳐 매일 오전 수업을 함께 들었는데 점심시간이면 혼자 학생회관 구석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있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점심시간마다 학생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거나 학생회관 구석에서 간단한 끼니를 때우는 게 일상이었기에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는 게 잦았다.
나는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거나 간혹 시간이 없을 땐 아침마다 엄마가 챙겨주는 요거트나 과일로 끼니를 때우거나 했지만 그녀는 언제나 과자를 까먹거나 커피를 마실 뿐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지 않았다. 또 항상 이어폰을 꽂고 무언가에 몰두한 듯 핸드폰을 보고 있었지만 주변에서 조그만 소리가 나면 고개를 슬쩍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주변 눈치를 보더니 머리를 한번 쓱 넘기고는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이었다. 왜 그녀를 그렇게 관찰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녀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큼 예쁘거나 튀는 외모는 아니었지만 자주 마주친 탓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거라 짐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난 것이다. 약간 거리를 두고 서서 노래를 듣고 있는데 이어폰 너머로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여름>이라는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지난 몇 달간 점심시간마다 뒷모습을 보며 함께 식사를 했던 덕분인지 이름뿐 아니라 다른 정보들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가 말을 걸어왔을 때 목소리조차 익숙하게 느껴졌던 덕에 제법 편안한 태도로 이야기를 나눴다. 버스 정류장에서 짧은 대화를 나눈 이후 함께 타고 가는 버스 안에서 여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피곤했나 보다 하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날 잠깐 나눈 짧은 대화가 ‘그녀는 왜 말이 없을까’하고 이유가 궁금해질 만큼 그녀를 특별하고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며칠 뒤 다시 만난 그녀는 왠지 이전과 달랐다. 내가 느끼는 <여름>이라는 사람은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 그전까지 그녀는 ‘자주 혼자 있는 사람’, ‘주 5일 내내 나와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목구비는 뚜렷한 편이지만 아주 예쁘다고 하기는 애매한 외모를 가진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흐릿했다. 그러나 ‘1. 그녀는 학교가 끝나면 집 근처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2. 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근처 정류장에 내린 것으로 보아 가까운 동네에 산다’라는 두 가지 정보를 더 알았을 뿐인데 그날 이후 사람들 사이에 있는 그녀는 조금 더 선명해졌다.
바쁘게 오가는 학생들 사이에서 매우 평범한 투명한 비닐우산을 쓰고 뒤돌아 보던 그녀의 이목구비는 유독 뚜렷해서 오히려 배경이 흐릿하게 대비되어 보일 정도였다. 비가 오니 더욱 곱실거리는 적갈색의 머리카락부터 그녀가 자주 입던 스트라이프 티셔츠, 그리고 몸에 딱 붙는 청바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유독 빨갛게 립스틱을 바른 큼지막한 입과 살짝 올라간 입꼬리까지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분류되며 그녀를 인식하는 조각들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내가 나머지 퍼즐 조각을 얻어 완성된 그림을 그리게 하고 싶게 만드는 출발점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할 일 없으면 점심 좀 같이 먹어줘요.”
느닷없이 다가가 말을 건 탓에 그녀는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여름]
그날 꽤 찝찝한 기분으로 헤어졌던 것과 달리 그는 식당으로 가는 내내 적극적으로 반가움을 내비쳤다. 약간 당황했지만 마침 배도 고팠기에 그가 자주 간다는 ‘살구나무’라는 이름의 식당으로 따라갔다. 이번 학기 들어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건 처음이었다. 방학을 보내고 오니 자주 가던 식당 몇 곳은 문을 닫았고 새로운 가게들도 골목을 따라 많이 생겼다.
식당에 들어서자 바깥과 달리 매우 낮은 온도에 닭살이 돋았다. 우산을 정리하는 동안 그는 창가 자리로 향하며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자리에 앉아 나는 회덮밥을, 서우는 김치 우동을 주문했다. 메뉴가 나오는 동안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나는 괜히 어색해 창밖을 바라봤다. 굵어진 빗방울이 내리치던 유리창에는 빗방울이 여러 줄기 반복해서 맺히더니 또르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을 따라 또 다른 유리구슬들이 흘러내리는 것을 반복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나에게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 여름은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여름에 비 오는 거 좋지 않아요?”
“너무 습해서 딱히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가 마침 나온 김치우동을 휘적이며 대답했다.
“저는 비 오는 날에 별 이유 없이 감성에 젖어드는 기분이 좋아요. 특히 여름은 너무 뜨겁고 들뜨잖아요. 그런데 비가 오면 세상이 다 같이 축 가라앉아서 억지로 들뜨지 않아도 되고 우산 아래에 숨어 있어도 되는 게 뭔가 아늑하고 보호받는 느낌이랄까.”
나는 창 밖의 물 웅덩이 위로 빗방울이 쉬지 않고 파장을 일으키며 뛰어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우가 말을 이었다.
“저도 비 오는 날 카페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고 있는 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비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쾌적한 실내에 앉아 창밖으로 비 내리는 걸 보며 비를 좋아한다고 하는 건 진심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비를 좋아하는 데에도 진심과 거짓을 나누다니.”
“저는 비를 좋아하는데 진심이거든요. 물웅덩이를 잘못 디뎌 신발부터 양말까지 젖고 아침에 공들여 손질한 머리가 부스스해지는 것마저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레인 러버(rain lover)’의 자격을 갖춘 거라고요.”
나는 어느새 젓가락을 멈춘 채 잔뜩 신나서 비 이야기를 했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채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머리 손질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긴 하지만 24년을 곱슬머리로 살다 보니 장마철을 대비하는 노하우가 생겼어요.”
“그게 뭔데요?”
“비누로 머리를 감는 거예요. 그러면 빳빳해진 머리카락이 자기네끼리 엉겨 붙어서 덜 곱슬 대거 든요. 그래서 요즘 집에 샴푸가 다 떨어졌는데 새 걸 사지 않고 있어요. 장마철도 다가오고 나름대로 환경도 생각하는 것 같아 뿌듯해하며 아침마다 비누로 머리를 감죠.”
“푸하하. 이름 그대로 여름에 진심인 사람이네.”
그가 난데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맞아요. 자칫 불만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제가 사랑하는 계절을 망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편이죠. 그때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놓치지 않는 건 저한테 아주 중요해요. 누군가가 과거, 현재, 미래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냐고 물으면 저는 주저 없이 <현재>라고 대답할 거예요.”
지난번 버스정류장에서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나 나는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
“그때 당신이 나중에는 가치 없을 거라고 이야기했던 그 일시적이고 가벼운 관계를 맺는 시간들 역시도 현재의 나에게 의미가 있다면 지키려고 노력하고요.”
“아, 그때 나는 정말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기분 나쁘게 들렸으면 미안해요.”
그의 얼굴에 약간 당황한 표정이 스쳤다. 아마 내가 기분이 나빴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괜찮아요. 그냥 나는 이런 생각이라는 말을 그때는 못 했는데 지금은 하는 거예요. 원래 대답하려다가 못하고 지나가버리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편이라. 말 안 하고 나 혼자 ‘재수 없는 사람이네’하고 생각해 버리는 것보다 낫잖아요.”
머쓱해진 그가 잠시 할 말을 생각하는 동안 그릇에 담긴 회덮밥을 싹싹 긁어먹으며 곁눈질로 눈치를 살폈다. 사실 나도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쉽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느라 하고 싶은 말을 돌려 말하거나 집에 가서 대꾸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그날의 일을 꼬집어 말해 놓고도 그가 기분이 상했을지 눈치를 보는 것이다. 다행히 아주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나쁜 의도가 절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기는 해요. 저는 ‘현재를 즐겨라, 카르페디엠(carpe diem)’이나 ‘YOLO(You Only Live Once)’ 같은 말들을 하는 또래의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거든요. 이것도 구식이긴 한데… 그래서 그런 사람들한테 정신 차리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옹졸한 마음이 튀어나왔나 봐요.”
서우의 솔직한 고백에 나는 그날 버스 정류장에서와는 달리 그의 말에 맞받아치고 싶은 말이 마구 떠올랐다.
“그냥 그 나이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때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지나가버리면 해볼 용기도 못 낼 것 같은 그런 것들을 해보고 싶고 그런 관계들을 경험해보고 싶은 것뿐이에요. 현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오늘만 사는 사람들은 아닐 거예요. 제가 구식인 당신을 이해해보려 하듯 당신도 욜로족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세상이겠네요.”
“알겠어요. 내가 졌어요. 재수 없었던 거 인정할게요.”
갈수록 말이 빨라지는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그는 손사래를 쳤다.
“나도 말이 빠른 편이라 흥분하면 가끔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기 어렵다고 하는데 나만큼이나 말이 빠른 사람을 만났으니 우리의 대화는 시간 대비 효율성이 아주 좋겠어요.”
우리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둘의 대화는 진지한 토론보다 유쾌한 수다에 가까웠다. 누가 그런 우리를 봤다면 말의 양이나 속도로 보아 몇 년 간 못 만났던 친한 친구 사이 같아 보였을 것이다. 여행, 인간관계, 성격, 취향, 가족, 꿈 이야기까지… 그와는 신기할 만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가 이어졌고 서로의 이야기에 취해 깔깔거리고 웃었다. 대화를 끝맺기 아쉬웠던 그는 결국 오늘도 나와 같은 버스에 올라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