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이외에 나라는 사람을 말해주는 정체성은 무엇일까? 직장을 떠나서 명함의 직책이 없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일 직업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세계 속에 혼자 갇혀 사는 사람은 아닌가? 나라는 사람은 내일 당장 명함이 없어졌을 때 어떤 사람으로 오롯이 남아 있을까? 아마 한량일 것 같다. 무료한 시간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다. 하루를 무료하게 의미 없이 보내는 사람이 될 것 같다.
그래도 명함이 없어졌을 때 책을 읽고 나의 경험을 융합해서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다.
작가가 되고 싶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글을 쓰는 작가가 될 것인가? 내 글을 통해서 한 명이라도 내면의 울음 샘이 터져서 그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다시 살리는 글을 쓰고 싶다. 왜 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할까? 나 자신만의 욕심일까? 능력은 없는데 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작가를 통해 행복을 꿈꾸는 것이 아닐까? 은퇴 후에 직업이 없어지면 대체할 직업으로 작가를 가지려는 헛된 꿈은 아닐까?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아집과 돈 욕심으로 가득 차지는 않았는가? 내 몸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나의 사고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나의 현재 뇌는 직장 일이 없어지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뇌이다. 직장을 떠났을 때 나는 누구로 살아야 할까? 나이가 들어도 묵묵히 나는 나의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 매우 윤여정도 75세의 나이에도 자기의 모습대로 살다 보니 세계적인 여우 조연상도 받았다. 그렇다면 내가 나답게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장미는 백합으로 살지 않고 장미로 산다. 장미는 장미대로 산다. 소나무는 소나무 대로 산다. 나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절대 신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절대 신과의 온전한 관계 속에서 이웃들과의 화목한 관계를 맺는 것이 올바로 사는 것일까?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어디일까? 지구라는 별에서 긴 여행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나이가 들면 본인을 돌아봐야 하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이고 어느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가끔은 끝없는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본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남에게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본다.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해 따뜻한 인간미를 주지 못하는 차가운 사람이 나의 정체성의 본모습인지 살펴보기도 한다. 글을 쓰는 과정은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자신의 내면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글로 표출한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내면이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더 명확히 찾아가는 과정이다. 글쓰기를 통해서 삶의 발자취를 남길 수가 있다. 껍데기는 모두 벗어버리고 오직 홀로 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다. 남들이 몰까 봐 일기장처럼 쓸 수도 있지만 남들도 다 볼 수 있는 글들로 쓰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쓸 때는 잡념이 사라져서 뇌의 휴식에도 좋다. 화나는 생각들은 모두 사라지고 글쓰기에만 집중하니 뇌 건강에 좋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직장을 떠나서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는 것은 글쓰기밖에 없는 것 같다.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사람들에게 다가서야 한다. 그런데 나는 싫은 사람이나 예의 없는 사람에게는 다가가기 싫다. 내가 나답게 사는 것, 내가 나로 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냥 의미 없이 하루하루는 지나가고 남는 것은 새치일 뿐이다. 내가 나대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좋아하지? 글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글쓰기는 정말 좋아하는가? 직장에서 하는 일을 제외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더하게 된다. 퇴근해서도 머릿속에는 직장 일이 떠오르고 나의 정체성은 오직 직장의 일이 아닌가 싶다. 내가 직장을 떠났을 때 어떤 모습인지가 나의 정체성일 것이다.
정말 직장을 떠난 나의 정체성은 한량밖에 없다. 파고다 공원에서 급식 타면서 바둑 두고 멍하니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어떤 생산적인 것도 할 수 없는 사회에 짐이 되어 가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나로 사는 것, 아무리 안정적인 직장이라 할지라도 내일이라도 직장을 잃을 수 있다. 내가 나로 살면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도 가족들, 자식들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는 것이 필요한 시기가 되어 버렸다. 어떤 일을 찾아서 해볼까?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짓는 것은 아니다.
우선 서울에 대단지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고는 싶다. 사는 것은 최대한 수도권에서 산다. 글을 쓰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만나며 산다. 나눠줄 생각을 하다 보니 나눠줄 것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소통하면 산다. 지금 다시 채워야 하는데 너무 늦지는 않았을까 걱정이다.
다시 원점이다. 명함이 없을 때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잘하지? 직업이 사라졌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이 정답일까? 어렸을 때는 꽃과 식물을 좋아해서 원예학과까지 가려고 했던 것 빼고는 별로 없다. 그렇다고 꽃을 아주 잘 아는 것도 아니다. 현실 속에서 내가 나대로 살아가는 것은 무엇이지? 세월이 가면 힘은 뇌쇄 하고 뇌력은 약해질 텐데 어떻게 사는 것이 나대로 사는 것인가? 어떤 목적을 갖고 살아야 하는가? 신앙 놀이하면서 1주일에 한 번 종교단체에 가고 그것이 잘 사는 것일까? 내가 나대로 살며,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 딱히 떠오르는 것이 글쓰기밖에 없다. 글을 통해서 남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 글로 남들의 마음에 사기를 쳐서 다시 힘을 북돋우고 싶다. 그냥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살면 돼지랑 다를 것이 무엇인가? 어떤 생산적인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글을 쓰는 것도 6개월 동안 해보니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나로 사는 것. 나는 어떤 창조적인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최근에 알아냈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식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 내가 나로 사는 것. 글을 쓰며 사람들과 만나며 살고 싶다. 글로 이야기를 나누고 모닥불 앞에서 같이 읽은 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그런 조건이면 좋겠다. 모닥불 앞에서 내가 쓴 책을 조용히 이야기 나누는 꿈을 갖는 것이 지금의 목표가 아닌가 싶다.
누구든지 직장을 떠난 나 자신만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현재 직장에서도 더 치열하게 일할 수 있다. 명함이 사라져 직장의 끝이 다가옴을 느낄 때 현재의 직장에 더 충실할 수 있고 미래도 천천히 준비할 수가 있다. 근무 시간에는 미친 듯이 일을 하고 그 이후에 남는 시간에는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 꼭 업무와 관련이 없어도 좋다. 무엇을 할까? 글쓰기 모임을 매일 저녁 해볼까? 강하게 스파르타식으로 매일 글을 쓰는 훈련을 해볼까? 그렇다면 그것이 나의 정체성인가? 그것이 과연 행복한가?
퇴근 후 자기 계발할 것을 찾아 하는 것이 나의 정체성일 것이다. 특히, 글 쓰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