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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Sep 23. 2020

요즘, 괜찮나요?

코로나 시대, 50개의 단상 (1~10)

하루는 사진이나 그림, 하루는 글을 쓰는 100일간의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카카오 프로젝트 100) 개인적으로 달라진 일상의 풍경과 생각을 적을 예정이다. 이 글은 첫 번째 열 개의 단상이다.



1. 쇼핑하는 존재

소비가 크게 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옷과 가방같은 외출용 물건 구매가 크게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간 별별 것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주로 집에서 쓰는 물건이다.

프라이팬부터 접시까지 주방도구는 물론, 온갖 식재료, 홈트레이닝에 필요한 잡다한 소품들, 각종 취미 용품 등. 하루가 멀다 하고 현관 앞에 택배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실내형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지도 않다. 어느새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 것들도 있다. 그저 관성적인 소비를 멈추지 못한 것이기도 하고, 집에 갇혀버린 기분에 대한 보상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코로나의 시대, 충분히 길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을바람이 부는 지금까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만약 언제까지나 이렇게 각자의 집에 고립되어 있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자신을 증명해야 할까. 혹은 어떻게 자신에게 자신을 증명해야 할까.

2. 유난히 비 내린 여름

코로나도 코로나였지만, 올여름은 비도 힘들었다. 유독 비 오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돌아다닐 수 없는 것이 비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좀 나았다. 비 때문이라면 아무도 원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고 확진자수가 오르내리며 우리는 계속 화를 내게 된다. 저 사람들은 왜 거길 가는지 왜 모이는지 내내 화가 나게 된다. 겪어보지 못한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이유가 필요하다. 누구의 잘못인지 찾고 단죄하고 싶어 진다. 코로나는 운명처럼 받아들이기엔 인간적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을 타고 다니는 재난이니까.

반면 비가 오는 날은 싫기도 괜찮기도 했다. 어느 쪽이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 건 덤이다. 이제 또 비가 내려도 덤덤할 수 있다. 그저 비니까.

3. 아무도 없는 길

걷는 시간이 늘었다. 대개 혼자 걷는다. 그리고 사람을 피해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간다.

요즘은 출발도 혼자 했는데 길 위에도 나뿐 인 경우가 많다. 혼자서 홀로 걷는 것이다. 몇 시간이고 사람을 만나지 못한 적도 있다. 무릇 길이라는 건 누군가가 앞서 가고 누군가가 뒤따라 오는 곳이다. 그러기에 앞에도 아무도 없고 뒤에도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면 때때로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시간이 멈췄는데 그것도 모르고 혼자 걷고 있는 건 아닌지. 같은 곳을 맴돌고 있는 걸 깨닫지 못하는 건 아닌지. 앞에도 뒤에도 사람이 없다는 건 그런 의미다. 내가 서 있는 곳을 확신할 수 없게 되는 것.

4. 폐가들

코로나가 시작되고는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걸어 다닌 길에는 종종 폐가가 보인다. 큰 집, 작은 집, 낡은 집, 낮은 집, 높은 집, 살림집, 가겟집. 평생 본 폐가를 다 합쳐도 올해 본 폐가보다는 적을 것이다. 집집마다 무슨 사연이건 사연이 있겠지. 하나하나 볼 때마다 사연을 상상해본다. 너는 어쩌다 여기에 세워지고 또 버려졌을까. 역병의 시대가 계속되면 빈 집도 사연도 늘어날까. 걸음을 멈춰 뚫린 창으로 낡고 빈 공간을 잠시 응시하곤 한다.

5. 결국, 배달음식

짜장면도 피자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결국 배달의 민족에 합류했다. 밥 챙겨 먹는 건 잘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직접 해 먹는 밥에는 한계가 있다. 가끔은 내 손에서 나오지 않는 못된 맛이 필요하다.

그렇게 배달의 세계에 발을 들였고, 세상에 배달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엔 몽골리안 비프가 먹고 싶어 졌는데, 주변에 배달 가능한 가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궂은 날씨에도 요리는 금방 도착했다. 고기를 씹으면서 서울을 떠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백만 스물두 가지가 배달되는 곳에 버티고 살면, 그 어떤 삶이라도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6. 노래 금지 시대

코로나에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들, 실직한 사람들 앞에서 다소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합창단 연습이 중단된 것이 꽤 마음 아픈 일이다. 종교와 관련 없는 직장인 합창단이지만 연습장소가 교회였던지라 합창단은 교회와 운명을 함께 하게 되었다. 좀 잠잠해져서 겨우 다시 재개하려 했더니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었다. 출전 예정이었던 합창대회도 취소되었고, 가을 정기공연 행사 예약도 취소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동영상으로 지휘자님이 학습 영상도 보내주고 각 파트가 녹음을 해서 영상을 합치는 등의 노력도 해 보았다. 하지만 사람이 모여야 내는 화음과는 도통 비교할 수 없었다  그건 만나서 조화를 확인해야 한다. 각자 연습한 춤으로 군무를 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합창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는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노래를 할 수 없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일 줄 몰랐다.

7. 시간 들이기

다시, 만년필에 잉크를 채우며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을 내린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일상의 루틴에 시간을 들이기 시작했다. 늘 초초하고 시간이 없는 기분이었는데, 이제 시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질과 종류를 생각한다. 조금 더 느리고 충만하게,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시간이 많아진다면 어떻게 시간을 다루면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천천히 찾고 있는 중이다. 

8. 파우치

걸어 다니는 사람이 된 뒤, 파우치 구성물이 달라졌다. 일반 마스크 분실을 대비한 비상 마스크. 돌돌 말아서 들고 다닐 수 있게 면 마스크로 넣었다. 그리고 지갑 분실 대비 비상금도 비닐에 넣어 파우치 한 구석에 숨긴다. 먼 길을 걷다 보니 물집이 잡히는 경우가 있어서 밴드, 자잘한 부상 대비용 티슈, 알코올 스왑과 진통제. 그리고 그 외엔 핸드크림, 고체 치약, 이어폰과 충전 줄. 특이사항은 손톱깎이. 야외를 돌아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칼이 필요한 때가 종종 있었다. 가시를 뽑거나 뭔가를 자르거나 끊는 용도. 스위스 칼 같은 걸 마련할까 싶었지만 등산이 아닌 다음에야 좀 오버인 것 같고, 손톱깎이가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일단 넣고 다닌다.

어떤 건 변했고, 어떤 건 변하지 않았다. 다른 일상들처럼.

9. 계절이 간다. 

올초, 그러니까 늦은 겨울 무렵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때, 봄이 오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봄꽃이 지도록 끝나지 않자, 바이러스가 여름에 약하니 여름에는 괜찮을 거라는 말을 믿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도토리가, 밤이, 감이 익어가는 걸 본다. 논의 벼가 누렇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본다. 이제 우리는 겨울이 오고 가도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계절을 맞고 보내듯 그저 맞고 보내야 한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다음 봄꽃이 필 무렵의 일상은 또 어떨지, 미리 생각해봐도 부질없는 생각을 미리 해 본다. 

10. 커피를 멀리, 차를 가까이

사람과 덜 만나고 덜 부대끼면서 카페도 덜 가고 커피도 덜 마시게 되었다. 초반에는 집에 홈카페를 차릴 기세로 원두와 커피용품을 장만해댔는데, 커피 섭취 자체가 줄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하루에 서너 잔 마시던 커피가 한잔이 되었다. 카페인 중독자에서 카페인 민감자로 점점 변모해가고 있다. 요즘은 카페인 없는 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겨울을 함께 보낼 따뜻한 차를 물색 중이다.



이상 열가지. 앞으로 사십가지 단상이 남았는데 어쩐지 동어반복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계절과 함께 미묘하게 달라지지 않을까. 그것도 의미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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