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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Sep 28. 2020

[평화누리길] 철책, 강, 우여곡절 고생길

평화누리길 김포 구간(1,2,3코스. 총 39km)

평화누리길은 12개 코스, 총 189km의 걸기길로, DMZ 접경지역인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 연천군 총 4개의 시·군을 잇는 대한민국 최북단의 걸기길이다. 제주올레길(425km)보다는 짧지만, 서울둘레길(157km), 북한산둘레길(71.5km)보다는 긴 구간이다. 평화롭고 조용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중교통 접근이 약점이다. 산길이 많지는 않으나 최장코스가 28km인 난코스도 포함되어 있다.

이 글은 1, 2, 3코스인 김포구간(총 38km)의 완보기다. 고생과 슬픔이 담겨있다. 


평화누리길의 존재는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좀 알아보다 보니, 이 코스를 올해 내로 완주해야 이유도 알게 되었다. 내년부터는 스마트폰 앱(평화누리길 스탬프 투어)으로만 완주인증을 받는다는 것이다. 종이 패스포트는 올해 완주 분까지만 인정한다고.

마음이 급해졌다. 스마트폰 앱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아이폰의 경우엔 이런 공식앱들 지원이 늦은 모양이다. 생각보다 오류가 많아서 다 걸었는데 코스 기록이 날아가는 경우가 있다. 서울둘레길은 아이폰 지원이 되지 않았고, 코리아둘레길앱도 어류가 나더니 역시나 이 앱도 이번에 써보니까 오류로 거의 다 완료한 코스 기록이 몇 번 날아갔다. 믿을 건 종이뿐이다. 인증서를 받기 위해 무조건, 올해! 올해 완주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마침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었다. 지방에 걷기 여행을 가서 숙박하는 것이 좀 어려워졌고, DMZ라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평화누리길은 스탬프 찍는 곳 찾기는 쉽다. 모든 코스의 끝과 시작점에 있고, 반드시 큰 문과 함께 설치되어 있다. 게다가 스탬프는 코스당 1개뿐이다. 다른 길들은 코스마다 여러 개를 찍어야 하거나 코스 중간에 스탬프가 있는 경우가 있어서 좀 까다롭다. 물론, 평화누리길 스탬프 위치에도 예외는 있다. (파주 구간) 하지만 그 역시 안내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스탬프 난이도는 낮지만 반드시 코스별 인증 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특이점. 잊지 말고 사진을 찍자. 핸드폰 고장 나는 바람에 사진 찍으러 같은 코스를 두 번 방문하기도 했다. 

경기도이긴 하지만 DMZ 접경지역이기 때문에 상당히 멀다. 동선상 어려움이 예상된다면 숙소도 알아보자. 나는 묵어본 적이 없어서 추천은 할 수 없다. 위 사진에서 코스 인근의 숙소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 사유(태풍, 말벌 등)로 길이 통제되어서 우회해야 하는 경우가 있으니 출발 전에 카페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다음에 공식 카페(http://cafe.daum.net/ggtrail) 가 있다. 

코스 시작 전에 이 카페를 통해서 패스포트와 안내도를 신청하는 것이 좋다. 경기관광공사에서 집까지 배송해준다. 스탬프 함마다 패스포트가 비치되어 있지만, 없는 곳도 있고, 무엇보다 유동인구 많은 1코스에는 있을 확률이 거의 없다. 완주가 목표라면 사전에 신청하거나, 패스포트가 있을 법한 중간 정도 코스에서 시작하자. 물론 올해 내에 완주할 자신이 없거나 스마트폰 앱이 편하다면 패스포트는 필요 없다. 미리 앱을 다운로드하고 위치정보를 항상 수신 가능하도록 설정하자.


1코스 염하강철책길 (14km)


그렇게 9월 둘째 주, 첫 번째 여정을 떠났다. 시작은 김포였다. 집에서 너무 멀어서 일단 차를 몰고 나왔다. 출발지인 대명항에 차를 세웠다. 대명항은 주차비는 따로 없고, 주말에는 다소 혼잡하나 평일에는 주차 장소가 넉넉하다. 1코스 시작점은 대명항의 한 구석에 있다. 코스의 출발지답게 평화누리길 상징물과 상징 기둥이 잘 보이게 서 있어서 찾기 쉽다. 시작점에서 전체 코스와 안내문을 충분히 숙지하는 기분(?)을 만끽했다. 

인증샷 코너. 잊지 말고 스탬프 함 앞에서 인증사진 찍고, 완주 계획이 없어도 마스코트가 귀여우니 한 장 찍자.

1코스에 사연이 많은데, 다 쓰다가는 다시 서러움이 마구 밀려올지도 모르니까 장황하게 쓰지는 않기로 한다. 정말, 눈물의 1코스였다. 일단 비가 왔고, 비가 왔다. 그리고 사람이 없어도 너무나 없었다. 무엇보다도, 중간 정도 갔을 무렵, 팔을 휘두르다 늪지대에 핸드폰을 빠트렸다. 우여곡절 끝에 물속에 뛰어들어 핸드폰을 건져 올리긴 했으나 당연하게도 고장이 났다. 아아아. 그는 좋은 폰이었습니다. 폰은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신발은 흠뻑 젖었고 핸드폰이 먹통이 되자 지도도 없고, 내 차가 있는 대명항으로 돌아갈 방법도 알 수 없었다. 비에, 늪에, 피곤에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무서울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그저 고요했다. 휴전선 인근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압도적인 고요함. 날씨까지 흐렸으니 더욱 사람이 없었다. 핸드폰이 없으니 이상한 사람을 만나거나, 부상당하거나, 길을 잃는 등의 비상 상황에 대응할 방도가 없었다.

1코스에 남아있는 사진이 거의 없는 건 핸드폰이 없기 때문이다. 남은 사진은 그나마 걷다가 중간에 업로드 한 사진이 남은 것. 아, 사진을 보니 또 서러움과 쓸쓸한 마음이 밀려오는구나. 내 아이폰. 

이날은 날씨가 내내 이랬다. 덕분에 홀로 걷는 내내 신비로운 느낌을 계속 받았다. 하늘도 희고 물도 희고 모든 것이 모호하고 희미했다. 첫 시작이 어쩐지 쓸쓸했다. 이때만 해도 몰랐다. 이 이후에도 계속 이렇게나 쓸쓸한 길이 될 것이라는 걸. 우여곡절 끝에 1코스를 완료하고 망신창이가 되어 귀가하였다. 


2. 조강철책길 (8km)

조강철책길은 8km에 불과하지만 등산이 포함되어 있어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김포까지 멀리 왔는데 8km가 아쉽다?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3코스 일부를 이어서 더 걸어도 좋다. 2,3코스를 묶어서 진행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그건 8시간 정도 걸려서 보통은 무리일 것.

내 체력엔 2코스 단독으로 걸은 게 적당했고 좋은 기억이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숲길을 걸으면서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중간에 벤치 등 쉴만한 곳은 많지 않지만 숲 그늘이 상쾌해서 체력 소모가 많지 않다. 

애기봉 표지판을 보며 부지런히 가다 보면 시원한 경치를 만난다. 한강의 끄트머리와 벼가 익어가는 김포의 벌판. 이때는 아직 9월 초순이라 밤과 도토리가 한창 익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늦여름이자 초가을인 시기라 바람도 상쾌하고 하늘도 쾌청했다. 좋은 날이었다.

외나무다리 같은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찔한 성곽길이 나타난다. 펄럭이는 푸른 깃발이 이국적인 느낌이다. 오른쪽은 산비탈이라 저 길로 걸으면 심장이 좀 쫀득해지는 기분이다.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들에겐 권하고 싶지 않다. 왼쪽으로 안전하고 시원한 길이 나 있으니 그 길로 가면 되겠다.

저 아담한 성문이 나타나면 이제 하산길이다. 깔끔하게 마련된 데크길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우아한 솔밭을 지나서 한참을 내려오면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회관도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운영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마을이었지만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길을 지나다 보면 고요한 저수지도 있다. 원래는 낚시터로도 쓰이는 모양인데, 코로나 때문에 낚시가 금지된 모양인지 출입통제 플래카드만 펄럭이고 있었다. 이 이후로는 인적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스산한 논길이 이어진다.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기분으로 걸어주면 된다.

마지막에 작은 언덕 같은 산길을 걷게 된다. 정비가 잘 된 길은 아니니 발밑을 조심하다. 나는 폭우가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방문해서 그런지 길이 좀 험하고 일부 무너진 기억이었다. 사람이 너무너무 없어서 마지막 한두 시간 정도는 기이한 느낌마저 받았다. 생각보다는 길었던 8km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3. 한강철책길 (17km)

한강철책길은 애기봉 입구에서 전류리 포구에서 끝나는 코스이나, 나는 주차가 용이한 전류리 포구에서 시작해서 역방향으로 걸었다. 한강 최북단 포구인 전류리 포구는 원래는 뭔가 팔기도 하고 그런 모양인데, 지금은 뭔가 다 중단되어 있는 분위기다. 덕분에(?) 주차 걱정은 없다. 이곳에 차를 세우면 바로 마을 버스정류장과 CU, 그리고 개방형 화장실이 있다. 자전거족들도 멈취가는 곳인 듯하다.  

이 코스는 정말 이름 값하는 코스구나 싶었다. 한강철책길. 정확하다. 한강과 철책이 계속 이어진다. 정말 이 날도 자외선 지수가 장난 나이었는데, 아스팔트 위를 걷고 또 걷자니 헉 소리가 절로 났다. 자전거족들은 종종 지나갔지만 초반 몇 시간은 걷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대체 이 길을 왜 걷느냐는 듯, 어디까지 가냐고 태워주겠다고 나서는 트럭이 나서기도 하였다. 내 차를 지근거리에 세워놓고 남의 차를 탈 거면 이 먼데까지 오지 않았겠지요. 하여간 참으로 덥고 끝없는 길이었다. 자전거 길로는 훌륭했다만 도보길로는 모르겠다. 

왼쪽으로는 논밭을 구경하고, 오른쪽으로는 한강과 철책을 구경하며 한참 걷다 보면 길의 끝이 나온다. 평화누리 자전거/도보여행자를 위한 화장실도 있으니 들르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걷고 걸어서 도착한 곳은... 길이 막혀있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경고문과 함께 바리케이드. 바닥에는 커다랗게 평화누리길이라고 쓰여 있는데 말이다. 이게 원래가 북한과 멀지 않고 하니까 함부로 바리케이드를 넘을 수는 없었다. 총 맞을까 봐. 하지만 하지만... 민간인들에게 홍보한 길을 이렇게 대책 없이 막으면 어쩌란 말인가.

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 앞에, 나는 새 두루미 상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철새도래지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조형물인데 굉장히 귀엽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같이 인증숏도 있고 머리도 한 번 쓰다듬고 했을 텐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철새가 문제가 아니고 길이 없다니까. 그렇게 멍 때리고 있으려니 옆의 자전거 아저씨가 저 논길을 따라서 직진하면 코스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지도로 대충 견적을 내보니 코스의 상당 부분을 뛰어넘어야 할 것 같았다. 길이 있는지도 불확실하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땡볕을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포는... 우리 집에서 정말 멀다. 여기까지 오는 데 낸 기회비용이 너무 컸고, 다음에 왔을 때 통행 가능하리란 보장도 없고. 

그래서 그냥 일단 직진했다. 끝없이 펼쳐진 조를 양쪽에 세우고 직진. 그런데 말입니다. 이 길에도 민간인 출입금지라고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판이 막 세워져 있는 것이다. 선량한 민간인으로서 좀 쫄아있는데, 저 멀리 매우 민간인처럼 생긴 자들이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그냥 나도 걸었다. 어차피 여기 농사도 짓고 사람도 사는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하지만 정말 사람이 또 너무나 없는 것이다. 

걷고 또 걷다 보니 결국 정규코스와 만나는 곳에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마을이 나온다. 그런데 무슨 개들이 이렇게 짖어대는가. 평화누리길을 다니다가 좀 서러운 게 개들이 너무 짖어. 인적이 너무 없다가 나타나서 그런가 동네 개들이 다 나와서 짖는 기분. 나 나쁜 사람 아니야. 나보다 네가 훨씬 무서워. 혼자 중얼대며 귀 막고 통과. 너무 반갑게도 무슨 카페도 있다고 한다. 열심히 찾아가 봤는데... 코로나로 휴업이라고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쯤은 열었을지도 모르겠다만 하여간 슬펐다. 

카페를 지나서 여차저차 걷다 보면 다시 정규코스로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이렇게 가면 코스 불일치로 스마트폰 앱으로 인증이 안된다. 내가 해봤는데 일치율이 65%인가 밖에 안 나온다. 정규코스보다 더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앱으로 경로가 70% 이상 일치해야 스탬프 준다. 나는 종이 패스포트를 써서 망정이지 앱으로 인증하는 사람이었으면 엄청 속상했을 듯. 

그래도 코스로 다시 올라탄 게 어딘가. 걷다 보면 소도 나오고. 또 무엇이 나오 나면 짜자잔. 아스팔트 땡볕이 또 나온다. 와 진짜 이 날 정말 구워지는 줄 알았다. 사람 살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진짜 너무하네, 아이고 사람 살려, 하면서 걷는데 자꾸 민간인 통제선이라고 안내판 나와서 나 잘 가고 있는 건지 수심도 깊어졌다. 마을을 지나면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개는 짖어대고. 하. 3코스는 나하고 무슨 악연인가 싶었다. 하여간 김포가 북부의 곡창지대임은 잘 알게 되었다. 벼를 키우는 논이 정말 넓고 많았다. 지난번에 왔을 때 애기봉 스탬프도 찍었겠다 솔직히 이쯤에서 하차하고 집에 갈까 싶어서 네이버 지도를 찍어보았다. 마을버스 타려면 1킬로 이상 돌아 나가야 하는데 그 마을버스 배차간격이 1시간에 1대라고 한다. 도착 예정시간은 알 수 없다고. 그냥 포기하고 코스 끝까지 걸었다. 

감도 익어가고 벼도 익어가고 들꽃도 피고 늦여름의 정취는 좋았다.

결국 코스 종점(원래는 시작점) 애기봉 입구까지 왔다. 보람차다. 보람차긴 한데 콜택시는 불러도 배차가 안된다고 하고 카카오 택시도 당연히 안 된다. 애기봉 입구에서 마을버스(자주 오지도 않아)를 타러 가려면 1.5킬로인가를 추가로 걸어야 한다.

이미 영혼까지 뽑아서 걸었는데 또 걸어야 한단 말이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하나도 없어서 열심히 걸었다. 가는 길에 민들레+닭발 광고를 보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음침하게 선팅한 차가 슬금슬금 따라오기도 하고 하여간 아아 악연의 3코스. 그늘이 너무 없어서 한여름엔 권하지 않는 코스다. 겨울에 볕을 쬐며 탁 트인 풍광을 즐기며 평화롭게 걷기는 좋을 것 같다. 

하여간 김포 구간은 이렇게 끝이 났다. 김포구간... 비 내려서 문제, 핸드폰 파손되서 문제, 뙤약볕이라 문제, 길 통제되서 문제, 이상한 사람 나타나서 문제, 하여간 개인적으로는 힘든 코스였다. 체력은 별로 없어도 근성은 있기 때문에, 김포 구간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평화누리길 완주를 목표로 이 이후에도 계속 걸었다.  김포에 비하면 이어지는 고양 구간은 천국과도 같았다. 대중교통 접근성 좋고 각종 편의시설에, 무엇보다, 인간이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사람 없는 길 찾아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아예 없으면 심리적으로 좀 힘들다는 걸 배웠다.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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