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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Oct 10. 2020

[청계산] 연예인 산이라길래

등산기(경기도 과천시 청계산)

추석 연휴, 친구 따라 등산 갔다. 친구가 지인들과 청계산 간다길래 나도 나도, 하고 따라갔다. 처음 가봤다. 앞으로 종종 가게 될 것 같다. 첫 방문 기록을 짧게 남긴다.  



직관적이고 알기 쉽다. 청계산입구역. 역 이름도 청계산입구역인데 진짜로 청계산입구가 근처에 있다. 정직한 이름이다. 관악산 가려고 서울대입구역에 내렸을 때의 배신감 같은 거 없다. 접근성 측면에선 정말 최고다. 역사 안에 등산용품 판매점도 있고, 깨끗한 화장실, 편의점이 있으니 전철 타고 왔다면 출발 전에 정비를 하고 나가자. 전철역에서 나오자마자 여기저기 청계산 안내다. 

매봉과 옥녀봉 중에서 골라야 하는 것 같은데, 우리의 목표는 매봉. 출발은 원터골입구였다. 원터골 연결통로에도 과일과 주전부리 등을 파는 노점이 있다. 슬슬 시작되는 느낌이다. 출발 전에 듣기로는 코스가 여러 갠데, 요약하면 "관악산보단 쉬운 아차산보단 어려운"이라고 한다. 매봉까지 한 시간 반.  휴일 등산으로 거의 완벽하다. 

"역시 연예인산이라 그런가. 레깅스가 많이 보이네. 차림새가 달라."

"연예인산? 왜 연예인산이야?"

"서울 근교인데 강남에서 가까워서 연예인들이 등산하고 셀카 올려서 그런가 봐."

뭔가 굉장히 아무 정보값이 없으면서 신선한 정보였다. 그러고 보니 지방의 산들보다는 확실히 뭔가 연령대가 낮은 것 같기도 하고, 화장한 사람이 많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도심형 산행 느낌이 난다. 

여기가 입구! 가는 내내 느낀 거지만, 이용객에 비해서 길이 좁다. 등산로가 뭐 넓을 일은 아니다만, 편안히 앉아서 쉬면서 산을 즐기고 뭐 그럴 모먼트가 잘 안 나온다. 휴일이라 더 그랬겠지만 지하철로 치면 오후 5시경의  2호선 같은 느낌이 있었다. 뭔가 경쟁사회에서 멈추지 않고 전진하여야 뒤처지지 않는다! 하는 그런 느낌 있잖아, 2호선에.

등산을 거의 안 해봤다는 동행 중 하나는 삼십 분쯤 지났더니 '청계산 별 거 아니라고 누가 그랬냐'라고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 터질 거 같다고.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어떤 느낌이냐면, 지각했는데 전철 에스컬레이터 고장 나서 끝없는 계단을 뛰어서 올라갈 때 그 느낌 있잖아, 뭐 그런 거였다. 옆에 사람들도 막 올라가고 사람 살려.  

게다가 우리는 모두 마스크를 끼고 산행 중이니 더욱 힘들 수밖에 땀 차고 숨차고 난리남. 그래도 매봉 정도도 못 오르고 포기할 수 없다며 다 함께 으샤 으샤 올랐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걷기로 다져진 하체, 꽤 할만했다. 

한 시간쯤 지났나. 헬기장이 나타났다. 여기 헬기장에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파는 상인이 있다. 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음료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면 좀 비싸더라도 사서 여기서 수분 보충을 하는 것이 좋다. 하산길도 만만치 않을 것이니. 

9월 말이니 살짝 가을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하늘은 높고, 숲은 성숙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단풍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잎들이 조금씩 붉게 타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가을이 순식간에 왔다가 지나갈 기세다.

큼직큼직 돌들이 보이면 거의 다 온 거다. 그리고 도착한 정상, 시야가 탁 트인다.

"정상까지 왔는데 아파트밖에 안 보이네요."

등산 초보 동행이 실망한 듯 말했다. 

"... 지방의 산들은 정상까지 오면 산밖에 안 보이는데, 수도권 산은 산도 보이고 아파트도 보이고 좋잖아요.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에요. 특히 도시 한복판의 산은."

정상 사진이라 크게 넣었다.

매봉이다 매봉. 여기서 인증샷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에 저렇게 사람 없는 사진 한 장 남기려면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함. 이 와중에도 씩씩하게 새치기하는 중년들이 있었다. "저기요, 저희 줄 서서 기다린 건데요"라고 말해봤으나 못 들은 척하고 당당히 포즈를 취한다. 하, 나도 커서 저런 멘털로 살아야 내 삶이 편할 텐데 어차피 안 될 거야.

그렇게 돌, 하늘, 숲, 아파트, 새치기 중년들까지 구경을 다했으면 하산이다. 청계산은 등산로가 굉장히 잘 정비되어 있긴 하지만 묘하게 하산길에 난이도가 있다. 쉽게 후다닥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주의하지 않으면 미끄러져 부상을 입을 수 있으니 신중하게 한 발 한 발 가는 것이 좋겠다. 

다 내려와서 식당으로 향할 무렵 시계를 보니 2시간 반 정도가 경과되었다. 중간에 쉬고 간식 먹고 얘기도 좀 하고 놀았던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그리고 하산 후 바로 짬뽕순두부와 파전. 완벽하다. 완벽 완벽.

최근 꾸준한 걷기와 등산으로 하체 근력을 좀 키운 덕분인지, 이 날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보다 놀라운 건 다음날에도 다리가 당기거나 아프지 않았다는 거. 역시 뭐든 꾸준히 하면 쌓이고 느는구나 싶어서 뿌듯했다.

청계산 산행 좋았다. 주말이면 좀 혼잡하지 않을까 싶긴 한데, 조용한 시간이나 평일에 방문 가능하다면 계절을 느끼기 위해 한 번씩 다녀오기 딱 좋은 산이다. 다음엔 옥녀봉에 도전해봐야지 다짐하며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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