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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없다.

있었어도 어려웠을 거다

by 이일일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이게 맞나? 저게 맞나? 수도 없이 던진 질문에 돌아오는 것은 딱히 없다.

질문이 메아리치는 것 외에 또렷하게 답이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인생에 딱히 정답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머릿속으로 알고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질문에 대한 마음이 괜찮고 넘어가지는 것은 아니다.

습관처럼 이것이 맞는지 묻는 본인도 짜증이 날 테지만, 정답이 없다는 결과가 바뀌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고 똑똑해서 정답을 찾아가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늘 정답을 찾아 헤매며 자기 땅을 만들고 부단히도 노력한다.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역시 인생은 수능과 같은 시험이 아니라서 모의고사도 없고 해설지도 존재하지 않으니 그 어떤 것보다 답답할 수밖에 없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음도 나온다.

내가 나인데 나를 제일 잘 모르겠다는 것도 참 웃기기도 하고 내가 내 인생을 살고 있음에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면에는 슬픔이 가득한 사실이다.

그렇게 정답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답이 한편으로는 주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정답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사람들보다는 그들의 마음이 더 지옥일 테니까.

(그런데 그 정답은 누가 알려주지? 모르겠다.)


혼란스럽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과는 별개로 그 이상의 비정상을 눈앞에 갖다 놓기도 한다.

요즘은 특히 세상을 살면서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마음껏 볼 수 있고 늘 도파민에 절여져 있는 핸드폰이라는 괴물과 함께 하는 이상은 사실 정상적인 사고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냥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뿐인데 사실상 마음에 남는 공허함은 어느 누구도 채워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 공허함의 이유는 나에게 있는 것 같지만 외부에서 오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끊고 살 수 없으니 같이 사는 것뿐이지 필수적으로 사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아 물론 없어서는 안 된다는 분들도 계실 수 있다.)


그게 무엇이 됐든 정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내가 지금 내 안에 어떤 질문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리고 그 정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 나무랄 수는 없다.

내가 그 정답을 찾지 못하는 것에도 잘못이 없으니 낙담은 금지다.

이쯤 되면 정답을 찾는 행위가 어리석은 행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사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찾아야겠다면 모험을 떠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것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영역일 테니. 혹시 찾는다면 알려주시길 바란다.

(진심으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주변에서 좋은 일들이 생기고 누군가에게 기쁜 일들이 생기는데 마음이 착잡해질 때가 있다.

온전히 응원하지 못하고 축하해주지 못하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사실 그런 마음을 갖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훨씬 더 많다. 싫을 만도 하다.

그럼으로 인해서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운 마음은 본격적인 스스로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쪼잔하고 쫌생이 같은 마음은 마음도 아니라며 그 크기에 대한 논란을 삼기도 하고 그릇이 있기는 한 것이냐며 타박을 해보는데 아주 조그마한 마음의 종지그릇이 보이기는 한다.

진짜 이대로 나의 그릇의 크기를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이쯤 되면 또 나에게 이런 소식이 들어온 것 자체를 부정하고 싶고 그런 이야기들은 듣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다면서 모든 것을 끊고 싶어진다.


디지털 디톡스인가?


그런다고 정말 디톡스가 될까. 그렇다면 한 번 끊어보는 것도 좋겠다.

어쨌든 이 세상에는 축하할 일들이 참 많고 뒤쳐지는 나를 위로해야 하는 순간들도 참 많다.

이유 없는 위로와 응원들은 사실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얼마나 세상이 어려운지 요즘은 다짜고짜 괜찮다며 위로를 건네는 손길도, 책들도, 글귀도, 마음도 많이 있다.

그만큼 세상이 따뜻해진 건지, 이 마저도 사실 돌아보면 그걸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니 경계해야 하는 것들인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세상이다.

먹고사는 문제들은 어쩌면 현실적으로, 절대적으로 가벼워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늘 그랬겠으나 인생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지고 무거워지기만 하는 것 같고 그냥 살아가는 긴장도가 높다.

모두가 시한폭탄과도 같다. 본인도 마찬가지이고.


이것이 맞나?라는 질문을 하는 것보다는 이것이 정말 나에게 잘 맞는 답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 나에게는 조금 더 소중한 마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정답을 찾는 것보다 어떤 것을 정답으로 만들어 가는 데에 나의 힘을 좀 더 쏟아보면 그 과정이 썩 유쾌하거나 즐겁지는 못하더라도 돌아보면 남겨볼 만한 추억의 한 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에 우린 늘 움직이긴 해야 한다.

마음이든, 몸이든 솔직히 생각해 보면 바쁠 때 더 많은 일들을 해내고 생각도 더 많이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머릿속도 비워지는 것 같다. 좋은 의미는 아니다.


이게 맞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당신도, 멈춰있다 못해 이제는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 같은 본인에게도 다행인 점은 있다.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살펴보려고 하고 있다는 것.

질문만 던지면 사실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그게 어딘가.

아예 스스로에게 질문조차 던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면 답을 찾다가 지쳐 이제는 정답 따위 없다는 것은 알겠으니 그럼 그거 찾는 노력도 안 할 것이고 굳이 그럼 생각도 할 필요 없는 것이지 않냐며 다 내려놓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혼란스러운 시기가 또 올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아무래도 어떤 때에는 극복을 해야 하는 시절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극복이 어떤 것을 위한, 어떤 것에 의한 극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답은 없지만 어떤 것이든 결과는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실패든, 성공이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든 결론은 늘 난다.

잘 생각해 보면 슬프거나 기쁜 감정에 집중해서 그렇지 언제나 인생에는 결론들이 있었을 거다.

좋든 싫든 결론은 있는 것이고 사실 우리도 언젠가 끝이 난다. 영원불멸의 삶은 없으니까.

죽어보지 않아서 그 이후의 삶은 잘 모르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볼란다. 너무 머리가 아프다.

아마 신해철 씨의 이야기처럼 태어난 것으로 우린 이미 목적을 달성했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정말 이 삶은 보너스게임이니 하고 싶은 것들 해보고 그러다가 죽어도 여한이 없는 그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인생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생각하고 고민하며 시간을 잘 보내다 보면 어떤 것이든 결론이 날 것이다.

결국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은 대응의 연속이다.

하다가 잘 안된다고 해서 정답을 찾지 못했다며 주저앉아서 이제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땡깡부리기엔 인생이 너무 길기도 하다. 무엇이든 해볼 만도 한 시간들이다.

아마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며 늘 젊은 사람들의 시간과 기회가 눈에 들어오던 인생의 선배들은 오히려 더 설레는 시도와 기회들을 마주하고 있지 않을까.

아이러니하지만 이미 겪어본 만큼 생각의 깊이도 깊어지고 고민도 해볼만큼 해보았기에 더 가벼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이미 정해진 정답보다 내가 만든 정답이 조금 더 맛깔나지 않을까.

(정답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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