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행복하겠다.
이제야 어떤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진정으로 고민한다는 느낌이 있다.
행복을 알았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고민과 사유가 행복과 연결이 되는 것인지, 그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이 어떤 느낌인지
아주 어설프게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고, 그만큼 행복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존재다.
어찌 보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목표는 나를 옭아매는 그 시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하기 어려운데, 아니 더 나아가서
난 뭐가 행복인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행복하게 살겠다는 목표는 세워야겠고 그러다 보면 목표가 모든 것을 잡아먹고 갉아먹게 되어
정작 행복하게 살지 못할 것 같은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그만큼 무엇이 행복인지 알아가는 것도, 그 행복을 찾아가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도,
행복하게 살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더 먼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의 연속이다.
먹고사는 것도,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제 나는 누군가를 믿고 함께 일을 할 수 있을까, 등등
힘든 시간 후에 이를 받아들이고 맞이해야 하는 또 다른 시간들은 꽤 고통스럽고 아프다.
상처가 나고 고통스러운 간지러움을 넘어 새살이 돋고, 그 새살 위에 다시 상처를 입어가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인생은 어떤 상처가 올지, 어떤 방식의 상처를 입게 될지 알 수 없기에 더 무섭고 아리다.
원래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것들을 보면 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왜 저렇게 까지 할까, 저렇게 하고 싶을까, 과연 저렇게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의미를 가진다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기에 저렇게 열광하고 뜨겁게 응원하는 것일까.
감성적인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로서는 인지적 공감능력으로 커버해야 하는 상황들이 많기에
여러 상황들을 맞닥뜨리는 순간 대부분 배우고, 배워서 성장해야 한다. 어렵다.
그때마다 결심했던 것 같다. 행복한 척하지 말자.
진정으로 온 마음 다해 행복한 순간이 오면 맞이하자.
행복한 척하다가 진짜 행복이 왔을 때 모르고 지나치지 말고, 그러고 나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건방지게 지금 행복한 듯 이런저런 호들갑 떨지 말고 진짜, 정말 왔을 때, 그때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그렇게 맞이하고 아무런 의도나 불손한 마음 없이 진정으로 행복하자.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도 순수한 마음에 감정을 쏟아내듯 글들을 써 내려갔던 시간이 점점 지나고,
감사하게도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어가면서 나의 마음에도 자꾸만 이상한 감정들이 찾아왔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글을 더 봐주실까,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까.
고민은 진심으로 했지만, 사실 그렇게 글을 쓰면, 그건 내 옹졸한 '척'이었기에. 그만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도 그만, 그렇게 할 거면 글을 쓰는 것도 그만. 못 견디게 고통스러웠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글을 쓴다는 창작활동은 작가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도 않았던 내게
생각지도 못한 고통을 안겨주었고, 이것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하는지
한 달이 넘도록 매일 밤 고심하게 만들었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배운 이런 때의 방법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 본질을 마주하고 성실하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나의 첫 10편의 글은 아프다 못해 읽는 사람들의 마음도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는 날카로운 글들이었다.
내게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그 순간의 행위였고, 이로써 나는 일단 한 발 앞으로 내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내딛고 나니 어쨌든 보게 되는 시야는 달라졌고, 내 마음에도 새로운 방이 하나 생긴 듯하다.
이제 그 방에 여러 독자분들이 들러주시기도 하고, 가끔 안부를 물어주시기도 한다.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이제는 더, 더 한 발 느리지만 앞으로 내디뎌보면서 나의 마음과 사유를 공유하며 글을 쓰고자 한다.
단, 남들에게 잘 보이려, 기교를 부리는 글은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매일 밤 다짐한다.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머릿속에 들어오는 날엔 생각을 접고 눈을 감는다. 그런 내가 끔찍하게 싫다.
그런 척, 이런 척 온갖 '척'을 담아 글을 쓰면 귀신같이 기분이 나쁘고, 독자분들도 느낀다.
지금까지도 경계하며 글쓰기를 해왔지만 앞으로는 더 투명하게 글을 쓰려고 한다. 나답게.
모두가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살아가며 인생의 여정을 지나가고 있으며, 나도 마찬가지이기에.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끝없이 사유하고 고찰한다.
그러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독자분들께, 그리고 세상에게.
계속해서 글로 소리쳐보고자 한다.
최근에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한 척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하다.
남들처럼 매일 같이 출근하는 직장도 잃었고, 아직도 미지급된 돈이 몇천만 원에 고민이 많지만,
매일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행복하다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친정식구들과 여행을 다녀오는 와이프와 친정식구들을 데리러 공항을 갈 수 있을 정도로 난 건강하고
짐들을 실을 수 있는 큰 차가 있고, 난 심지어 운전을 할 줄 알고 잘한다.
결혼을 했기에 이렇게 가족이 생겨 와이프 친정 식구들을 데리러 갈 수 있는 기회도 인생에 받게 됐다.
공항 가는 내내, 아니 공항을 가야 해서 준비하는 시간 내내 행복하고 즐거웠다.
행복, 아닐까?
행복한 척하지 말자고 결심한 한 달 내내 스트레스가 줄고, 나의 속은 더 깊어졌다.
와이프가 여행을 간 3일 내내 집들이를 했다. 너무 힘들고 음식을 해서 대접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새로운 시야와 귀감이 되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너무 행복했다.
본래도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담스러웠는데
몇 년 치 만날 것을 다 몰아서 만난 기분이었다.
아무런 의도 없이, 아무런 고민 없이 나의 속 이야기를 내어 놓기만 하면 들어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내 인생에는 축복이자 행복이다. 원 없이 떠들어서 목이 다 쉬었다.
행복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 글을 쓸 수 있겠다 싶었다.
어떤 글이든 나의 생각이든 회사에 관련된 이야기든, 사람에 대한 이야기든 뭐든 쓸 수 있겠다 싶었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모든 사람들, 나의 가족들, 친구들, 모두가
내가 나를 믿는 것보다 나를 더 믿어주는 듯하다.
예전에 나의 귀인과도 같은 사람이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다.
"네가 너를 믿는 것보다 너를 믿는다."
아마 한 번쯤은 어디서 들어봤을 수도 있지만 이 말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그렇게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의 신뢰와 이런 나의 행복을 명분 삼아 다시 써보려고 합니다.
그게 어떤 이야기이든, 무슨 이야기이든 누군가의 마음에는, 누군가의 인생에는 한 줌의 의미가,
한 줌의 도움이, 한 줌의 응원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행복한 척하지 않겠습니다.
자연스레 행복해지도록 하겠습니다.
행복한 척 마세요, 여러분. 행복해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