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차 가을학기 수강신청 기간이었다.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훌라강습을 신청해두고, 스케줄러를 보고 있는데, 다른 일정들이 있어서 4개월동안 수업에 갈 수 있는 날이 3일이었다. 이렇게 못갈 바에는 수강신청을 안하는게 맞지 않나? 고민이 컸다. ‘한 학기 정도는 쉬어도 되겠지? 돈만 내고 안갈려면 뭐하러 신청해?’ 수강생이 10명이 넘어야 수업이 개설되기에 나땜에 수업이 폐강되면 안되니까, 학습관에 전화해서 수강인원이 10명이 넘었는지 확인한 후에 수강취소를 했다.
9월부터 훌라를 못한 지 지금 4개월째에 접어들었다. 두달 쯤 지나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나를 덮쳤다. 이유가 뭘까? 여러가지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 있는데도 이렇게 헛헛한 건 무엇때문일까? 그러다가 어느날은 음악을 좀 들어볼까해서 폴더를 뒤적이다 훌라음악을 마주했다. 훌라음악을 들으니 이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해지더이다. 그래. 나의 일상에 훌라가 빠져서 그렇구나.
도서관에서 독서 모임이 있는 날, 일등으로 도착했다. 텅빈 공간에 들어서니 갑자기 훌라가 추고 싶었다. 음악을 틀고 한라산을 바라보며 훌라 몸짓을 끄집어 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좋을 일인가. 한 발 한 발 옮기며 한 팔 한 팔 움직이는 것이 나에게 주는 건 무얼까? 엔돌핀? 옥시토신? 오랜만에 느껴지는 이 감정을 끌어안으며 춤에 빠져드는 찰나, 누군가 나타났다. 왠지 멋적어서 아무것도 안한 척 휴대폰 음악을 중지했다.
송년회를 크게 하는 모임에서 장기자랑을 하는데, 예선전을 영상으로 치른다. 나도 훌라댄스로 도전해볼까? 지금은 쉬는 중이지만, 도전해보는 건 해볼만하니까. 선선한 가을이니까 바닷가도 많이 춥진 않을거야. 바다에 나가서 삼각대 세워놓고 훌라를 해보자. 나의 버킷리스트도 이루고말이지. 기대감에 발이 동동 굴러졌다.
어쩌다보니 아이들이 없는 시간을 내지 못해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오면서 말했다.
“엄마는 훌라댄스 영상을 찍을거야. 바닷가에 가서 찍을 건데 너네도 같이 갈래?”
……
2초 후, 딸들이 물었다. “엄마 혼자?”
“엉.”
……
2초 후, “하지마.” “그러지마.” 라는 두 딸년들!
“왜왜왜왜왜~~?? 엄마는 할거야~~” 흥칫핏쳇.
살짝 바람빠진 풍선마냥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혼자서라도 가야지. 막 춥지도 않고 날씨가 딱이구만! 그런데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 예선전인데 영상미가 중요할까? 어차피 본선은 무대에서 하는걸테고, 예선에서 배경을 중요시하진 않을 것 같다. 바다에서 찍는다고 점수를 더 얻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냥 집에서 할까?
쪼그라들었던 풍선은 바람이 푸슈슉 빠지면서 저 멀리 날아가버렸다. 햇살이 좋은 오후니까, 마당에 삼각대를 폈다. 신발을 벗고 음악을 틀고 영상을 찍었다. 마당에 사는 우리집 강아지 요미가 왔다갔다 하면서 멋대로 출연했다. 요미를 멀찌감치로 옮기고 다시 영상찍기 시작. 둘째가 나와서 구경을 한다. 오! 관객이 생겼군. 좋아좋아. 어느새 둘째는 요미랑 놀이삼매경이다. 영상을 찍는데 딸래미 웃음 소리와 함께 요미가 등장했다. 다시 찍어야겠군.
여러번의 시도끝에 영상을 다 찍는데 성공했다. 두 곡을 찍어서 제출하고 한달여쯤이 지난 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래잉. 훌라는 역시 아직 대중적이지 않은거지. 내가 못했다는 생각은 안 한다. 노래가 너무 잔잔하긴 했어. 불합격이래도 도전했음에 의의가 있는겨. 도전 안했으면 속으로 ‘내가 혹시 본선에 갈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데 한번 해볼껄’하는 미련의 문장이 계속 남아있었을 거야.
바다에 나가지 못한게 못내 아쉽다. 훌라 동기생들에게 연락을 해볼까? 연락해서 날잡고 우리끼리 깔깔거리면서 바다에서 훌라를 춰보는거지! 언제 한번 연락해야지 하는데 일상에 치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새 바람이 차가워져버린 날, 전화를 하고 단톡방에 바다 훌라를 제안했다. ‘바닷가 훌라? 그건 잘 모르겠고! 수업하는 날 놀러와!’라는 말만 돌아왔다. 힝.
이미 추운 겨울이 와버렸다. 그렇다면, 내년 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