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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흐른다

by 명랑소녀

스윙판에서 만난 남자랑 결혼을 해서인지 나의 댄스 유전자에 남편 것까지 더해져서 현지, 선우는 춤 세포가 풍성하다. 현지는 사교성도 나를 뛰어넘어, 바닷가에서 다이빙하며 놀 때 만났던 여자분이 현지는 ‘극E’라고 말해줄 정도인데반해, 선우는 아빠의 내성적인 성격을 이어받아 가족 외에 사람들 앞에서는 거의 춤을 추지 않는다. 그래도 저학년까지는 많이 친한 지인들 앞에서는 브레이크댄스라며 나름 현란한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었지만, 4학년부터는 얄짤이 없다.


현지는 뒤집기를 하고 엎드려 있을 때부터 음악이 나오면 들썩거렸다. 배를 깔고 엎드려 고개를 들고 두 팔 두 다리를 흔들면서 리듬을 탔다. 앉기 시작하면서는 엉덩이 씰룩씰룩, 상체를 좌우로 왔다갔다. 걸을 수 있게 된 후로는, 계단참이 있으면 올라가서 공연을 했다. 현지는 자신에게 가족들의 시선을 고정시켜야만 했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기만점이어서 사탕 선물을 받기까지 하며 그녀의 공연은 멈출 일이 없었다. 어린이집 알림장에는 선생님의 “현지는 흥이 참 많아요.”라는 기록이 이어졌다.


어리이집 발표회에선 단연코 빛났고, 지인들을 집에 초대하면 디너쇼가 열렸다. 인생에 한번 보는 어린아이의 공연을 손님들은 반겼는데 나는 매일봐서 지겨울 정도였다. 현지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는 동네 동생들을 모아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동네 이모 삼춘들을 불러모아서 우리집 뒷데크에서, 마을입구 언덕에서, 마당에서 공연했다. 저녁시간 밥하다 말고 어리둥절하게 불려나온 어르신들은 감사하게도 저어하는 표정 없이 어린아이의 발랄함을 즐겨주셨다.


마을에서 크게하는 축제 무대에 연신 올라가서 춤을 추니 사회자가 현지는 더 올라오지 말라고 할 정도로 무대를 제집마냥 잘 올라갔다. 나는 멀리 떨어져 자리잡고, 내 딸이 아닌 척 하고 있었는데, 내 시선을 옆에 분이 눈치챈건지, 딸이냐고 물으신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대답을 듣지도 않고 하는 말. “쟤는 뭐가 되도 될 애여.”


교내 행사로 치러지는 율동 공연에 내가 일이 있어 불참했더니 아는 엄마들에게서 영상이 도착했다. 현지만 보인다면서. 어쩜 저렇게 흥이 충만하냐고. 너무 잘한다고. 엄마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꼭 묻는다. “엄마 닮은 거예요???”


남편의 어머니에게 어릴 적 남편에 대해 물어보니 학교가기 전까지는 꼭 현지처럼 춤 공연을 했다고 증언하셨다. 학교가고부터는 부끄러웠던지 안했다고. 남편은 전혀 기억이 안난다고 잡아떼지만 술에 취할 때면 드러나는 그남자의 유전자에는 댄스기능이 적재되어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반면에, 나는 별명이 ‘곰상’일 정도로 움직임과 리액션이 적은 어린이였다. 나의 댄스 세포가 깨어난 건 듀스를 만난 고등학교 때부터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현지는 6학년, 선우는 4학년이다. 올해 여름 현지는 영어수학 학원은 그만 다니고 싶으니, 대신 댄스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꿈이 있다면서. 하기 싫은 아이를 학원에 등떠밀면 그만한 시간낭비 돈낭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일단 영어수학 학원은 그만다니는 거 오케이. 하지만, 댄스? 학원을 다녀야하나? 시골이라 동네에는 댄스학원이라는게 없으니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하는 곳에만 있는데…


현지는 3~4학년에 발레학원을 다녔다. 발레를 하는 모습이 우아하고 이뻤다. 몸 라인도 이뻐지고 자세도 좋아져서 내심 흡족했다. 발레리나가 꿈이라며 꿈판에 강수진 사진을 붙여두고 나중에 프랑스 발레팀에 들어갈 거라 했다. 강수진의 책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는 두 번이나 통독했다. 강수진에게 손편지도 쓰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예술의 전당에 가야했다. (가기만 했고, 만나진 못했다. ㅋ)


그랬던 현지가 성대하고 감동적인 발레공연을 한 차례 하고 난 다음 달, 발레를 그만하겠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발레는 자기에게 너무 심심한 것 같다나? 이렇게 한 순간에 놓아버릴 수 있는 거였나? 댄스를 보내도 공연하고 나면 어느날 그만두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는걸? 그래, 댄스학원비가 영어수학학원보다 비싸진 않으니, 스스로 버스타고 다닌다고 하면 보낼만 하기에 허락해주었다.


학원에 인사를 하고 위치를 파악한 후, 버스 타는 곳을 같이 걸어가면서 답사했다. 근처에 토스트집도 익혀서 배고플 때 요기하라고 알려주었다. 유학보내는 것도 아니지만, 시골에 사는 6학년 어린이는 버스를 두번이나 타고 멀리까지 나다니는 생활은 처음인지라 이것저것 일러주었다. 현지는 긴 시간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군소리 하나 없었다.


몇 달 후에 현지는 공연반을 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공연반은 비용이 많이 들기에 남편과 여러차례에 걸쳐 어두운, 때로는 격한 대화를 나눠야 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우여곡절 끝에 현지는 공연반을 시작했다. 하루하루 실력이 늘어나는 게 보였다. 마당에서 바베큐를 할 때면, 현지의 춤사위를 보는 게 이제는 지겹지 않고 기대되었다. 내 손을 벗어나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시작하는 내 딸을 응원하고 싶었다.


공연팀이 대회에 나가고 수상을 했다. 금상, 대상 연신 상을 받으며 현지는 어린마음에 얼마나 행복하고 뿌듯할까. 영어수학이랑은 점점 더 멀어졌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이제는 곧 중학생이 될 내 딸의 인생은, 그 인생 안에서 댄스는 어떻게 변해갈까? 나와 남편의 유전자가 현지의 삶에서 어떤 꽃을 피울지 적잖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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