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ritten by C
미니멀 라이프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은 이미 오래 전에 내렸다.
우리는 식구가 많지만, 식구가 많아서 미니멀 라이프를 살지 못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건 웃기지도 않는 변명이다.
남편은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남들이 버리려고 내놓은 물건들 무더기 속에서 기가 막히게 무언가를 찾아내는 신비안의 소유자가 있기 마련이다. 남편이 딱 그런 사람이다. 덕분에 우리는 버리지 못하는 것들과 주워 온 것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나는 남편에 비해서는 잘 버리는 사람이지만, 비교 대상이 남편만 아니라면 남부럽지 않게 이것저것 껴안고 사는 사람이다. 대학생 시절에 산 옷도 여전히 있고, 티셔츠 하나도 십년, 십오 년쯤은 거뜬히 입는다.
어떤 식으로도 쓸모가 없어질 때 버린다. 그럴 때는 왕창 버린다. 그런 일은 남편 모르게 일어난다.
어쩌면 미련한 미련일 뿐이다. 읽은 책들, 그리고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읽지 못한 책들, 기록한 것들과 기념한 것들, 그리고 달리 이름 붙일 수 없는 잡다한 것들, 그런 것들을 모두 껴안고 사는 일들 말이다. 그중에는 선물 받은 것들도 있고, 이제는 세상에 없는 이들로부터 물려 받은 것들도 있다.
오래 전에 남편은 비디오테이프를 그렇게 사 모았다. 훗날 아이들에게 물려주겠다고 했다. 물려줄 재산은 없지만, 부모의 취향은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 얘기의 엔딩은 비극이다. 책도 그렇지만 비디오테이프는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 어떻게 해도 효율적인 보관이 불가능해서 우리는 그걸 쌓아 침대를 만들고, 책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제주로 이사하면서 모두 없애 버렸다. 파일 다운로드와 USB의 시대를 거쳐 스트리밍과 OTT 시대에 걸맞은 나의 결단이었다.
이제 남편은 버리지 못하고 간직한 것들에 아이들 핑계를 대지 않는다. 우리가 모아둔 것들은 다만 우리 삶에 대한 해설이거나 각주일 뿐이다. 때로 그런 것들은 유산이기 전에 짐이다.
어떤 날은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집안에 처박혀 있는 우리의 어떤 삶 혹은 어떤 짐을 생각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해 벌떡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러면 새벽 세 시든, 네 시든 일어나 앉아 정리를 시작한다. 버릴 것들은 왜 이렇게 늘 새롭게 발견되는가, 한숨이 난다. 때로 어느 시절의 물건들은 다행스럽게도 그 시절의 우리를 고스란히 되살려낸다. 머니를 쓱쓱 닦아 새로운 자리에 꽂아두거나 세워두거나 담아둔다. 그러다 보면 손이 새까매진다. 맥시멀 라이프는 먼지도 많은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