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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04. 2024

정말 장범준의 드럼이야!

내 남편은 어떻게 드럼을 갖게 되었나 1 - written by C

남편이 새벽부터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떠보니 5시쯤 되었나. “사고 싶은 드럼이 당근에 나왔어!” 이 남자가 밤을 샌 건가? 그러고도 남을 자이긴 하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음악인 부부들과 친교를 나누고 있다. J-I 부부는 직장인 오케스트라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고, K 부부의 남편은 우리나라 최고 밴드의 베이시스트다. 다 음악을 하는데, 우리 부부만 아니었다. 내가 아는 바, 남편은 음악에 관해서라면 좀 불행한 남자다. 귀는 열려 있고, 재능은 젬병인. 나처럼 말이다. 아무튼 이런 사정으로 남편의 음악 로망이 오랫동안 억눌려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제든 기회만 된다면 음악인으로도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그의 마음에는 늘 있었다. 
 
 최근 그의 단순한 사고 회로가 작동했다. 그는 우리 부부만(혹은 나는 빼더라도 자기만이라도) 뭐든 연주하면 일 년에 한 번쯤 우리끼리 공연도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동네 초등학교 앞 음악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다 찢어진 드럼을 테이프로 붙여서 쓰는 학원이었다. 남편의 ‘그레이 로망’이 폭주했다. 그러니 장비에 대한 욕망이 들끓었다. 낮에는 초등학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드럼을 배우고, 밤이 되면 중고 사이트를 뒤졌다.
 
 나는 잠결에 비몽사몽으로 그가 들이민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았다. 뭐, 드럼 세트가 있었다.
 
 “좀 제대로 봐.” 그가 닦달했다. “장범준이 드럼 연습할 때 썼던 거래. 아니, 그 보다도 가격이 싸! 30만 원 안 넘으면 사준댔잖아. 딱 30만 원이야! 이것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날 밝으면 맨 정신에 볼게. 어느 동네에 있는 거야?”
 
 “사북!”
 
 “화북? 가깝네!”
 
 “아니, 사북! 강원도 사북!”
 
 “무슨 소리야? 제주도 당근에 어떻게 사북 물건이 나와?”
 
 잠이 다 깼다. 맞다, 이 남자는 당근 거래의 원리와 원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그의 휴대폰에는 당근 어플이 없다. 당근만 아니고 카카오톡 어플도 없는 남자다(지금은 깔아놓긴 했다). 무려 2020년에! 지독히 옛날 사람인 그는 자기가 궁금한 게 있으면 책을 펼치고,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중앙로로 나가고, 거기 없으면 마지막으로 포털에 검색을 한다. 노트북을 열고 포털에 중고 드럼을 검색한 결과, 당근에 올라온 게 링크돼 있던 모양이다.
 
 “내 폰에는 그 물건이 안 떠. 이건 제주도에 있는 것만 보여. 동네 설정이 그렇게 됐거든.”
 
 “그럼 설정을 사북으로 바꿔.”
 
 “안 돼. 인증해야 돼.”
 
 “그럼 내가 이따가 여기 사이트에 전화해 볼까?”
 
 아니야, 당근은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넌 그런 전화를 할 수 없어! 오전 내내 그에게 당근마켓에 대해서 설명하느라 열변을 토했다. 일단 그걸 사려면 구매자가 사북에, 하다못해 적어도 육지에는 거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까스로 이해시켰다. 그는 납득하기 싫은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물론 나도 아쉬웠다. 그쯤의 가격이라면, 그게 화북, 아니 제주에 있기만 하다면, 그 드럼을 사줄 생각이 있었다. 남편의 음악적 로망이야 모르겠고, 무려 장범준의 드럼이었다는 이력을 갖고 있는 물건이니까.
 
 “우리 아들놈 부대가 강원도 고성이잖아? 아들한테 말해서 사면 안 돼?”
 
 이 남자는 정말 제정신일까? 그때는 마침 코로나가 극성인 기간이라 아들이 휴가도 못 나오는 와중이었는데, 그런 아들에게 뭘 어떻게 하라고? 대체 이 아버님은 어찌하여 이 모양이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온 욕을 꾹 눌러 참았다.
 
 그렇게 소란스런 오전이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의 거동이 수상쩍었다. 휴대폰은 그저 시계 용도로나 쓰는 사람이 자꾸만 누군가와 통화를 해대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오지 마, 제발 오지 마.
 
 그는 웃고 있었다. 웃지 마. 웃지 말라고!
 
 “S선배가 예전에 사북에서 교사 생활 했던 거 알지?”
 
 알긴 알지. 그러나 그것은 30년 전의 일인 걸. 선배가 제주에 내려온 지도 한 이십 년은 넘었을 텐데. 설마, 이 작자가 그 이력을 이용하려 드는 건가? 한 줄에 꿰기에 어려운 질문들이 내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었다.
 
 “내가 전화해 봤지! 그런데 대박인 게 뭔지 알아?”
 
 아니 몰라, 알고 싶지 않아. 그러나 나는 입을 뗄 겨를도 없었다.
 
 “S선배가 가르쳤던 제자가 드럼 내놓은 사람이랑 친구래!”
 
 어이가 없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지? 그리고 이 황당한 상황이 그를 용기 있는 구매자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어떤 용기는 무례하고 무도하다. 그의 계획은 이랬다. 일단 S선배를 통해서 제자에게 연결한 뒤, 당근 판매자에게 드럼을 제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겠다는 것. 그래,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단순히 짐작하건대, 드럼 판매자는 누군가 트럭 같은 걸 끌고 와서 한 번에 싹 실어가주는 조건으로 30만 원에 내놓은 것일 터였다. 그걸 일일이 분해하고 포장해서 제주로 탁송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라고 하겠다고? 친구의 30년 전 은사님의 후배이니까? 이 정도면 사돈의 128촌 정도의 관계가 아닌가. 중고 판매자가 당연히 그래 줄 것이라는 몰상식의 소유자, 내 남편. 이걸 어쩌지? 아무리 포장에 들어가는 수고비와 배송료를 부담하겠다고 해도 그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암튼, 자기 딴에 그런 훌륭한 계획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는 그 미션 임파서블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래 봐야,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화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S선배의 30년 전 제자의 친구에게서 걸려올 전화를 말이다.
 
 그는 5년 된 휴대폰의 배터리가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충전기 앞에 매달려 전화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혼자 보기 아까웠다. 아니다. 정정해야 하겠다. 누군가 같이 본다면 남 부끄러운 장면이었다. 그러다 며칠 뒤 전화벨이 울렸다. 남편은 기다림에 지쳐 퀭한 눈의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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