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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아침 Oct 04. 2024

남편의 드럼, 그리고 자기만의 방

내 남편은 어떻게 드럼을 갖게 되었나 2 - written by C

“사북이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네, 그렇죠. 

아,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저렇게 ‘네!’를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긴 했구나. 남편의 공손한 ‘네’로 이루어진 전화통화는 길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목소리는 공손했고, 표정은 매우 불행해졌다. 믿거나 말거나 장범준이 썼다던 드럼이 주인공인 그 드라마에는 어떤 반전도 없었다. 제주에 사는 구닥다리 아재의 눈에도 매력적인 그 드럼을 다른 이들이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사북 인근에서 남편보다 한 발 빠른 구매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다시 말하지만, 나에게는 그 드럼을 허락할 의사가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제풀에 지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자꾸  현실을 거스르고자 했다.
 
 이번에는 울산에서 드럼이 발견됐다. 울산의 판매자는 나름 적극적이었다. 남편의 통화 내용을 정리하자면 판매자는 이런 과정을 거칠 예정이었다. 드럼을 하나씩 분해한다. 가전제품 대리점에 가서 커다란 박스를 최대한 많이 구해온다. 분해한 드럼들을 판매자가 직접 일일이 담는다. 그런 이야기들 끝에 판매자도 문득 현타를 느낀 것 같았다. 울산의 판매자가 물었다. “그 다음은요?”
 
 “아, 그러니까 그 다음은 배나 항공을 이용해서…….”
 
 “그건 안 되겠는데요.”
 
 “그렇죠. 그건 무리죠. 제 생각도 그래요.”
 
 이쯤에선, 이야기가 끝나야 한다. 하지만 남편은 방법을 찾아낸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테마처럼 말이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남편은 도통 순발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귀신처럼 뭔가를 생각해냈다. 
 
 “그럼 제 후배가 울산에 있는데, 거기에 맡겨주실 수 있을까요?”
 
 하필 때마침 후배 하나가 울산 본가에 가 있었다. 남편을 돕고 싶다는 선의가 충만한 후배였다. 하지만 생각들 해보시라. 그 귀찮은 일에 동원될 마음이 흘러넘친다 하더라도, 이 일은 평범한 시민의 선의만으로 가능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울산의 드럼은 그렇게 멀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천안에서 가격에 맞는 드럼이 나타났다. 드럼은 참 많기도 하고, 돕겠다는 후배도 계속 나왔다. 


결론만 말하자면 당연히 그 모든 드럼들은 그의 삶에 도착하지 못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좀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남편의 꺾이지 않는 마음은 그의 삶에서나 중요한 것이다. 50대 후반의 중년 남자가 자기 욕망의 실현을 위해서 낮은 포복으로 안간힘을 쓰는 그런 모습, 그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런데 또 그를 돕겠다는 이들의 마음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내 남편은, 현생에서는 물론이고, 전쟁에서도 나라를 구할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돕는 자들의 선의는 더 가치 있는 일에 쓰여야 마땅하지 않을까? 
 
 마지막 조력자가 등장했다. 엉뚱하게도 나의 엄마였다. 세상 대부분의 장모와 다를 바 없이, 그녀는 당신 사위에게 순진할 정도로 진심이다. 남편은 언젠가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린 일이 있다. 


“제가 설거지를 너무 많이 해서 습진이 생겼어요. 이것 좀 보세요.”


곰발바닥 같은 손을 내밀면서 되도 않는 투정을 부리는 사위를 향해, 엄마는 진심을 다해 조언했다. 


“아이구, 이거 어째! 그러니까 설거지할 때는 꼭 고무장갑을 껴야 돼!” 


엄마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그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증명이 됐다. 기모가 들어간 꽃무늬 고무장갑을 두 개 사서 하나는 당신이 쓰고, 하나는 사위에게 주었다. 그때의 마음 그대로, 엄마는 드럼 때문에 좌절한 사위에게 위로가 되고자 했다.
 
 “이제 금방 생일인데, 한도를 두 배로 올려. 60만 원! 내가 사줄게!”
 
 생일? 석 달이나 남았는데, 엄마…….
 
 장모의 선심은 사위의 배포를 키웠다. 허나 소비의 이치란 요망하다. 언제나 선을 넘게 한다. 30만 원이 한도일 때는 자꾸 50만 원 짜리가 눈에 들어오고, 50만 원 한도면 괜히 70만 원 정도는 도전해 보고 싶기 마련이다. 이 갈등을 조율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투쟁력이 필요하다. 그는 몇날며칠 당근을 뒤지고 또 뒤졌다. 저러다 죽겠다 싶을 때까지 뒤졌다.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 끝에 마침내 남편은 제법 괜찮은 드럼을 집안에 들이게 됐다. 나는 그에게서 운명의 사랑을 만난 청년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내가 허락한 한도 이상의 행복을 만끽했다. 제대로 된 방음시설을 갖추는 것은 무리였다. 지하실을 온갖 천들로 막아놓았다. 나는 잠깐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혔다. 어쨌든 그는 ‘자기만의 방’을 꾸렸다. 그렇게 버지니아 울프는 대한민국의 어떤 중년 남자의 삶에서 즐겁게 오독되고 있었다. 당근마켓을 십분 활용하여 멋진 드럼 선생님도 스스로 구했다. 드럼 연주 유튜브를 끼고 살았다. 남편은 드럼에 한해서는 기꺼이 신식 문물을 활용했다.
 
 그렇지만 도파민만으로 완성되는 사랑은 없는 법이다. 그는 매일 조금씩 풀이 죽어갔다. 누구든 무한히 꿈꿀 수 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꿈 앞에서 초라해질 수 있다. 그는 비트를 쪼갤 때마다 자신의 초라한 초상을 확인했다. 욕망은 푸르렀으나 몸은 늙었으며 재능은 드럼 페달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는 다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드럼을 찾던 집요함을 성실성으로 바꾸고 날마다 열심히 드럼을 때려대는 수밖에.
 
 미리 결론을 말하자면, 남편의 민폐 가득한 드럼 스토리 1막은 새드엔딩이었다. 후배들의 배려로 어느 직장인 밴드에 합류했지만, 혼자 연습할 때는 그럭저럭 연주를 하다가도 합주만 시작하면 고장 난 드러머가 되어 뚝딱거렸다. 밴드 연습만 다녀오면 허옇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이미 백발인 머리가 한층 더 샜다. 자신이 평생 좋아해온 책을 읽는 일과 악기를 연주하는 일은 차원이 달랐다. 그가 미치도록 매달리는 조기축구와 드럼은 세계가 달랐다. 결국 그해 연말 직장인 밴드 공연을 그는 포기했다. 나와 나란히 객석에 앉아서 자기를 빼고 공연하는 무대를 향해 박수를 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근에서 만난 드럼 선생님은 서울로 떠나버렸다.
 
 내가 보기에 그는 당근 밭에서 구를 때 가장 행복했다. 연쇄적인 드럼 실패담 속에서 가장 반짝거렸다. 그는 그 장비 구입 욕망을 성취해버리는 바람에 불행한 남자가 되었다. 드럼은 남편의  ‘자기만의 방’에 완벽히 홀로 남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그의 드럼 스토리 2막 엔딩을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지금 나는 강력한 빌런이길 자처하는 중이다.
 
 “저 드럼, 당근에 팔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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