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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 Oct 22. 2021

제국주의와 빈곤의 역사




 그림1의 그래프로 다시 돌아가보자. 1980년대 이후 빈곤율의 궤적이 '자유 무역', '신자유주의'의 승리라는 신낙관주의 내러티브는 사실과 멀다 하더라도, 산업 자본주의의 승리는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의심할 것 없이, 인류는 산업화를 통해 역사상 유례없는 부를 창출해내었다. 하지만, 이게 곧 모두의 후생이 증가하는 결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염세주의자들은 팔짱을 끼고 이렇게 말해왔다: "그래, 경제는 성장했지. 하지만 평균이 무슨 의미가 있어?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말 몰라?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동시에 불평등이 커져서 힘없는 사람들은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이렇게 말하는 염세주의자들에게, 오히려 자본주의의 전개가 빈곤율을 줄여왔다는 그림1의 그래프는 강력한 반증이다. "부익부 빈익빈은 없다. 가난한 사람들도 더 부유해졌다." 과거가 좋았다고? 신낙관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행복한 과거는 나쁜 기억력 때문이다!” '신낙관주의자'들은 먼 과거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현대인들이 상상하는 아름다운 목가적 과거는 없다. 인류의 9할이 최소한의 '기본적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근대 자본주의의 전개를 바라보는 낙관주의자들의 시각은, 그 비참함을 자본주의가 줄여왔노라고 말한다. 반면, 비관주의자들은 오히려 자본주의가 빈민들의 비참함을 가중했다고 말해왔다. 사실, 사상가들과 지식인들에게는 이런 비관주의자들의 관점이 더 익숙하다. 고전이 된 그의 저서 «거대한 변환»에서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18세기 사상가들 사이에서는 빈민과 진보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었다. 대량의 빈민은 불모의 나라와 미개한 나라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것이며, 비옥하고 가장 문명화된 나라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존 맥팔레인 John M'Farlane은 1782년에 기술한 바 있었다. 1774년에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자마리아 오르테스 Giammaria Ortes는 국가의 부는 그 나라의 인구에, 불행은 국가의 부에 비례한다는 것은 공리라고 단언하였다. 또 애덤 스미스조차도 사려깊은 방식으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노동임금이 가장 높은 것은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므로 맥팔레인이 영국은 이제 그 전성기에 접근했기 때문에 빈민의 숫자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그의 믿음을 표현했을 때 유별날 견해를 대담하게 표명한 것은 아니었다. (p. 131) 


 산업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새로운 계층인 임노동자들의 실태를 체계적으로 관찰, 분석한 엥겔스의 «잉글랜드 노동계급의 상황»은 18세기의 이 '비관주의'적 관점을 계승한 고전인 셈이기도 하다. 하지만, 18-9세기 자본주의의 실태에 대한 이 '민족지적' 기술들은,  수량 자료를 제대로 수집하고 분석할 과학적 역량이 없었던 빛바랜 옛 사상가들의 센치한 감상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산업 자본주의의 전개와 더불어 극빈율이 눈부시게 감소해왔다는 신낙관주의자들의 그래프를 보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빈곤율이 높았던만큼 인류가 산업 자본주의의 심화와 더불어 경험한 빈곤율의 감소는 훨씬 더 눈부시게 보인다.  


 그럼, 산업화 이전 인류의 8-9할에 이르는 인구가 최소한의 '기본적 욕구'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극한의 궁핍한 삶을 살았다는 신낙관주의자들의 말은 과연 사실일까? PPP지수와 물가지수의 사용이 애초 측정하고자 했던 '극단적 빈곤'의 구성개념과 멀어지게 만든다면, 같은 방법을 200년 전의 먼 과거로 소급해 빈곤을 측정하는 그림1의 그래프가 과연 의미있는 궤적을 그리는지 의심스러워진다. 과연 1820년의 '1.9달러 소득'은 오늘날의 1.9달러 빈곤선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의미할까? 세계은행의 빈곤 측정법을 비판해온 경제사학자 로버트 앨런(Robert Allen)의 최근 연구는 그렇지 않다는 실증 분석을 내놓고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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