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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인 May 19. 2022

이스털린의 역설, 반복되는 오해


 최근에 행복경제학의 대가 리처드 이스털린의 «An economist’s lessons on happiness»가 국내에 «지적 행복론»으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저서가 국내에 번역된 것이 하나도 없어 아쉬워했던 차에 번역서를 보게 되니 반가웠는데, 동시에 개인적으로 씁쓸하게 느끼는 오류도 알게 됐다. 아래 사진은 온라인 서점 «지적 행복론» 페이지​에서 출판사가 공식으로 제공하고 있는 카드리뷰의 한 페이지다. 출판사 공식 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카드리뷰는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항간의 오해를 답습하고 있으며, 이전에 없던 새로운 오류도 만들고 있다.


그림 1


 첫째,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아무리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건 이스털린의 역설이 아니거니와(항간의 오해), 둘째, 저 그래프는 시계열 그래프가 아니라서 단기와 장기를 구별할 수도 없다(새로운 오류).


 항간에 이런 모양의 그래프를 이스털린의 역설을 뒷받침하는 그래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지적 행복론»에서 이스털린 본인이 직접, 저런 모양의 그래프를 두고 소득과 행복 사이 ‘임계점’을 논하는 주장들을 비판하는 대목이 있다. 원서 기준 130쪽에는, 아래와 같이 소득과 행복 사이의 관계에 일정한 기준점이 있어 이를 넘어가면 그 상관관계가 사라지는 그래프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그래프는 아래에서 볼 수 있듯 ‘횡단면cross section’ 데이터로 그려진 그래프다. 즉, 주어진 한 시점에 소득과 행복 사이에 나타나는 상관관계를 그리고 있는 그래프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스털린의 역설은 소득과 행복 사이의 횡단면적 관계가 아니라, 시계열적 관계에 방점이 있다. 정확히는, 황단면적 관계와 시계열적 관계의 불일치가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그림 2; «An economist’s lessons on happiness», p. 130


 ‘역설’은 모순을 낳는다. 카드리뷰의 설명대로, 이스털린의 역설이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아무리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라면, 이건 사람들의 상식과 직관에 반하는 이론일지언정, 논리학적 의미에서 ‘모순’, ‘역설’은 아니다. 이스털린의 역설이 ‘역설’인 이유는, 소득과 행복 사이 상관관계가 횡단면에서는 존재하는데, 시계열에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소득과 행복 사이에 플러스 상관이 있다’는 명제가 횡단면에서는 참인데 시계열에서는 거짓인, 모종의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주어진 한 시점에 돈이 많은 나라와 적은 나라, 돈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을 각각 서로 비교해보면, 돈이 많을수록 행복하지만, 시간의 변화에 따른 변화율을 비교해보면, 소득이 더 많아진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 소득과 행복 사이 횡단면적 관계만을 보여주는 저 그래프로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지지할 수 없다. 횡단면적 관계와 시계열적 관계 사이의 ‘모순’이 이스털린의 역설이기 때문이다. 원서 130-131쪽에서 이스털린 본인은 오히려, 위와 같은 그래프에서 나타나는 상관관계를 근거로 기준점 이하에서는 소득이 증가할수록 행복도 증가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시계열 데이터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며 반박하고 있다. 131쪽에 등장하는 아래 세 개의 그래프들은, 소득 수준이 ‘기준점’ 이하인 저개발 국가였던 나라들에서도, 비약적인 경제 성장이 행복의 증가를 선물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최근까지 이스털린은 저 개별적인 사례들뿐만이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시행된 각각 67개, 123-132개 국가의 서베이 데이터들을 가지고도, 1인당 GDP와 행복 사이에 시계열적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계 분석을 내놓고 있다(Easterlin & O’Connor, 2020​).


그림 3; «An economist’s lessons on happiness», p. 131


 이스털린 본인이 소득과 행복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모델은 맨 위 그림 1이 아니라, 원서 136쪽에 있는 아래 그림과 같다. ‘단기’적으로는, 소득(Y)과 행복(H)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경기 후퇴로 소득이 한 단위 감소할 때 행복이 감소하는 폭이, 소득이 한 단위 증가할 때 행복이 증가하는 폭보다 훨씬 커서, 경기 순환의 한 주기가 완료되는 ‘장기’에는, 소득과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실제로, 옥스포드대 De Neve 교수와 연구진들의 2018년 연구는, 소득과 행복 사이 상관관계가 플러스 성장률일 때 비해 마이너스 성장률일 때 더 크게 나타난다는 것을 실증해보인다(De Neve et al., 2018​).


그림 4; «An economist’s lessons on happiness», p. 136


 즉, 이스털린이 말하는 ‘단기’와 ‘장기’는 경기 순환의 주기를 염두에 둔 구분이다. 그림 1은 ‘단기’, ‘장기’를 경제발전의 단계와 조응하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어, 이스털린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고 있다. 아마도, 이스털린의 역설을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아무리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알고 있는, 항간에 널리 퍼진 오해를 바로잡지 않은 채, 이를 1인당 GDP가 단기적으로는 행복과 상관관계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한다는 이스털린의 실제 주장과 조화시키다보니 빚어진 새로운 오류일 테다.


 그럼, 애초에 이스털린의 역설이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아무리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라는, 이 널리 퍼진 오해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사실,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아무리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건,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현상에 대해 제기되었던, 하나의 유력했던 해석(Clark et al., 2008​)에 가깝다. 이런 해석이 가능했던 것은, 시계열적으로는 소득과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이스털린의 발견이, 자료의 한계로 인해, 처음에는 주로 부유한 서구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가령, 이스털린이 이스털린 역설을 처음 제기한 1974년 논문에서, 소득과 행복의 시계열을 비교할 수 있었던 나라는 미국뿐이었다(Easterlin, 1974​). 그래서, ‘이스털린의 역설’이라고 이름붙여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미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소득의 증가가 행복을 증가시켜주지 못한 까닭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림 3의 일본과 중국, 인도처럼, 과거에 소득 수준이 낮았던 나라들이 급격한 경제 성장을 경험하면서도 행복이 증가하지 않은 사례들을 발굴하며, 이스털린은 ‘이스털린의 역설’이 부유한 국가들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근데, 그런 내용의 책을 번역한 출판사에서, 이 책을 소개하며, 이스털린의 역설을 항간에 잘못 알려진 그대로 설명하는 건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지적 행복론»을 소개하고 있는 출판사 SNS 계정 (https://twitter.com/onwillbooks/status/1514141061295538176?s=21&t=4vPg


 물론, 이스털린의 입장에 대해 학문적으로 이견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스털린 자신은 정작 반대하는 해석을 ‘이스털린의 역설’로 알고 있는 것은 오류다.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아무리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건, 이스털린의 역설이 아니라, ‘이스털린의 역설’로 알려진 현상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며, 정작 이스털린 본인은 이 해석에 썩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오류가 이 출판사의 카드리뷰에서만 발견되는 건 아니다. 경제 기사에서부터 네이버 지식백과, 유튜브 교양채널 영상에 이르기까지, 지적 권위와 신뢰도를 갖출 것으로 기대되는 매체들에도 똑같은 내용의 오류가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을 이 브런치 계정으로 발행한 적이 있다. 네이버, 구글 등에 ‘이스털린의 역설’을 검색하면 상단에 노출될 정도로 상당히 많이 읽혀 흡족해하고 있었으나, 불과 몇 달 전 번역된 서적의 소개에서도 이런 오류를 발견하게 돼 같은 주제로 또 한 번 끄적여보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추신: «지적 행복론» 책의 내용은 매우 유익하므로, 모두 읽어보기를 권해드립니다.


추신: 이 포스팅에서 지적한 오류들은 모두 시정되었다. 이후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이 매거진의 다음 글을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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