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의 무게

무심했던 내가 지나온 시간에게 배우는 것들

by 김종섭

세상을 살다 보니, 참 복잡한 일들이 많다는 걸 늘 겪어왔으면서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예전엔 그저 주어진 일을 아무 의심 없이 했다. 이유 불문하고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깊이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단지, 다들 그렇게 하니까. 말 한마디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는지도 모른 채,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게 얼마나 무거운 일이었는지 그땐 몰랐다.


이제는 말 한마디조차 누구에게나 조심스럽다.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해 보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조건’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왠지 영혼 없는 말처럼 어색해 신중해졌다. 어느 날은 누군가의 표정 하나에 마음이 쓰이고, 또 어느 날은 내가 했던 말이 돌아와 스스로를 찌른다. 예전의 나는 그런 걸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지금은 그때 내가 얼마나 무심했는지, 그 무심이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성공 하나를 위해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듯 경쟁했던 기억도 있다. 그땐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지금은 양심을 말하지만, 그때는 양심 따위나 죄책감은 전혀 없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한 일이었고,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들이 마음에 눌리기 시작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가 희생되어야 하는 세상. 그 구조 안에서 나도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르며 멍해지는 시간이 늘어간다. 그 시간이 오히려 기분 좋은 명상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기도 한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이 시 구절처럼, 내 삶의 어느 한 장면이 피어나기까지 그 안에 숨어 있던 인내와 시간, 그리고 이름 모를 고통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남들은 보지 못했던 것들, 나조차 잊고 살았던 것들. 이제 와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의 생각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문득, 이런 마음과 행동의 보상은 과연 있었던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제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기까지도 숨을 죽인다. 괜히 말하면 허황돼 보일까, 나만 꿈을 꾸는 것 같아 두려워진다. 세상이 달라진 걸까, 내가 달라진 걸까. 예전에는 왜 두려움 없이 나설 수 있었는지, 그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지금은 도무지 알 수도 이해도 되지 않았다. 그때 그것이 ‘용기’였다는 걸 이제는 알지만, 문득, 지금 나는 그 용기의 소멸기에 접어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하는 나약함이 나를 압도하곤 한다.


그땐 몰랐다. ‘몰랐다’는 건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아직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아는 건 교과서처럼 정돈된 책내용이 아니라 시간이고 경험,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전해지는 마음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삶의 방식은 풀리지 않는 수학 방정식처럼 어려울 때도 있지만, 적어도 이제는 말 한마디, 내 행동 하나, 내가 서 있는 자리의 무게를 외면하지 않고 싶다. 그게 내가 지금에서야 알게 된, 그땐 몰랐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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