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욕망을 내려놓고 순리에 순응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어느새 검은 머리보다 하얀 머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몇 년 전, 머리 곳곳에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염색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새치'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었는데,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마음에 염색을 시작했던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계속 한 달에 한 번꼴로 염색해 오던 것을 중단하고 몇 달 전부터 염색을 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아내는 염색했을 때보다 자연스러운 흰머리가 지적이고도 중후한 멋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마도, 그 말이 몇 달간 염색을 하지 않고 버텨온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본 작은아들도 아빠의 흰머리가 잘 어울리고 멋스럽다며, 이제 굳이 염색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응원해 줬다. 그동안 염색은 늘 혼자 해왔다. 염색을 하지 않으니 머리숱도 더 풍성해 보이고, 머리가 다시 자라나는 것 같다며 아내는 이제 순리대로 나이에 맞게 늙어가는 모습으로 살자고 격려해 줬다.
며칠 전에 큰아들이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아들의 눈에는 그날따라 아빠의 모습이 유난히 흰머리가 많아 보여 늙어 보였던 것 같다. 아들은 내게 염색을 권유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아내는 아빠의 흰머리가 자연스럽고 멋있다고 아들의 말을 반박했지만, 큰아들은 세월에 밀린 듯한 아빠의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큰아들의 말도 듣고 보니 염색을 해서라도 좀 더 젊어 보이는 것도 시기와 때가 있는 듯하여 아들과 통화를 할 때 생각이 나서 외출길에 근처 마트에 들러 염색약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염색을 마쳤는데 머리색이 유난히 어색해 보였다. 몇 달 동안 흰머리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싶었는데, 머리를 말리고 보니 푸른색이 살짝 맴돌았다. 그제야 염색약이 잘못 선택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블랙'인 줄 알고 샀던 염색약이 '블루블랙'이었던 것이다.
결국, 오늘은 외출하면서 한동안 쓰지 않았던 모자를 다시 썼다. 어색한 머리색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아내는 푸른 기가 살짝 도는 머리색도 세련미가 있고 젊어 보여 좋다고 응원해 줬다. 내심 아내의 말이 위로가 아닌 진심 어린 격려이기를 바랐다.
60대에 자연스럽게 희끗희끗한 머리로 사는 게 좋을까? 아니면 젊어 보일 수 있을 때까지 염색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에 잠겼다.
결론은 아내의 말대로 나이에 순응하기로 했다. 몇 달 전부터 아내가 집에서 내 머리를 잘라주기 시작했다. 오늘 염색한 머리에 머리를 한 번 깔끔하게 잘라보자고 했다. 염색에 머리까지 잘랐을 뿐인데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 것 같았다.
더 젊게 살고 싶은 욕망은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끝이 없겠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내 모습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방법도 하나의 멋진 모습으로 늙어가는 것일 것이다.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