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숲에서 길을 묻는다

60대에도 다시 피어나는 삶의 이야기

by 김종섭

나는 아직도 이민 중이다. 이 일이 영원히 갈지, 어느 날 이민생활이 끝날지, 아직도 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민의 길은 때로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처럼 느껴져, 가슴 한쪽에는 묵직한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만 같다.


오늘도 나에게 기대는 하지 않지만 막연하게 다시 물어봤다.

"60대에도 다시 꿈을 꿔도 될까요?"


“이 나이에 무슨.” 이 말이 내 귀에 들려올 때 나는 무심히 흘려버리지 못했다. 어쩌면 “이 나이에 무슨”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종종 이 말을 핑계 삼아 새로운 시작을 주저하곤 했다. 특히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온 60대가 되면, ‘새로운 꿈’이라는 단어는 낯설고 무겁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60대는 단순히 남은 삶을 정리하고 편안히 쉬는 나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아직 젊다고 할 수도 없지만, 사회의 분위기는 나이보다 젊게 보이도록 제도적 선심을 베푸는 듯하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에는 여전히 단절된 것들이 많다. 한국이 아닌 낯선 땅에서 쉼 없이 달려온 세월을 돌아보며, 아직 모든 짐을 내려놓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나에게 이민은 꿈의 씨앗을 품고 있던 땅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생존이 유일한 꿈이었다. 영어를 배우고, 일자리를 찾고,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거친 황무지에 씨앗을 뿌리는 것처럼 고단했다. 그렇게 십 년이 넘도록 흘러온 이민 생활을 돌아봤다. 삶은 신기하게도 나에게 다시 한번 씨앗을 심을 기회를 줄까? 요즘은 실행하는 힘보다 기회에 맞물린 기다림이 때론 허망하고 지루한 시간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런 기다림 속에서 나는 나만의 새로운 루틴을 만들었다. 베란다에서 꽃과 나무에 물을 주고 애정을 주면서 키우는 일,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향하는 '두 번째 출근'길에서 새로운 글을 만나는 일... 이 모든 소박한 일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


하루는 숲길을 걷다가 누군가 버린 장미를 발견했다. 시든 꽃잎을 보고 그냥 지나치려다, 아직 싱싱한 줄기를 보고 집으로 가져와 화분에 심었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잎이 돋고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그 장미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내 삶도 이와 같다고. 젊은 시절의 꿈과는 다르지만, 내 마음속에 남아있던 미련과 작은 잔재들을 다시 소중히 보듬고 키워내는 것이라고.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꿈이 아니라, 내 삶의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꿈을 꾸기로 자신과 결정했다.


나는 낯선 땅 캐나다의 일상에 조금씩 나를 심었다. 산책 중 남에 집 앞마당에 활짝 핀 무궁화를 보았을 때, 눈물겹게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서 있었다. 낯선 풍경 속에서 가슴에 숨겨놓았던 고향의 풍경이 불쑥 솟아나는 것만 같았다. 밴쿠버의 어느 공원에서 우연히 한글 시비(詩碑)를 마주쳤을 때의 감동은, 내 삶이 두 문화 사이에서 얼마나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 고독하지만,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그 순간들이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


나는 아직도 이민 중이다. 그리고 오늘, 60대에 들어선 나는 새로운 꿈을 꾸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그 꿈은 화려하지 않은 일상 속에 숨겨져 있다는 믿음으로, 나는 그것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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