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한국 매장에서 마주한 금빛 도시락, 추억을 불러낸 한 장면
치과 치료를 마치고, 바로 근처에 위치한 한국인이 운영하는 잡화점에 들렀다. 그곳은 다이소와 비슷한 구조로, 생활용품부터 문구류까지 다양한 한국 제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국의 특정 물건들은 해외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이 많아, 가끔 그러한 물건들이 그리움으로 밀려올 때면 종종 들르는 단골 가게다.
오늘은 배드민턴 라켓볼을 사러 간 길이었다. 다행히 한국에서 쓰던 익숙한 제품이 세 개 세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전날 월마트에서는 열 개짜리 묶음만 있어 불필요하게 양이 많아 망설였는데, 오늘은 치과 진료를 마친 김에 낱개로도 살 수 있을 것 같아 잠시 들렸는데 다행히 생각했던 낱개를 판매하고 있었다.
다른 물건도 같이 구경을 하다가 문득, 진열대 한쪽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물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노란빛 양은 도시락통이었다. 가격표에는 17.14달러(약 17,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생각보다 비싼 편이었지만, 그 금빛 도시락 하나가 오래된 기억을 단숨에 불러냈다.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그 도시락은 특유의 누르스름한 금빛과 사각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가볍지만 쉽게 찌그러지던 내구성, 뒤틀려 잘 맞지 않던 뚜껑, 그리고 밥알이 새어 나오던 틈새까지 모두 그때의 기억을 그대로 불러냈다. 아마도 지금의 도시락도 그 시절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한 듯했다.
겨울이면 교실 난로 위에 도시락을 층층이 쌓아 데워 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밥 위에 계란후라이 하나, 그리고 김치 하나이면 충분했던 그때의 점심 도시락은 1960~80년대, 넉넉하지 않던 시절 부모님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소박한 한 끼였다.
그땐 부모님 세대의 일본어 흔적이 남아, 도시락을 일본식으로 ‘변도(弁当)’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조차 사라져 버린 말이지만, 당시에는 낯설지 않은 표현이었다.
캐나다에서는 도시락 문화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점심을 직접 싸 가지고 다닌다. 그래서 일반 매장에서는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 재질의 도시락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나 역시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매일 도시락을 챙겨 다녔다.
그래서인지, 비록 캐나다이지만 한국 제품을 파는 매장에서 양은 도시락을 다시 마주했을 때 그 순간은 더 특별했다. 단순히 물건을 본 것이 아니라, 오래 전의 나 자신과 마주한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 한국의 어느 매장에서 오늘처럼 양은 도시락을 발견했더라도, 그 추억은 지금처럼 특별했을 것이다. 익숙한 물건이 주는 감성은 장소보다 마음의 거리를 더 좁혀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도시락 문화가 사라진 한국에서는 이곳 캐나다에서 본 지금의 도시락을 한국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낯선 땅에서의 발견이 더 뜻깊게 느껴졌다.
한때 한국에서는 복고 열풍이 불면서 식당이나 주점에서 ‘추억의 도시락 메뉴’가 등장하기도 했다. 김치와 반찬을 담고 도시락 뚜껑을 닫은 뒤, 양손으로 힘차게 흔들어 비빔밥처럼 만들어 먹던 바로 그 메뉴다. 단순하지만 따뜻한 그 맛과 감성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보온 도시락과 스테인리스 도시락이 대세가 되었지만, 양은 도시락은 복고의 상징으로 다시 일부 우리라는 도시락 세대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 오래된 금빛 도시락통은 단순히 음식을 담는 그릇뿐만 아니라 따뜻했던 시절의 낭만을 되살리는 소중한 매개체가 되었다.
잊혀져 있던 것들을 뜻밖의 장소에서 마주할 때, 그것은 마치 과거로의 짧은 여행 같다. 오늘처럼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노란 도시락 하나가 내 마음속 오래된 시간을 불러 세웠다. 아련하지만 따뜻한 그 기억이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다정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 잠시 다녀온 하루, 그것이 오늘의 힐링 같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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