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이민 생활 속, 잊고 지냈던 족보의 이름과 뿌리의 의미를 묻다
이곳 캐나다에 살면서 일가친척과 자연적으로 멀게 느끼며 산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그렇다면 한국 생활에서의 일가친척이라 하면 과연 어디까지를 말할 수 있을까. 시대가 변하면서 그 범위에 대한 인식은 세대마다 다를 것이다. 옛날에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촌보다, 매일 얼굴을 보는 이웃이 더 가깝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은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 살면서도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오히려 더욱 간절하게 다가오는 시대가 되었고, 한국의 '가문'이라는 개념은 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몇 달 전, 아들은 일과 관련되어 우연히 서울에서 같은 성을 가진 분을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서로 동성동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본가가 어디인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놀랍게도 그분이 바로 우리 집안의 종친회장이었다. 그때 아들은 인연이 이렇게 깊은 뿌리로 이어질 줄 몰랐다며 신기해했다.
아들은 종친회장님이 꼭 큰아빠랑 비슷한 분위기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뵐 때마다 우리 집안 느낌이 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피로 이어진 정(情)과 뿌리의 감각이 살아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피가 이어준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했다.
오늘, 아들은 해외(네덜란드)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석하면서 또다시 종친회장님을 만났다고 한다. 낯선 이국땅에서의 뜻밖의 재회는 가슴 뛰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아들은 그분과의 대화를 염두에 둔 듯, 카카오톡으로 제게 불쑥 물어왔다. “아빠, 우리 집안의 행렬(派)이 어떻게 되는지 혹시 아세요?” 아들은 항렬에 대해 할아버지, 아버지, 본인의 대(代)는 알고 있었지만, 후대까지 정확한 내용을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아들의 질문 속에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잊고 있던 가문의 맥(脈)을 잇고자 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순간, 잠시 생각을 더듬어 보았다. 예전에 부모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는 ○○파 몇 대손”이라는 말을 들고 어디에다가 상세히 메모까지 남겨 놓았는데, 지금은 어디에 적어뒀는지, 내용은 또 왜 이렇게 가물가물한지 알 수 없었다. 눈앞의 현실에 바쁘다는 핑계로 소중한 뿌리를 잊고 지낸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억을 되살려 보기 위해 종친회를 검색해 보았다. 대종회라는 홈페이지가 검색되었다. 홈페이지에는 다양하게 종친회 소식, 뿌리연구, 전통자료 등 여러 항목이 정리되어 있었고, 그중에서도 눈에 띈 것은 ‘인터넷 족보 열람’이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클릭하자, 예상과는 달리 “인터넷 족보 열람은 파종회 승인 후 가능합니다. 파종회로 연락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떴다.
사실, 종친회 홈페이지가 있다는 사실조차 이번에 처음 알았다. 족보가 책장이 아닌 온라인상에서도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종친회 활동이 이렇게 체계적이고 방대하다는 것도 놀라웠다.
결국, 인터넷 족보를 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느 파였는지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미 작고하셨고, 누님과 형님이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내일은 누님께 연락해 가문의 내력을 묻고, 잊고 지냈던 족보의 '파'를 반드시 확인하여, 아들에게 확실히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가문’이 가족의 자랑이고 개인에게는 인생의 근본과도 같은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세대 간에는 명확하게 다른 기준으로 갈라져 있다. 눈에 보이는 재물과 명예, 현실적인 성공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한동안 '족보'와 '가문'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서 먼지처럼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족보'의 실질적인 의미가 사라진 요즘 시대의 변화가 새삼 느껴진다. 예전에는 족보의 '돌림자'를 이름에 넣어 쓰는 것이 당연했고, 이름만 들어도 가족뿐 아니라 먼 친척 간에도 끈끈한 유대 관계와 서열이 형성되었다. 특히, 여자들에게는 항렬 없이 자유롭게 이름을 지을 수 있었던 반면에, 남자들에게는 가문의 룰에 따라 항렬에 맞춰 이름을 지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가문의 룰은 이제 점점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적응하기 어려운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요즘은 돌림자가 아닌 순수한 한국말이나 부부간에 의미가 담긴 이름, 또는 이름이 아름다운 순서식으로 바뀌어 갔다. 이는 족보라는 형식적인 관계보다 '개인의 의미'를 더 중시하는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번 대종친회 홈페이지 검색을 계기로 생각이 달라졌다. 아들이 우연히 종친회장님을 만난 것은 단순한 만남이라 치부할 수도 없다. 핵가족화와 개인주의가 극대화된 요즘 세상에, 같은 성을 가진 동성동본의 어르신을 만나 혈연의 유대감을 느꼈다는 사실은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캐나다 땅에서 살아가며 한국의 뿌리를 잊고 있던 내게 아들의 질문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가까운 부모 형제간에도 이해관계 때문에 관계가 소원해지는 세상 속에서, 보이지 않던 뿌리를 통해 '우리 집안'이라는 끈끈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 세대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오마이뉴스https://omn.kr/2ftf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