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거실로 다시 돌아온 국민체조

짧아진 낮, 길어진 뱃살... 60대 부부를 구원한 추억의 국민체조

by 김종섭

겨울에는 유독 비가 많은 밴쿠버의 날씨는 밤 또한 유독 길고 어둠이 성급하게 찾아온다. 2025년의 동짓날이었던 12월 22일이 지난 지도 벌써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야속한 해는 오후 4시 반만 되면 서둘러 자취를 감춘다. 저녁 식사 후 소소한 즐거움이었던 저녁 산책은 겨울의 시작과 함께 이른 어둠 속에 갇혀버렸다. 일찍 저녁을 먹고 난 뒤의 묵직한 포만감은 소화되지 못한 채 고스란히 뱃살로 내려앉는 기분이라 늘 고민스러웠다.

“이러다가는 건강은커녕 뱃살만 더 늘어나겠어.”


우리 부부의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 아내가 묘안이라며 내놓은 것이 바로 ‘국민체조’였다. 사실 처음엔 체조로 무슨 운동이 될까 싶어 듣는 순간 코웃음부터 났다. 아내를 바라보면서 “국민체조? 그게 운동이 되겠어?”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저녁 시간에 마땅한 대안이 없어 못 이기는 척 아내의 제안을 수락했다. 거실 소파 위에 아이패드를 세워두고 우리 부부는 옆으로 간격을 벌린 후 유튜브에서 익숙한 국민체조 영상을 찾아 클릭했다.


“국민체조~ 시작!”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어느 남성의 그 우렁찬 구령 소리. 세상에, 이게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리인가. 학창 시절 흙먼지 날리던 월요일마다의 아침 조회 시간, 그리고 군생활 연병장에서의 마지막 기억을 끝으로 장장 40년 만에 거실에서 아내와 함께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4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구령에 맞춰 팔을 뻗고 옆구리를 굽히는 동작들이 마치 어제 했던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지만, 왠지 동작이 부자연스러웠는지 아내는 운동 내내 웃음을 터뜨렸다. 몸의 유연성이 예전 같지 않은 현장을 들킨 느낌이다.


체조를 하면서 예전보다는 둔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2세트 연속 동작에 들어가면서부터 몸의 동작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가슴 한구석이 벅차오르며 코끝이 찡해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체조는 이름 그대로 ‘국민’ 모두의 체조였다. 교복 입은 학생들부터 공장의 근로자들, 사무실의 직장인들까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은 음악에 맞춰 같은 몸짓을 공유했던 시절의 상징이었다. 60대에 접어든 우리 부부가 거실에서 이 율동에 맞춰 체조를 하고 있으니, 시공간이 뒤섞인 듯 순식간에 열여덟 소년과 소녀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우리 부부는 당분간 ‘딱 3세트만 반복하자’고 약속했다. 만만하게 보았던 국민체조의 위력은 2세트 중반부터 드러났다. 등줄기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하더니 몸이 무겁고 숨이 살짝 가빠왔다. 겨울철 날씨에도 불구하고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야 했을 정도였다. 제자리 뛰기 동작에 이르러서는 우리 부부는 약속이나 한 듯 숨을 몰아쉬며 박장대소했다.


오늘 아침, 기분 좋은 반전이 일어났다. 매일 한 시간 반씩 산책을 거르지 않는 우리 부부는 오늘도 어김없이 산책길에 나섰는데, 걷는 도중 약속이나 한 듯 양쪽 허벅지에 뻐근한 근육통이 찾아온 것이다. 매일 공원을 걷는 운동을 하는데도 이런 통증이 느껴지는 걸 보니, 산책할 때와 체조할 때 사용하는 근육이 확실히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걷기 운동만으로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던 전신 운동의 효과를, 어제 단 한 번의 국민체조만으로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어제부터 우리 집 거실은 저녁마다 작은 운동장으로 변신하고 있다. 화려한 최신 유행 홈트레이닝 영상 대신, 투박하지만 정겨운 “제자리 걷기!” 구령 소리가 거실 가득 울려 퍼진다. 40년 전에는 그저 의무감으로 마지못해 했던 체조였지만, 이제 우리 부부의 저녁 삶에는 활력이 넘치는 리듬이 거실의 생동감 속에 소화를 돕는 새로운 에너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일찍 찾아오는 겨울밤은 어느덧 원망의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다. 잊고 살았던 ‘국민의 몸짓’은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생활 리듬의 시너지가 되어주었다. 오늘 저녁에도 태블릿 속 그 아저씨의 구령에 맞춰 힘차게 팔을 휘둘러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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