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미아가 된 세대, 노인은 싫고 중년은 어색한 세대

100세 시대, 삶의 한가운데 선 60대에게 필요한 새로운 이름 찾기

by 김종섭

아내와 나란히 걷는 산책길은 걷는 시간 이외에 대화의 시간이 걷는 내내 이어지며 서로의 인생 보폭을 맞춰가는 소중한 통로가 된다. 발걸음을 맞추다 보면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지나온 과거, 다가올 미래, 그리고 출가한 두 아들에 관한 이야기와 우리 삶에 공존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대화의 주제가 된다. 오늘도 우리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삶의 주변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문득 요즘 나를 부르는 호칭들이 참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물었다. "준우 엄마, 요즘 내 나이에 불릴 호칭들이 참 애매하지 않아? 준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아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노인이지요, 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단호함에 왠지 무엇엔가 한방 얻어맞은 그런 기분이었다.

우리 부부의 호칭은 늘 큰아들 이름에 엄마를 붙여 아직까지 남들이 부르는 '여보', '당신'이 아닌 유일무이하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이어져 온 호칭이자 소통의 언어다. 그런데 나이와 함께 찾아오는 사회적 호칭은 나의 고집과는 상관없이 낯선게 몰아세운다.

자녀들이 이미 출가해 '할아버지'라는 명칭만큼은 부인하고 싶어도 사실 낯설지 않은 나이일 수는 있다. 하지만 아직 '손주'가 없는 상황에 할아버지라는 호칭은 아직도 거북스럽다. 더더구나 노인이라는 호칭은 심리적으로 강도가 더 높게 느껴진다. 60대라는 나이, 도대체 어떻게 불러야 할까.

요즘 중년이라고 부르는 범위가 시대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회에서 설정한 그 경계는 여전히 애매모호하다. 과거에는 40~50대를 주로 의미했지만, 100세 인생이라는 현대에는 그 범위가 넓어져 통념상 40세에서 60세 사이를 중년으로 본다고 한다. 하지만 '60세 사이'라는 말은 결국 60세가 되면 중년의 끝자락을 넘어야 한다는 뜻이니, 59세와 60세의 경계선만 바뀐 한 살 늘어난 느낌일 뿐이다. 예전의 40~50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신하며, 어쩌면 기분 좋은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까닭에, 실제 60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회적 기준인 60세는) 현실적으로 거리감이 느껴지는 생소한 수치로 다가올 뿐이다.

법적, 통계적 기준을 봐도 명확한 답은 없다. 최근에는 건강 상태와 사회적 활동량이 높아지면서 중년의 끝을 더 늦게 잡는 경향이 생겼다지만, 여전히 60대를 중년이라 부르기엔 어딘가 쑥스럽고 어색하다. 그렇다고 옛날 기준을 들이대며 노인이라 부르기엔 우리는 너무나 젊고 역동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문득 몇 년 전 직장 생활을 할 때가 떠오른다. 직장 내 데이케어 센터에
가끔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서너 살배기 아이들은 '아저씨'라고 불렀다. 그때 참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은 가식이 없다. 그저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정직하게 불러주기 때문이다. 그 맑은 눈에 비친 나는 아직 '아저씨'라는 현역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또 하나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몇 년 전 장모님이 살아계실 적에 70대 어르신을 보고 '젊은이'라고 칭하시는 것을 보고는 당시엔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90대 장모님의 눈에는 70대가 한창인 젊은이로 보인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실제로 70, 80대 어르신들을 만나면 60대인 내 나이는 '한창 좋을 때'라는 소리를 듣는다. 물론 나보다 한참 아래 세대들은 결코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결국 호칭을 나이에 맞게 양심적으로 쓰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젊어 보이고 싶어 하지만, 나이에는 속일 수 없는 무게가 매겨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젊게 살겠다는 소망은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자, 때로는 붙잡고 싶은 억지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산책길 위에서 '나'를 정의할 호칭을 찾으며 묵묵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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