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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Sep 05. 2024

60대가 처음 면접을 보러 갑니다

60대에 취업은 스펙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한 후 2달 남짓 선거캠프에서 밤낮 구분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항상 움직여 주는 습관자체는 일을 떠나 생활의 리듬을 항상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행동이었다.


캠프는 선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이 났다. 한국에 도착한 이후 선거 캠프가 끝나기 전까지 한 번도 개인적으로 쉬어보지 못했다. 이제부터 당분간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주어진 시간은 여유롭게 여행모드로 전환한 것이다.


가볍게 산책도 하고 인근 도시로 여행 다녔다. 여행에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먹거리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해외에 사는 교민들의 로망은 한국 가면 맛있는 것, 특히 평소에 생각해 두었던 것을 먹기 위해 맛집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해외에서 한국 먹거리를 충족하기엔 현지 한인 식당으로는 한계가 있다. 한국에 오면 어떤 음식이든 선택이 자유로워 무엇보다 먹는 것만큼은 행복을 느낀다.

"손이 가요  손이 가 자꾸만  손이 가요@@깡"

우리 귀에 낯설지 않은 어느 회사 CM송을 기억한다. 음식 이외에도 자꾸만 손이 가는 과자. 빙과류. 건어물부터 시작하여 한국에 가면 손이 가는 대로 먹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4월 중순부터는 백수의 몸은 더 많이 바빠졌다'집안대소인 큰아들 결혼식이 한국에서 있었다. 며느리가 전적으로 결혼식 준비를 주관하면서 주례 없는 결혼식을 기획했다. 시아버지의 축사가 주례를 대신해야 하는 순서가 다. 며칠 동안 고민 끝에 축사 원고를 마무리했다. 이후, 캐나다에서 아내가 도착하고 며칠 후, 작은아들과 예비며느리가 한국에 도착했다.


바쁘게, 적절하게 그렇게 4월 한 달을 보냈다.


5월엔 꽃이 피었다. 내 가슴에는 확연한 할 일 없는 백수라는 훈장이 주어졌다.

"백수 과로사로 죽는다"

 백수는 하는 일 없이 이유 없이 바빴다. 놀면 지출도 많아졌다. 흔히 노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놀아보니 예전 같이 특별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조건이 갖추어진 젊은 날과는 달랐다. 어떤 날부턴가 마음에 분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주위에 백수가 거의 나와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한국에 가면 콘서트도 가고, 대학로 마로니길도 걷고 연극도 보고 싶었다. 남산도 올라가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고도 싶었고, 옛날에 걷던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싶었다. 막상 가보고 싶었던 곳은 계속 생각 속에만 멈춰있었다.


마침 지역 기업인협회 총무를 맡고 있는 지인이 회원사 장님들에게 자리를 부탁해 두었다고 면접 일정을 통보해 왔다.


며칠 후 회원사 회장님과 면접을 진행했다. 기업이념 중 하나가 나이와 상관없이 능력을 우선으로 한다는 회장님의 경영 소신을 밝히셨다. 면접 과정 중에 개인적인 생각까지

많은 이야기를 한 시간 이상 나눈 것으로 기억한다. 회장님은 면접 결과에 대해 직답을 주지 않으셨다. 경영일선에 있는 아들과 상의해서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포지션을 결정해서 연락을 주겠다는 내용과 함께 면접이 끝이 났다. 


며칠 후 면접을 진행했던 회장님께서 직접 연락을 주셨다. 사장으로 있는 아들과 상의를 했는데 입사 후 천천히 업무를 파악하면서 일의 포지션을 정하자고 한다. 우선 포지션에 앞서 60대를 써 준 것만으로도 어쩌면 감사한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이면에는 지인의 특별한 부탁도 있었기 때문에 예우 측면에서 채용을 결정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하였다. 지인은 회장님에게 취업을 부탁할 때에는 회사 핵심 부서에서 일할 수 있는 포지션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소개를 한 것이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면접결과가 나와버렸다.


임금 조건이 우선 생각했던 것보다 실망스러웠다. 최저시급 정도의 임금이었다. 물론 회사 급여 기준에 준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경력이 안정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 최저 급여 수준이었다. 회사에서 제시한 급여로는 혼자 생활을 유지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포지션도 없이 입사한다는 것도 사실상 마음에 내키지가 않았다. 지인과 의견을 조율하여 예의를 갖추어 입사를 하지 않는 쪽으로 최종 통보를 했다.


그 후 또 다른 기업체에 면접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곳 회사도 전자에 소개해 주셨던 분의 진행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면접에 참여한  회사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과거의 스펙이 화려했던 화려하지 않았던 60대는 재원이나 경력보다는 건강상태 유무 중점을 두고 면접을 시행하고 있었다. 일종에 신체건강한지를 판단하여 현장에 투입가능 한지를 파악하는 면접이었다. 급여 조건 또한 모든 사업장이 거의 동일한 수준인 것 같았다. 두 군데 회사 면접을 통해 자존감은 물론 좌절감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차츰 한국에서 역이민에 대한 희망이 소진되어 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경력도 있고, 특히 지인의 소개로 인한 사용주와의 직접적인 취업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가졌던 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사용주 입장에서는 굳이 지인의 부탁이라 할지라도 특별히 재고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60대의 경력이 화려하다 할지라도 경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이 제한이라는 것에 중점을 둔 기업인들만의 규칙이 있는 것 같았다. 지인의 부탁보다는 회사의 득이 우선이라는 경영철학이라면 사실상 60대는 솔직히 회사에 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해는 되지만 현실이 비참해진다.


두 번째 직장 면접도 불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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