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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Sep 02. 2024

60대를 부탁해, 대한민국!!

나이는 숫자에 불가하다는 말은 새까만 거짓말이었다

2014년 첫해가 시작하던 1월, 나는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십 년 만에 캐나다 생활을 잠시 뒤로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국에서 살고 싶은 역이민을 위한 탐색전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첫 느낌은 집 나갔다 돌아온 아들 같은 심정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흔히들 세월의 간격을 렇게 표현했다. 십 년, 사실 오랜 시간이 흘러간 세월이었다. 익숙했던 길들마저 지형을 구분할 수 없다. 도심의 이정표가 바뀌었다. 새로운 길을 접어들면 마치 낯선 거리를 걷는 기분이다. 물론, 한국 방문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에도 집안일로 두 차례 다녀갔지만 짧은 여정에 불과했.


한국에서 7개월 동안 지내면서 5번의 이사를 하였다. 버스와 전철을 난생처음 제일 많이 타고 다녔다. 전철과 버스를 연계해서 보통 편도만 2시간 이상을 타고 다닌 것 같다. 한동안 해보지 못한 새로운 일들도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경험을 얻어 간 것 같다.


나는 캐나다를 떠나 역이민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물론 결심이전에도 이민 생활 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고국이라는 품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이민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지금은 달랐다. 한국으로의 역이민이 간절한 소망의 꿈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역이민은 내겐  열정의 시험 무대가 되었다.


세월은 민감했다. 내게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60대라는 나이를 가지고 한국에 오게 되었다. 한국을 떠날 때에는 십 년이 젊은 오십 대였다. 초. 중. 후반의 차이도 민감한 나이이다.

"어이 젊음이"

예전에 저기 저길에서 길을 지나가다가  할머니가 젊은이라는 호칭을 불러주던 길을 만났다. 감회가 새롭다. 지금도 할머니가 살아 계시다면 가능한 호칭이겠지만 내 나이도 벌써 60세인데 생존해 계실 것 같지 않다. 세월의 빠름이 다시금 실감 나는 순간이다. 이젠 할머니가 불러주던 호칭마저 그리운 나이가 되었다. 다행히도 백세인생 덕분에 좀 더 젊게 미루어진 60대의 나이를 가지고 신다. 하지만, 사회에서 보는 60대의 나이에 대한 편견은 여전했다. 누구나 세월 가면 먹는 것이 나이라 했는데 60대를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는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이다.


세월의 나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맞이하는 것, 이 말로 위로가 될까,


한국에서 보내는 60대의 나이는 어쩌면  생애 가장 처절했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몸값을 실력에 평가하던 때와는 달리 60대 나이에서 몸값은 평가하려 하지 않았다. 마치 다 쓰고 은 파지 같은 처절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샤람들은 말을 한다. 60대면 아직 청춘이고 이전의 40대의 나이와 같은 건장한 신체조건을 가졌다고 위로했다. 그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순리에 순응하는 60대를 맞이했다. 60인 나이에도 나보다 연장자이신 어르신들이 대부분 내 나이를 부러워했다. 나 또한 어르신이 부러워하는 나이처럼 50대를 부러워했다. 나이는 항상 편견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인생만사 나이 또한 복불복이다.


나는 60대라는 이유하나로 7개월 만에 고국으로의 돌아오려는 소망 중 하나인 역이민 실패를 인정했다.


나이가 주는 중압감, 사회의 뜨거운 시선과 편견, 자존감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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