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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Aug 31. 2024

우리 집 주방을 공개합니다

이제 남은 17일 동안만 주방 사용을 하고 캐나다로 가야 한다

냉장고에는 이제  남은 한 달 동안 먹을 식량만을 남겨 놓아야 한다. 물론 내일도 주문해 놓은 모둠상추와 대패 삼겹살이 배달되면 좀 더 풍성한 먹거리가 냉장고 안을 비집고 들어 올 것이다.

냉장고 안을 들여다볼 때마다 뿌듯함이 느껴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느낌이다. 어떤 날은 신비감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냉장고 문을 열었다. 나만의 비밀스러운 생계형 전투식량 창고와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찌 되었던, 이제 정해진 한 달 안에 냉장고 속을 편안하게 속 비우듯이 비워나가야 한다. 비단, 냉장고 속만은 아니다. 신선실에 냉면사리와 양배추와 배추김치, 냉동고에 삼겹살, 주방 수납장에 양파와 감자. 4kg에 쌀까지 적절하게 비워가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좀 더 냉장고 속을 파헤치면 물병 속에 비밀이 숨어 있다. 일부 물병 중에 물이 아닌 소주가 담겨 있다는 물병도 있다. 물론 누가 볼까 감추기 위한 눈가림은 결코 아니다. 패티병에 담긴 용량 많은 소주를 사 왔다. 다 마신 빈 물병 일부소주를 분배해서 담아 놓았다.


캐나다로 돌아가면 지금처럼 냉장고 안에 소주를 가득 담아 놓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제일 큰 미련이자 아쉬움이다. 주가 캐나다에 가면 값비싼 양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애주가 해외에 생활하면서 느끼는 제일 큰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젠부터 한 달 이내에 냉장고  음식물어떻게 적절하게 조절해 가면서 비워있어할지가  고민스러운 과제로 떠오른다.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 순간 스캔했다. 삼겹살 8조각과 함께 마늘을 프라이팬에 구웠다. 고기에는 밥과 같이 먹어야 하는 오래된 습관 때문에 밥이 문 문제가 되었다. 오늘따라 전자밥통에 준비해 둔 밥이 없다. 아쉬운 대로 비상용으로 비축해 놓은 햇반을 출격시켰다. 삼겹살을 구워내고 삼겹살 기름에 마늘을 볶아내었다. 이후에도 여전히 프라이팬에 돼지기름만이 남아 있다. 냉장고에서 계란 두 개를 꺼내어 프라이팬에 계란 프라이를 하고, 오징어 젓갈을 고명처럼 식기 그릇에 올려놓았다. 생각대로의 비주얼은 아니었지만, 저녁 식탁에 올라온 음식이 이런대로 만족스러웠다.

저녁밥을 담은 용기는 사실 며칠 전 아들이 배달시켜 준 양념반 소금반 치킨을 담아 배달되었던 재활용 용기중 하나이다. 사실 매번 배달음식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것들이 있다. 배달 용기보면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절실함을 느끼게 된다. 어떤 용도의 용기이든 번쯤은 더 사용하고 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용기 일부를 깨끗이 닦아 보관에 두었다. 번을 더 활용하고 버린다고 환경 개선에 별다른 도움은 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마음에 한 번 더 재활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모인 것이다.


배달 문화는 한국이 단연코 으뜸이다. 비단 식료품뿐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불편 없이 소화해 나갈 수 있어 사람들은 돈 만 있으면 한국이 제일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한다. 그 이유는 다소 냉장고의 몸집도 줄여가는 요인이 될 것이다.


주방의 손길은 이제 주부의 전유물인 세대에서 벗어났다. 십 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남자의 주부 역할은 불편함이 전혀 없이 6개월 동안 수행을 해 왔다. 한국은 섬세한 부분까지 채워주는 사장 경제의 빠름이라는 편리성이 특징적인  매력이다. 신선한 식재료까지 아침 일찍 배달되는 편리성 또한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어제 오후 늦게 주문한 식재료가 아침 일찍 현관 앞에 도착해 있다. 오늘은 왠지 도착 서비스 알람이 없어 확인차 현관

문을 열어본 결과 물이다.


한 달 동안 한국에서 마무리해야 할 일이 비단 주방정리만은 아지만, 주방은 끝가지 배를 채워줘야 하는 사명감이 있다. 남자 혼자

반찬을 만들고 밥을 짓어 먹는 일은 어렵지가 않았다. 항상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부재료. 공급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방은 저장 음식이 항상 존재한다. 유통 기간이 있거나 부패하지 않는다. 보관이 용이해서 부담 없이 반찬대용으로 대처 가능한 매력이 있다.


주방을 제일 먼저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주방은 의식주 해결에 중추적인 역할 때문은 아니다. 삶에 현장과도 같은 것이 주방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잘 정리정돈된 방 내부의 조화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 주방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동안 한국 생활의 거울과도 같은 행보의 흔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제일 먼저

역이민의 이야기를 풀어가기 전에 나의 주방을 먼저 소개하는 순서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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