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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Sep 04. 2024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캠프에 갑니다

나는 한국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캠프로 출근을 한다

성급한 봄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겨울의 잔재가 오래가지 않았다. 봄을 맞이하기 위한 필사적인 개나리의 등장이 무엇보다 빠르게 봄을 재촉한다. 봄이 오기도 전에 봄을 재촉하는 개나리의 성급함은 밉지 않았다.  이른 봄의 알림과 함께 한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한국의 봄을 만끽하게 되었다. 생각만으로 짜릿한 설렘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맞이할 봄의 기대감이 간절했다. 마치, 봄처녀 가슴에 후끈 달아오른 설렘 같은 느낌은 아닐까,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띤다. 어머니의 포근함처럼 고국의 품 안에 봄이 현실로 다가왔다.


한국 생활에서의 시작의 키워드는 만남과 설렘으로 하기로 했다. 귀국 , 시차적응의 시간도 없이 국회의원 후보 선거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당산역에서 잠실역까지 전철을 타고 잠실 환승센터에서 버스를 타고 30분가량 가면 사무실 앞에 도착을 한다. 집에서 출발하여 사무실까지는 대략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가 되었다. 도착한 시간은 아침 7시도 안 된 시간이다. 성급히 이른 새벽부터 서두른 탓에 아침을 일찍 열었다. 5층 엘리베이터에 내리면 제일 먼저 선거 상황실을 마주한다. 사무실에는 아직 출근자의 흔적은 없다. 사무실 도어록에 비밀번호를 터치한다. 도어조작음이 삐리릭~ 정겨운 으로 아침인사를 대신한다. 


캠프 사무실 직원 대부분은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출근을 다. 출근과 함께 상황실에는 실탄과도 같은 유권자들이 후보를 만나기 위해 밀려든다. 유권자 각자 성향도 달랐고, 연령층도 다양했다. 전직 시장이라는 점도 선거에 유리한 선점을 했다.


선거캠프 합류 하여 50일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4월 10일 드디어 선거 투표가 시작되었고 후보는 선거에 낙선을 했다. 정권심판의 영향이 컸다. 며칠 후, 패단식을 끝내고 후보는 캠프 당직자와 함께 일주일 동안 주요 전철역을 순회하며 낙선인사를 했다. 한 번은 현장에 함께 해야 할 것 같아 전철역으로 나가 마지막 캠프 여정을 마무리했다. 


한국에서 1차적인 주요 프로젝트는 렇게 끝이 났다.

 

선거 캠프는 내 인생에 마지막 경험일 듯하다. 누군가는 선거 캠프에 있다고 하면 정당의 대립이 생겨나 못마땅해했고. 누군가는 적극적인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사실 정치 현장에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주변의 호응을 얻어가기에 쉽지 않았다. 심지어는 지인 중 한 사람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연을 끊자는  이야기까지 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맹모삼천지교라 말이 있다. 맹자 어머니가 세 번씩이나 이사하면서 아들을 가르친 교훈적인 이야기이다. 우리 삶의 선택이  찰나의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나는 맹자 어머니가 3번의 이사를 하면서 뜻을 이룬 목적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 정치에 단 1프로의 관심도 없었다. 다만,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이와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의 뜻을 두고 선거캠프로 옮겨왔다. 해외에 살면서 한국사회에 십 년의 공백기간이 있었다. 한국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려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는 극히 단순한 법칙과 같다.


한국에 오기로 마음먹은 시기에 선거가 있었다. 선거 캠프에 가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다. 지인의 소개로 후보자를 만나고 최종적으로 사무실로 출근하기로 하였다. 생각했던 것처럼 캠프에는 날마다 새로운 사람, 활력이 넘쳐나는 사람들이 다가왔다. 인연은 정해진 것보다는 우연한 기회에 맺어지는 인연의 비율도 예상 이외로 높다. 어떤 인연과 함께 하는지에 따라 인생도 함께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당시에는 좋은 인연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는 확신을 얻어갔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내 나이 60대, 지금 같은 행보는 평범한 경험은 아니었다. 색다른 경험일 수도 있고 의미 있는 경험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상처란 자기들. 만의 욕심을 챙겨가는 과정 중에 생겨날 수 있는 상처이다. 사실 같은 선거 내에 여성으로부터 상처를 입기는 했다. 정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대등하지 않았다. 후보자와 긴밀하게 보도문 작성도 해보았고, 상황실에서 여러 유형의 유권자들과도 많은 대화도 해보았다. 선거일 막바지에 달 했을 때에는 이른 아침 출근길 현장으로 나가 유권자들에게 지지도 호소 해보았다, 살아가면서 이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본 적이 없다.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세대에게도 공손히 머리 숙여 인사한 것도 처음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극히 제한적인 일이기는 다.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보았다, 값진 경험을 쌓아 가는 성취욕도 존재했다. 계획대로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선거가 끝난 이후에 가끔씩 만나 소통을 하였다. 하지만, 소통의 방법은 캠프에 있을 때 내용과는 달리 우리 내 사는 평범한 이야기가 모여갔다. 그들의 치열한 삶의 헌장 이야깃거리도 있었고, 고난의 이야기도 있었다.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변신의 폭도 달랐다. 


한국에서의 50일간 가량의 시간은 의미 있게 

많은 사람을 만났던 시간이었다. 처음 의도 했던 계획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엔 계획의 첫 번째 단추는 성공으로 마무리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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