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면접은 더 이상 없습니다
60대라는 나이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
인맥을 활용한 취업에도 이젠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력의 취업이 필요했다. 취업 플랫폼을 통해 취업을 결심하고 이력서에 경력의 비중도 낮추었다. 희망직군 선택란을 작성하면서 희망고문이 시작되었다. 업종 표기를 해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사실 선택해야 할 직종은 원하지 않는 직군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면접의 경험을 토대로 실현 가능한 취업의 문을 알고 있다. 그중 합격률이 높은 직종이 60대에겐 유일한 단순직이다. 선택한 직종은 희망직종이 될 수 없다는 것에 동의를 한다. 자존감도 몽땅 내려놓았다. 이목도 필요하지 않았다.
1 지망에 생산직을 선택했다. 2 지망에는 나이가 들어도 합격선에 경쟁력이 있는 경비를 선택했다. 3 지망에는 운전을 선택했다. 경력에 관계없이, 학력에 관계없이, 나이에 관계없이, 오직 선택의 여지가 없는 60대의 희망과는 거리가 먼 지망직군이다.
1 지망인 생산직은 단순노무라 노령층도 선택의 기회가 주어질지 알았다. 착각이었다. 사용주는 이왕이면 나이 든 한국인보다는 건장한 외국 젊은 근로자를 흔쾌히 선택했다. 이유를 알고 난 이후, 1 지망을 희망직종에서 삭제해 버렸다.
2 지망으로 선택한 경비직은 가끔씩 취업 가능 의사를 묻는 문자가 왔다. 문제는 신임경비자격증을 갖추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 경비직 자격증 취득은 일정시간 교육만 받으면 어렵지 않게 취득 가능한 자격증이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한국국적이 아닌 캐나다 국적이라 자격요건에 해당이 되질 않았다. 결국엔 2 지망도 선택 희망 직군에서 삭제를 했다.
3 지망 운전직은 딱 한 번 제안을 받기는 했다. 업체는 중대형 트럭 운전 경력자를 원했다. 퇴직 전 트럭 운전 경력자에 해당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 또한 자격을 갖추어지질 못했다. 회사에 소속된 운전직은 전혀 소식을 기대할 수 없었다. 사실 젊은 층이 3가지 업종을 선호하는 직업군이 아닌데 여유의 자리가 없다. 분명 나이 제한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삭제가 된 1 지망을 대신하여 항공. 화물 업종으로 변경을 했다. 공항 근처에 누님이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있다. 늘 한국에 오면 같이 살길 희망했다. 누님은 나이가 들면서 형제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매번 불규칙한 주거형태보다는 공항에 취업이 가능해진다면 어느 정도 안정시기 까지는 누님댁에서 출퇴근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공항을 1 지망으로 선택한 이유이다.
공항 근무는 다른 도시와 달리 인근 지역을 제외하고 장거리 구간이라 출퇴근에 불편함이 있는 지역이다. 지역특성상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이어야 한다. 모집요강에는 인근주민 우대라고 명시가 되어 있다. 인근 거주지역 주민이라면 채용회사는 나이를 어느 정도 제한을 두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의 생각을 가지고 공항을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공항 희망 직군으로 변경한 후, 취업 플랫폼에서 매일로 모집 정보를 실시간 보내왔다.
취업 플랫폼에 등록 후 이력서를 아마도 300군데 이상 제출한 것 같다. 1 지망을 변경한 후 면접통보 연락이 왔다. 공항이었다.
"인천 어디 사세요"
인사담당자는 다시 한번 거주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공항 터미널 근교에 있는 덕교동에 삽니다"
이력서에 명시된 거주지와 일치하는지를 확인한 후 면접일정에 관해 설명했다.
면접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서로 조율을 끝나고, 인사담당자는 면접장소를 찾아오는 교통수단을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운서역 길 너 편 맥도널드 앞 버스정류장에서 오후 3시에 노란색 샤들 버스를 타고 오면 된다고 안내를 해주었다. 당시 방 계약기간이 남아 포천에 거주하고 있을 때이다. 포천에서 인천까지 거리감도 있고 해서 일찍 공항으로 출발했다. 운서역에 도착해서 시간을 확인했다. 샤틀버스가 도착하기까지는 1시간 반 이상이 남아 있었다. 맥도널드에 들어가 커피와 햄버거로 점심을 대신하고 핸드폰으로 1시간을 보냈다. 30분을 먼저 정류장으로 나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샤틀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발음이 정확지 않았다. 억양을 보아 중국교포 근로자인 듯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 있는 줄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말씀 좀 여쭙겠는데요 이곳이 화물청사 쪽 물류센터로 가는 샤틀버스 줄이 맞나요"
"네"
짧고도 간결하게 질문의 답을 얻어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모국어와 함께 부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지금 면접 보러 가는 곳도 젊은 외국근로자로 채워져 있다는 느낌을 곧 받을 수 있었다.
샤틀버스가 정확히 3시에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10분 후쯤 보안구역에 도착했다. 근로자들은 패찰을 목에 걸고 보안구역을 통과했다. 잠시 후 인사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앞에서 전화를 하고 있어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인사담당자는 보안구역으로 데리고 가 신원확인을 위해 신분증과 함께 지니고 있는 소지품을 검사를 진행했다.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 임시 출입증을 배부해 주었다.
보안구역 내에 있는 건물 내부는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 2층으로 도착했다. 입구에는 현장으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일회용 머리에 쓰는 커버와 위생용 옷을 입고 작업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현장 안에는 수많은 시람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작업장 안에는 항공기 기내에 탑승객을 위한 물품들이다. 작업자은 물품을 분류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여성 근로 여성들이 탑승객에게 지급할 이어폰을 비닐 포장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인사담당자는 실장이라면서 현장 있는 한 여성분을 소개했다. 실장의 표정이 어두웠다. 인사도 없이 투박한 말투로 나이를 물어왔다.
"올해 몇 살이세요"
첫마디가 나이었다,
"64 생입니다"
나이가 많으시네요가 돌아온 첫 답변이었다.
살짝 회가 났지만 참고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실장은 작업장에 쌓여있는 물품을 손으로 가르쳤다. 저기 있는 물품들이 비행기 기내에 들어갈 품목입니다. 무려 300가지가 넘는데 나이가 드셔서 저 많은 물품 분류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는 부정적인 견해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기가 생겨나지 시작했다.
"맡겨만 주신다면 3시간 만에 숙지할 것 같은데요"
실장은 어이가 없는지 그 옆에서 일을 하고 있는 젊음친구를 가리키면서
"저 친구요 젊었는데도 허리가 아프다고 하고 저렇게 힘들어합니다"
"젊은 친구도 저렇게 힘들어하는 일을 할 수 있겠어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저보고 처음부터 나이가 많다고 하시는데 실장님은 나이가 얼마나 되시는 여쭈어 보아도 될까요"
"저요 65년생인데요"
실장은 당당하게 자신의 나이를 말했다.
나이를 듣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는 한 살 차이 밖에 안 되는 본인의 나이를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착각을 가진 듯하다.
"실장님도 나이가 많이 드셨네요"
"저는 이곳에서 30년 경험자입니다"
나이보다 경력으로 자신의 나이를 무마시키려 했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갈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치욕적이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분한 마음에 분노마저도 생기지 않았다. 당사자도 늙어가는데 면접에서 나이만을 두고 타박을 하고 있다는 것은 뭔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실장이라는 분과 더 이상 대화조차 시간의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장님 죄송하지만 더 이상 이야기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말만을 남겨 놓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1층에서 전화로 인사 담당자를 불렀다. 잠시 후 인사담당자가 1층으로 찾아왔다. 이력서에 연령대도 기재가 돼있고 입사기준에 문제가 없어 면접 요청을 한 것 아니냐고 다시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예 맞습니다"
"그런데 실장이라는 분이 인사과에서 승인해 준 나이만을 가지고 이렇게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지요"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
인사 담당자의 태도 또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느낌에 실장이 선임인 까닭에 어필을 못하는 눈치었다. 인사담당자를 통해 정식으로 실장의 사과라도 받고 가려했는데 이마저도 인사담당자에게도 기대할 것이 못되었다.
보안구역을 벗어났다. 샤틀버스는 물론 대중교통도 없는 구역이었다. 택시를 불러 운서역까지 왔다.
'
전철을 타고 가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면접을 위해 온전히 하루를 소비했고, 점심에 택시비까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인사담당자에게 서류전형까지 합격했는데 현장에서는 나이 탓만 돌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면접을 본 회사 본사가 서울에 위치하고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 여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책임자급 통화를 부탁했는데 출타 중이라 한다'자신에게 이야기하면 내용을 전달해서 전화를 드리겠다고 한다. 면접과정에 있던 이야기를 1%을 보태거나 뺄 것 없이 명확하게 전달을 했다
다음날 9시 정각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자신은 공항현장을 총괄하는 본사 관리자라고 소개했다. 몇 번이고 마음을 상하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로 사과를 해왔다.
실장의 직접적인 사과를 관리자에게 요구를 했다.
"선생님 당사자와 통화하면 감정이 더 격해집니다."
"상사인 제가 머리 숙여 대신 사과드리면 어떨까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선생님 내일 정확한 조사를 위해 현장에 다녀와서 전화를 다시 드리겠습니다.
다음날 관리자로부터 오후에 전화가 왔다. 문제의 실장님이 올해 정년인데 인사조차 했습니다라는 최후통보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이제는 한국에서 더 이상 취업을 위한 면접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에게 강한 체면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