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에 짐을 쌀 때마다 의문이 생긴다. 무엇인가 짐을 싸는 것에 대해 석연치 않은 감정이 섞여 있는 듯하다. 떠날 때 싸는 짐의 느낌과만남을 위해 싸는 짐을 느낌이 전혀 달랐다. 물론 지금의 짐은 떠남과 만남을 한꺼번에 이어가는 짐이다. 짐에 무게는 떠날 때의 무게와 만날 때의 무게 또한 달랐다. 무게의 중심에는 저울방향의 무게보다는 마음의 무게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싸는 짐은이민을 떠날 때 그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짐을 싸는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닌데도 짐을 쌀 때마다 적응이 되질 않는다. 이번에는 싸는 짐은 유난히도 서글픈 감정이 압도적이다. 마치 패장병이 군장을 싸는 그런 무거운 느낌이다.
기러기 생활을 할 때도수없이 짐을 쌌다. 만남과 이별의 길이에는 짐을 쌌던 횟수와 반비례했다. 가족을 만날 때에는 두 달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빨리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던 것 같다. 가족을 만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이별의 짐도, 공항에서의 이별에도 기러기 가족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었다. 기러기의 짐은 어머니의 보따리와도 같은 친근함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짐을 싸던 느끼는 감정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이번 비행에는캐리어하나만 수화물에 실을 수 있다. 보통 비행에는수화물 2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세일 기간 중에 구매한 티켓이라 제한 사유가 있었다. 수화물은 23kg을 초과하지 않아야 하는 규정이 있다. 때문에 캐리어 하나로 가져갈 물건을 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캐리어하나를 추가하기로 했다. 추가비용 십만 원을 항공사에 지불해야 한다. 세일 중에 구매한 티켓이 결국엔 싼 것이 아니다.
다행히 이번에 한국에 입국할 때 겨울 옷을 챙겨 오지않아 캐리어 내부 공간은 충분하지만 항공기는 부피 중심이 아니라 무게 중심을 수화물에 적응이 되어 추가되는 수화물에 대해서는 박스포장을 하기로 했다.
케리어에 담아 갈 물건 중엔 항상 페트병으로 된 소주를 먼저 염두에 둔다. 사실 가져갈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지만 대용량으로 몇 병을 챙겨갈 때가 많다. 일단 한국에서 구매 소주 가격이 매우 싼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공항에서 혹시나 모를 통관에 문제가 생겨도 쉽게 물품을 내려놓을 수 있어 가끔은 모험을 걸어보는 물품 중 하나이다. 물론정상적인 방법은 아니다. 이또한 많은 짐을 싸면서 얻어진 경험일 수도 있다.
오늘 주문하면 당일 물건 도착이 가능한 로켓배송을 장착하고 살아가는 한국이다. 그런 한국에서 짐을 바리바리 싸간다는 것도 주변인이 볼 때 촌스럽다 생각할 수도 있다. 캐나다도 옛날과는 달리 현지 한국마트에는 당양한 한국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사는 물건과 가격차이가 나거나 제품상태의 질의 차이가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도 여러 번 짐을 싸보았던 노하우일 것이다.
아직도 출국까지는 보름정도 남아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짐을 싸고 있다. 짐을 완벽하게 싸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다. 왠지 가는 날자에 임박해서 짐을 급하게 싸면 무엇인가를 빼놓고 가는 느낌이 든다. 짐을 마무리해 놓고 나면 마음의 안정감을 가지게 된다.
오늘 아침 도서관을 가는 길에 어느 정춘 남녀가 캐리어를 끌고 공항 리무진 정류장으로 향해가고 있다. 남자는 양손에 캐리어를 끌고 여자는 작은 손가방만을 들었다 둘은 걸어가면서 마냥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연인들이 캐리어안에는 나처럼 무거운 짐이 아닌 설렘이 담겨 있는 짐이 가득할 것이다. 여행을 가기 위해 짐을 싸는 일은 연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늘 행복한 마음으로 짐을 쌀 것이다. 나에게도 어쩌면 한국을 방문할 때 저 연인들처럼 여행용 캐리어를 가지고 여해길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짐을 더 싸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일 수도 오로지 여행을 위한 짐을 쌀수도 있다. 머나먼 나라 캐나다, 쉽게 오갈 수 없는 나라라는 점도 짐을 싸면서 거리감 대문일까 짠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이렇게 떠날 때는 머리가 복잡해도 돌아가고 나면 시차적응과 함께 마치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일상으로 복귀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