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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Sep 11. 2024

안녕! 60대를 부탁해 대한민국

한국의 60대 여! 희망을 가져라

60대에 역이민은 현실과는 거리 먼 이야기라는 것을 한국에서 7개월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알게 되었다.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이광조 씨의 노래제목을 순간 떠올리게 된다. 노래의 제목이 지금의 심정을 정확히 표현해 주었다.


60대에 역이민은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경제적 뒷받침이 되던가 아니면 일선에 진입할 수 있는 전문적인 자격이나 특수한 기술이 있던가, 두 가지 중 하나가 충족 요건을 맞추어야  한국으로의 역이민이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교민 사회 이민 1세들은 은퇴를 하고 한국에서 또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갖추어지지 않은 조건으로 인해 늘 고국에 대한 그리움만을 안고 산다. 우리는 연어라는 생물체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연어는 회귀본능이라는 강한 진념을 품고 있다. 하물며 인간은 연어보다 더 강한 느낌을 지니고 살아가지 않을까, 언젠가 태아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 여생을 마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나 예외는 없을 것이다.


나는 오십 대 초반의 나이에 뒤늦게 캐나다 이민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합류를 했다. 그리고 십 년이라는 세월을 보내 정년퇴직이라는 나이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입국한 순간, 이방인의 낯선 감정으로 마음은 잠시 멈춰 섰다. 모든 것이 바뀌어 달라진 변화한 세상이었다. 한국 어디에서도 어머니의 모습을 더는 찾을 뵐 수 없었고, 누님은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쉽게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낯선 고향이 되어 있었다. 이전에 익숙했던 고속도는 또 다른 이정표라는 지표 만들어 놓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중간에 유도선이 나타났다. 새로운 방향으로 생겨난 길이었다. 고속도로 위에서 순간 방향을 잃고 있을 때 휴게소가 나타났다.


휴게소는 마치 도로 위에 작은 성을 건설해 놓은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예전에 쇼핑몰까지 생겨났다. 식당 한쪽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대기표를 받아 음식을 기다리던 절차도 없어졌다. 카운터 대신 그 자리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고, 모디터를 터치를 하면 원하는 메뉴가 스크린 앞에 다가섰다. 주문을 받아 라면을 끓여 되던 아주머니의 손 빠른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 뒷모습 뒤에는 로봇이 아주마니의 흔적을 덮고 있었다. 입을 열지 않고도 눈과 손으로 얻어지는 고속도로 휴게소는 동화 속 세상을 연상하게 했다 과거 십 년 전 아주머니의 손길이 묻어 있던 음식이 그리웠던 순간이다.


바뀐 것은 고속도로뿐이 아니었다. 담배가게만큼이나 많은 푸드점과 커피전문점이 생겨났다. 그곳의 휴식 공간은 대중의 한 끼 정도를 간단하게 해결하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몰라보게 변해버린 땅, 이곳에서 60대가 과연 생존 가능한 것인가, 왠지 갑자기 자신감이 흔들린다. 이런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생존해 가고 있는 한국인경이스럽기만 다. 내가 만약 이방인이 아닌 한국에서의 삶을 살았다면 지금쯤 어떤 자리에 서 있을까, 


한국이 변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변한 만큼 소비 성향도 높아졌다. 빠름을 능가하는 로켓배송문화가 생겨났고,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환경의 반경이 또한 늘어났다. 사람을 대신한 산업 로봇의 역할도 또한 커져가면서 자연스럽게 60대의 일자리가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연령대는 젊어가고 있는데 나이자체는 노령화가 되어가고 있는 기형형태로 바뀌어 갔다.

 

고용노동부는 올 24년 8월 최저 임금을 시간급 9,860원으로 결정고시하였다고 밝혔다. 월급으로 환산할 경우 2,060,740원이다. 1주 소정근로 40시간 근무에 월 209시간을 기준한 금액이다. 한국에서 3번의 면접을 보았다. 대부분의 기업이제시한 금은 250만 원을 초과하지를 않았다. 한국에 올 때에는 최소 350만 원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취업문을 두드렸다. 350만 원이라는 급여는 어느 정도 숙련된 근로자가 받는 월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분간 방도 얻어야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 등을 빼고 나면 혼자서 먹고사는 것 이외에 저축할 만큼 여유가 열리지 않는 상태이다. 이마저도 60대의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이 지금 한국 근로자가 안고 있는 서글픈 현실이다.


60대가 되면 사회 초년생이다. 어느 정도 숙련과정을 거쳐야 최저의 시급에서 탈피할 수 있는 노동자이다. 물론 전문직종과 특수 업종의 경력을 가진 60대는 급여체계에 차이가 일수 있지만, 대부분 정년퇴자들일 경우 다시 사회 초년생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룰이 설정되어 있었다. 


한국에서의 60대는 어떤 존재감일까, 지금의 60대 초는 정년을 맞이하는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이다. 일자리 문제에 대한 충돌과 함께 연령퇴직 뒤에 소득절벽이라는 현실에 내몰린 암울한 세대이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온 세대들이다. 그들은 노후 이후 좀 더 편안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사회가 규정해 준 정년이라는 틀에 갇혀 정년퇴직 후에도 완전한 은퇴도 선언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새로운 일을 찾아가고 있다. 백세인생 시대에 60대의 나이는 어쩌면 고난의 나이가 될 수도 있다. 우선 사회에서 설 자리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60대에 희망을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것은 슬픈 사연 하나가 더 추가된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내일의 희망보다는 오늘에 안주하고 살아야 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까움이 있다. 


나는 지금 한국에서 60대의 삶에서 실패를 했다. 도저히 감당해 낼 힘이 부족하다. 가족을 떠나 흔히 이야기하는 생고생을 자처하는 일일수도 있다. 역 이민은 무리가 따랐다. 그리고 너무 쉽게 접근을 했었던 것 같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했다. 아마도 한국으로 출국할 때에는 기대치가 컸던 모양이다. 이제 결과가 어떻든 역이민에 승복하려 하다. 다음에 한국에 올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달고 한국에 올 것이다.


이전에 브런치스토리에 발행했던 84세 할머니가 대형버스 운전을 직업으로 가지고 일하는 모습을 담은 글이 문득 생각이 난다. 할머니의 말씀 중에 나이에 무관하게 일할 수 있게 해 준 캐나다 삶에 감사하다는 말씀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할머니의 나이 정도라면 나는 아직도 20년을 넘게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은 청춘인 셈이 된다. 할머니의 희망처럼 다시 캐나다에서 나이 제한에 포함되지 않은 재 도전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용기가 생겨난다.

한국에서의 7개월 동안의 기간을 이제 또 다른 경험의 성숙으로 돌리려 한다. 그리고 한국생활에서 힘이 되어준 모두이들에게 글로나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한국의 60대 여! 희망을 가져라. 안녕,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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