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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Sep 18. 2024

 한국의 여행자가 되었다

여행의 목적만을 가지고 남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

한국 역이민은 해프닝으로 끝난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털어냈다. 남은 일정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기로 하고 출국 전까지 남은 시간 전부를 여행으로 모드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정해진 것은 아직은 아무 계획도 없다. 계획을 세우려 하니 머리는 정지 신호등이 켜진 것처럼 의식적으로 멈춰진 느낌이다.


아내와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보이스톡을 이용하여 안부를 묻는다. 나 살아 있어 일종의 생존 확인 연락인셈이다. 일정을 잡아 어디라도 여행을 떠나보라고 아내는 말을 하지만, 혼자 어딜 나선다는 것이 예전 같지가 않았다. 캐나다 있을 때에는 한국에 가면 하고 가고 싶고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았다. 가보지 못한 섬여행 다녀 보고도 싶었고, 캠핑에 등산 나열하기 벅찰 정도로 한국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지나칠 정도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추석 연휴 아침 즉흥적으로 목적지를 정해 수도권 근교 호수와 사찰을 다녀왔다.

9월의 시작은 빠르게 가을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다. 아직도 감성이 남아 있는 것일까. 낙엽 떨어지는 거리도 싶고, 낙엽 타는 냄새면 가을 거지 풍경도 그리워졌다. 하지만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전형적인 날씨를 끝내 느껴보지도 못하고 아쉽게도 캐나다로 떠나야 한다.


올여름은 참으로 혹독했다. 그 길고 긴 여름날을 인내로 버티어 왔다. 한국의 여름은 예년에 비해 올해처럼 무더운 여름이 없었다고 모두는 이야기한다. 십 년 만에 혹독한 여름 신고식을 하고 한국을 떠나게 되는 셈이 되었다. 여름날에 대한 느낌을 묻는다면 아쉬움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시간은 금이라고 했다. 시간 소중함의 가치를 보태주는 의미 있는 말이다. 또 다른 ""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보았다. 막상 떠날 날이 결정되고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아쉬움의 시간은 분명 "금"이라는 보석과 같은 시간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부터 시간을 보석이라는 의미를 달고 한국에 남아 있는 시간 동안 소중하게 써야 했다. 혹시라도 캐나다로 돌아가도 한국생활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지 않도록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며칠 전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일정을 조율해서 인터뷰를 맞추었다. 인터뷰 도중 PD가 몇 번을 울컥해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감동스러운 이야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동안 고생했던 출연자의 안쓰러움 때문일까. 울컥함은 어느 선행된 감동의 수위보다는 동시시대를 살아온 동질감 같은 느낌 감정은 아니었을까, 촬영을 끝나고 전철역까지 PD의 배웅을 받았다, 그날은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우산을 받쳐 들고 배웅을 받아보는 일이 얼마 만에 일인지 모른다.

"선생님 정말 인생을 잘 사셨어요"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듣는 것으로 배웅인사가 끝났다.

정말 인생을 잘 산 것일까, 남들도 최소한 나만큼의 인생은 살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물음표만 남는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계획에도 없던 인터뷰까지 주어져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한편으로는 값진 의미를 남기고 떠나는 것 같아 마음에 위로까지 되었다. 시간은 잠시라도 멈출 것 같지만 멈추어서 질 않는다. "누구나 세월 가면 먹는 것이 나이라 했다" 나이는 흔하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지만 숙성된 나이보다는 희망 가능한 풋풋한 나이를 모두좋아했다. 태어난 순간 누구나 나이는 공평하게 기회를 부여해 주었는데 풋풋한 나이를 보내고 난 후에 후회를 한다. 세월은 조건부가 없다. 나이도 선택권이 또한 주어지 않았다. 늙지 않는 불사조의 마음이라도 가져보려 하지만 여전히 나이는 마음에 동요마저 가져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가 똑똑하다고 말하지만 어리석음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자리가 영원히 존재할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아가는 욕심이 또한 어리석음이다.


잠시 멍해진다. 퇴직과 은퇴의 차이를 좁혀 생각해 보았다. 엄격히 따지고 보면 60대에 퇴직은 퇴직아니고 은퇴가 아니었을까, 국가에서 60세를 정년퇴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엄연한 은퇴가 맞다. 하지만, 아직도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일선에 다시 복귀해야 하는 60대가 많이 있다. 


나는 역이민의 계획도 사전에 은퇴를 염두에 두고 결정하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역이민과 함께 한국에서 지속적인 경제활동에 목적을 두었던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이유가 되었는지 모른다. 한국은 나의 모국이다. 모국으로 다시 시작하는 역이민은 젊은 날 캐나다로 이민을 시도한 노력보다 더 강도가 높고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추석전달 중화요릿집에 혼자 들어섰을 때 그 느낌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많고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식당 안에서 나가야 할지  테이블을 혼자 독식하고  앉아 기다려야 할지 괜한 눈치만 보는 모습처럼 지금 60대가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역이민은 과연 로망 같았던 시간으로 끝날 것인가, 이유를 묻는다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 아니면 환경의 조건의 탓일까, 사실 내 탓 남 탓도 아니었다. 사회 현상의 탓이 결정적인 실패의 탓이 되어 버렸다. 좀 더 솔직한 탓은 나이가. 많다는 나이 탓이 맞을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여행을 하고 가려했는데 왠지 여행하기에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그동안 만났던 분들과의

시간을 좀 더 가지는 것으로 한국에서의 여정을 정리를 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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