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직자이다
퇴직은 인생 2막의 삶을 열어가는 새내기들이다
퇴직과 은퇴은 엄연히 다르다. 나의 퇴직은 직장에서 잠시 이탈했을 뿐, 소득활동을 완전히 그만둔 은퇴는 아니었다. 사실, 퇴직 후 1년 동안 휴식기를 가졌다. 1년 중 7개월을 한국에 있었고, 5개월을 캐나다에 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일정기간 동안 실업수당을 받았다. 단지 수익만을 가지고 본다면 경제활동이 멈춘 기간은 몇 달에 불과하다. 이런 조건의 상황을 가지고 가끔 가족에게 1년 동안의 백수는 아니었다고 변명의 구실을 만들었다.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려는 바락인지도 모른다. 또한, 가장이라는 강한 책무감도 있다.
9월 말, 밴쿠버에 돌아와 10월에 캐니디언 회사에 면접을 보았다. 면접을 진행하면서 합격을 확신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이 지나도 입사 통지 여부가 도착하지 않아 인사담당자에게 메일로 입사여부를 물어보았다. 입사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10월 한 달이 한 곳에 면접에 집중으로 시간이 사라져 버렸다. 그 당시 취업에 성공했다면 퇴직과 은퇴의 차이를 두고 지금처럼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2월 24일, 한국에서 밴쿠버 입국 후 3개월의 휴식 기간을 보냈다. 10월의 면접 이후 11월이 되었다. 구직 활동이 연말과 맞물려 여유롭지 못했다. 물론, 나이에 대한 진입벽이 한국보다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 신년초가 되면 구인광고가 좀 더 많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멘탈을 지켜가고 있다. 그마저도 멘탈이 털려 버리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모든 진입장벽이 높아질 수 있다.
요즘은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열심히 쓴다. 직장을 다니면서 바쁘게 생활 때 글 쓰는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한가한 시간에 쓰는 글은 왠지 정제되지 않은 혼탁함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사실, 해외에 살면서 휴식기간 동안 영어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일이 우선이 될 수 있다. 몇십 번씩 암기를 해도 뒤돌아 서면 노력의 대가를 보상받지 못했다. 큰아들은 지속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라고 성화이다. 심지어는 80세가 넘은 할머니도 학업에 뜻을 이루셨다는 비유까지 동원한다. 80세 나이치 고는 특별한 천재 수준은 아니겠는가라는 반대 이론만을 가지고 마음속으로만 밀어냈다.
이민자들은 영어의 필요성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인사회의 진입보다는 캐네디언 사회의 진입이 모두의 로망이기 때문이다. 한인사회는 아무래도 일의 종류와 여건이 캐네디언 주류 사회보다는 충실하지 못하다.
사실, 이 나이에 무슨 영어공부냐고 필요성 이유의 말끝을 잘라낼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삶에 연장선이 길게 남아 있기 때문에 새내기처럼 무엇인가 준비하는 것도 결국 늦지 않은 빠른 길일 수도 있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면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30여 편의 글을 틈틈이 써왔다. 그렇다고 기고하는 글마다 채택이 된 것도 아니다. 신문기사가 될만한 콘텐츠 선정도 쉽지 않았다. 자연히 기사를 올려 얻어지는 수입은 얼마 되지 않았다. 수익에 일부 금액을 신문사에 후원금으로 기부하고 기사를 써서 수익성을 창출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수익성 애드센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개설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애드센스 승인을 받았다. 승인 후 첫날 수익이 0.03불이었다, 아직은 트래픽이 없어 좀 더 장기간 글을 써야 수입이 생긴다고 한다. 그날 강아지 배변활동을 하다가 잔디밭에서 25센트를 주웠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칠 일인데 허리를 숙여 떨어져 있는 동전을 주웠다. 애드센스 수입금보다 더 큰돈의 가치를 순간 생각한 것이다.
수익은 미미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어 가고는 있다. 모든 사람들은 은퇴 후 취미와 건강을 우선으로 한 삶을 살고자 한다. 주변에서 취미가 없는 노인분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나마 은퇴 후에는 글쓰기라도 할 수 있는 취미라도 가지고 있으니 이 또한 노후준비 중 하나를 완성한 것은 아니겠는가 스스로 위로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