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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엠디 Mar 21. 2024

9년 차 대기업퇴사일기 7 경력단절 여성이 된다는 것

퇴사  D-13: 내가 퇴사를 두려워했던 이유 


퇴직 면담을 마쳤습니다.


울적한 마음에 가족 단톡에 올렸더니 엄마에게 연락이 왔어요.



"힘찬 미래를 위한 도약으로". 

저희 엄마는 똑똑하고 꿈 많던 소녀였습니다. 삼 남매 중 장녀였습니다. (저처럼 장녀였어요. 그래서 엄마와는 통하는 것이 참 많았지요) 엄마는 공부를 참 잘하셨습니다. 엄마가 대학생이 될 스무 살, 외할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는 경찰이시던 외할아버지가 매 달 벌어다 주시는 봉급으로 가계 생활을 꾸리시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중학생이던 외삼촌을 챙기고 어린 여동생인 이모를 챙기시며 어린 나이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셨습니다. 엄마는 철이 너무 빠르게 들어버리셨고 결혼도 서두르셨지요. 결혼하고서도 엄마는 공부를 계속하셨고 석사 진학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10여 년 동안 재수종합학원을 운영하시면서 이과수리를 가르치시는 수학 선생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세 자매를 키우시느라, 제가 열 살 무렵이었을까요-
어머니는 학원을 정리하시고 가정 주부가 되십니다. 

저희 가정은 참 화목했습니다. 아빠가 홀로서기로 사업을 시작하셨죠. 하지만 저희 집은 막내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셔야 했어요. 저희 엄마는 집에서 가정주부로 25년 넘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며 저희 세 자매를 키우셨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에는 고모들이 요양병원에 모시자 고해도, 어머니께서 기어코 대소변 수발까지 드셨지요. 


한 5년, 10년 전쯤인가요. 아빠 사업이 잠깐 휘청하고 힘들어졌을 때, 엄마는 여기저기에 취업 원서를 넣었지만 너무 나이가 많다, 또는 학력이 높다 등의 이유로 거절 당하시기 일수였습니다. 그러다가 마트에서 2-3달 정도 알바를 하시게 됩니다.


엄마는 몹시 즐거워 보이셨습니다. 아직 저희 엄마는 에너지도 열정도 넘치시거든요. 돈을 번다는 것 자체에서 몹시 큰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시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세 자매에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요.

저희 엄마는 아직도 꿈 많고 배우고 싶으신 게 많은 소녀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직장을 그만두면 안 된다. 경제력을 가진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힘이야.


저의 대기업 퇴사를 누구보다 슬퍼하셨지만 지금 그 누구보다도 제 앞날을 응원하는 분도 어머니입니다.


"넌 뭘 하든 잘할 거야."라고 하시면서요. 



 제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 또한 저의 의사로 퇴직한 것은 아닙니다. 남편을 따라 2년간 미국을 가게 된 것이니까요. 남편이 MBA로 착실히 자신의 역량을 쌓는 동안 그 시간을 어떻게 꾸리느냐는 저의 몫이겠죠.


사랑하는 어머니의 어제 밥상. 




 30대가 되고 저도 결혼을 해보니 알겠습니다. 모두에게는 꿈 많고 반짝거리던 시절이 있습니다. 저는 왜 스스로 경력단절 여성이 될까 봐 걱정했을까요? 그리고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게 나쁜 것도 아닙니다. 저희 엄마는 커리어에 대한 아쉬움은 뒤로 하셨지만, 세 자매를 잘 키운 것에 대해 누구보다 자부심이 강하시니까요.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원하는 대로. 그리고 저 또한 걱정과 후회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그 누구보다도 저 스스로를 믿어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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