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책의 주인공에겐 집 옆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우체부가 그걸 보며 부러워하자 주인공이 나무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는 성가신 나무일 뿐이야.” 그것도 어깨를 으쓱하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나무를 활용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어깨를 으쓱한 것이다. 굳이 표현하진 않지만 일종의 자부심이라고도 볼 수 있다. 크고 든든한 나무를 갖고 있다는 것. 그런데 주인공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기본값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늘 곁에 있었던 것. 당연한 내 것. 하지만 매우 성가신 것으로.
나는 주인공과 나무의 관계가 부모의 사랑으로 읽힌다. 이 ‘성가시다’라는 단어야말로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의 존재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단어가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싫은 건 아닌데, 성가시다. 필요는 한데 성가시다. 있으면 편하지만 때때로 성가시다. 그 성가심의 이유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게 할 때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제공해주면 딱일 텐데, 자꾸만 잔소리를 하고, 귀찮은 일을 시키고, 신경 쓰이게 한다. 즉 내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만 주면 좋을 텐데, 그걸 대가로 자꾸만 원치 않는 일도 하게 하는 게 싫다. 주인공은 일방적으로 받고만 싶어하고, 내게 손해가 되거나, 피해가 오거나, 귀찮아지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어한다. 나를 성가시게 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조차 딱 질색인 것이다.
큰 나무엔 새들이 깃들기 마련이고, 새들은 지저귀기 마련. 모든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그것이 자신의 잠을 방해한다는 이유만으로 싫어한다. 그리고 새들이 없어지길 바란다. 새들이 없어지려면 나무도 없어야 하는데, 그런 이유로 나무를 싫어한다. 새를 깃들게 해서, 자신을 잠 못자게 한 죄를 묻는 것이다. 아침에 새 때문에 일찍 깨는 것도 참을 수가 없는데, 심지어 자신이 마시고 있는 차에 새똥이 떨어지자 불같이 화를 내며 나무를 걷어차 버린다.
나무 때문에 빨래에 그늘이 진다고, 그물 침대에서 낮잠을 잘 때 위에서 송충이가 떨어진다고, 애들이 사과를 서리하러 온다고, 낙엽이 너무 많이 떨어진다고, 자기 머리 위로 나무에 쌓인 눈이 떨어졌다고, 주인공은 그 모든 것을 다 나무 탓으로 돌린다. 만만한 게 나무고, 나무가 동네북인 것이다. 나무는 주인공의 온갖 불평불만과 투정, 화풀이를 모두 받아주는 대상이다. 인과 관계가 정확히 성립하지 않는 일에서조차 주인공은 나무를 탓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에 의해 발생하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오면 주인공은 참지를 못한다. 모든 기준이 자기의 필요이다. 자기를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하거나 방해하면 견디지를 못하고, 곧바로 나무 탓을 한다. “이게 바로 다 저 나무 때문이야!”
부모를 탓하는 자식에 대한 너무나 명백한 비유이다. 작가 사노 요코가 그것을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부모가 자신을 위해 해준 것은 깡그리 잊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의 원인을 부모 탓으로 돌리는 못난 자식의 모습과 너무 오버랩 된다. 부모가 우리의 현재 모습을 이루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부모에게 태어나, 이후의 모든 것의 모범이 될 만한 것을 부모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날 이렇게 만든 원흉이라고 늘 욕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어쨌거나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서, 현재의 모습으로 길러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성격 형성에 문제를 일으키고, 때로는 극심한 트라우마가 생기게 했더라도, 부모가 나를 먹여 살려서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오직 부모가 내가 입힌 피해만 생각하곤 한다. 부모 때문에 내가 얻지 못한 것, 내게 없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다. 부모 덕분에 내가 얻은 것, 내게 있었던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에게 생긴 모든 사소한 불행의 원인을 모두 부모 탓으로 돌린다. 참 편하다. 뭐만 잘못되면 무조건 부모 탓을 하면 되니까.
자기가 나무 때문에 받은 피해가 너무 많다고, 나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누적이 되자, 주인공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나무를 베어버린다. 부모와 인연을 끊거나 부모로부터 떠난 걸 수도 있고, 더 심각하게는 정말로 부모를 죽인 걸 수도 있겠지. 내 인생에서 이 나무만 없어지면, 부모만 없어지면 훨씬 더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원흉만 제거하면 되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이 나무 덕분에 지금껏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전에는 너무 당연시해서 있는 줄도 몰랐던 그 빈 자리가 처절하게 와닿기 시작한 것이다. 대가 없는 사랑을 받은 것은 모르고, 오로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받고 싶어하는 지독한 이기주의 속에서 감사를 모르고 자란 것이다.
주인공의 뒤늦은 후회는 처절하다. 그의 일상은 삽시간에 무너져버렸다. 그가 예전부터 좋아하는 일은 하나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전 같지 않았다. 나무의 빈 자리가 드디어 온 몸으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있을 땐 몰랐던 그 존재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의 모든 것을 지탱해주고 있었던 그 든든함이 사라져버렸을 때, 사람은 그때서야 자신의 실체를 보게 된다. 남들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는 게 너무도 힘겨운 한 인간을 보게 된다. 나무에서는 새 생명이 자라날 수도 있겠지만, 부모는 한 번 사라지고 나면 영영 돌아올 수 없다. 그냥 그걸로 끝이다. 돌이킬 수 없다. 오늘을 감사하게 살아야한다. 내게 있는 것, 내게 주어진 것, 내게 값없이 쏟아져 내리는 사랑과 돌봄을 기쁘게 감사하며 누려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