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디김 Dec 30. 2023

걸려야 끝난다_유행성 전염병

우리는 그때의 우리가 아니다 | 내딸의 집단 따돌림 상처 극복기, 여섯

이건 '팬데믹, 유행성 전염병, 코로나다'가 발단이다. 코로나를 겪은 우리는 그때의 우리가 아니고 코로나로 더욱 강해진 감기도 그 시절 감기와 다르다. 올해 독감은 유독 널리 퍼졌다. 둘째가 걸려 온 독감은 다행히 비껴갔지만 우리 부부는 같은 날 똑같이 목감기를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이틀 만에 인후통을 잡지 못했고 한 주를 꼴딱 채우고도 목에 걸린 갑갑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 번 걸리면 낫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

 

우리는 예전만큼 외출을 하지 않고 예전만큼 서로 손잡고 포옹하며 안부를 묻지 않는다. 그때 보다 우리는 남의 비말에 민감해졌고 이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교탁이 가까운 맨 앞자리, 고등학교 과학 쌤의 열강은 쥐약이었다. 그 시절 나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에게 ' 아, 저쌤 침 너무 튀어.'라고 투덜거리기나 했지, 그걸로 전염병 옮을 걱정은 한 적 없다. 이제는 마스크를 하지 않은 아기가 내 옆에서 기침을 해도 불편하다. 귀여운 얼굴이 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코로나를 너무 길게 겪은 덕분에 비말이 얼마나 멀리 튈 수 있는지 알았고 비말의 위험성을 몸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 술에 파티 아니면 취미까지, 모조리 집에서도 혼자서도 할 수 있음을 배웠다. '혼', '홈'을 붙여서 말이 안 되는 단어가 없다. 한국보다 인터넷이 빠른 나라가 있다 하면 존심이 상할  우리나라에서 얼토당토않은 상상이지만. SK나 KT가 파업하지 않는다면 어디서든 유명 교수 강의를 들으며 자기 계발을 하거나 재택근무도 할 수 있다. 세상 어디 사는 동료보다  빠른 인터넷 속도를 뽐낼 수 도 있다. 게다가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밖에 나가서 재미거리를 찾을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다. 몇 가지 예외가 있더라. 인터넷이 갑자기 끊길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것들. 코로나 시절 우리는 그런 것들로 시간을 죽였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에게는 놀이터 만한 게 없었다. 락다운, 거리두기 뭐뭐 해도, 놀이터는 문 닫은 적 없었다. 애들은 마스크 끼고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았다. 세상 어디에도 놀이터를 일대일로 대체할 것은 없었다. 코로나 시절, 키즈카페, 놀이공원도 다 불편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반경 2킬로미터를 넘지 못하게 했었으니까. 이제 다 까먹고 잊은 듯 지내느라 이 기억도 마냥 새롭다. 


내딸과 손 잡고 간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타기와 그네 타기로 바깥놀이를 시작했었다. 일곱 살 때 그네 하나만 있어도 한 시간이 부족했다. 집에 가서 밥 먹자는 내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했던 게 벌써 여섯 해 전이다. 코로나는 원격교육을 핑계로 학교 교육에 쓰이는 여러 유튜브 영상의 광고를 통해 더 많은 게임이 퍼지게 만들었다. 로블록스, 디스코드, 제페토, 좀비고? 딸의 휴대폰에 깔린 게임들 중에 기억나는 것들. 폰 사용에 제한을 두면 노트북에 VPN까지 깔아서 로블록스가 한국에 허락하지 않은 아이템을 즐겼던가 했다.


집에서 못 나가니, 게임으로 친구와 놀았다. 그런데 말이다. 100% 등교가 시작되고 바깥 활동을 마음 편하게 나가면서 아이들은 여전히 놀이터에서 친구를 만났다. 놀이터에서 친구와 만나 인터넷 게임도 했다. 추운 날씨에도 모여 피구와 랜플댄(랜덤플레이댄스)을 하느라 땀 흘리며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딸은 내게 피구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피구를 못해서 팀을 나눌 때 불러주지 않더라는 것.


처음에는 피구 실력이 문제인 줄 알았다. 집 근처 공터에서 공을 던지고 주고받기를 한참 했었다. 운동은 좋은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지했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것마저 남편이 말한 우리가 놓친 신호 중 하나였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선도조치를 받게 된 그애는 꼭 피구 팀을 나누는 우두머리 역할을 도맡았고 늘 끝까지 남겨졌던 내딸. '피구왕 서영이'는 처음에는 피구를 좋아서 했지만 어느 순간 그 무리의 우두머리 현지 앞에서 이기기 위해 피구 기계처럼 변한 자신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고 모두가 따돌리던 윤정이와 마음이 맞아서 좋아하던 피구를 다시 시작했다.


놀이터에서 내딸에게는 윤정이가 없었다. 그리고 그애는 친구를 소외시키는데 거침이 없었다. 피구는 죄가 없다. 친구를 도구처럼 버리는 마음이 문제다. 그리고 그 증오는 길고도 길었다. 동네를 지날 때면 피할 수 없는 그곳, 놀이터에 나와 놀려고 하는 무리를 쥐락펴락하려던 우두머리 그애는 제 맘대로 가르고 나누고 소외시키는 놀이에 중독되어 있었다.


5학년 말, 내딸은 좋아하던 피구도 관두고 놀이터를 끊은 게 1년 전이다. 그러면 뭐 하나, 학교, 놀이터, 성당, 그리고 온라인상 모든 채널들. 놀이터만 안 가면 끝나는 관계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지금쯤 내딸은 평범하게 혹은 재미있게 6학년을 마무리하고 있었을 터다. 회사원이야 몸에 무리를 갈 정도로 타격이 크고 나쁜 꼰대가 있는 회사는 나가면 끝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동네 아이들의 관계는 절 하나만 엮인 게 아니라는 게 문제다.


학급 친구들과 생활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다. 아니 학교 생활을 매우 즐거워했다. 내딸은 지난 학기에는 학급 회장에 최고 표로 당선되었다며 기뻐했었다. 6학년에 회장선거는 일종의 인기투표이니, 나도 내심 기뻤다. 동네에서 6년을 함께 지낸 친구들이 너 괜찮은 아이야라고 대다수 바라봐 주었다는 거지 않나?


병동에 입원한 내딸이 그립다며 연락이 왔다. 담임 샘이 보내 준 롤링페이퍼에도 '넌 공감을 잘해, ' '노래를 잘 부름, 리더십이 있음, 친구를 너무 사랑함' '1학기 회장으로서 리더십이 강해서 애들을 잘 이끈다. 왜 학교 계속 안 오니? 너의 존재를 까먹을 것 같다.'라는 글귀로 가득 차 있다.


얼마 전 찍어서 보내준 칠판에는 '**짱이 보고 싶돠', '**아 I miss you...' '얼른 돌아와' 라며 아직도 내딸을 기다리는 예닐곱의 친구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남겨 힘든 시간을 보내는 딸에게 꼭 전해달라며 응원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아직 너무 어린 나이이다. 나쁜 일 없이도 무사 평탄하게 살아주기만 바랬던 것이 너무 큰 욕심이었다. 커다란 상처를 입고 아물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딸은 생애 첫 졸업식은 참가할 수 있을까.


제발 입원이라도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이전 03화 질풍너덜의 시기_사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