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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Dec 22. 2023

질풍너덜의 시기_사춘기

나는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 딸과 나의 집단따돌림 극복기, 다섯

한때, 사춘기 초입의 내딸에게 남편이 '질풍노도는 무슨 너덜이구만'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내딸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고 나는 질풍너덜의 시기를 건너고 있다. 고민과 번민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나를 관통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까. 왜 태어났는가. 무엇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 우리에게 정말 절박하게 나만 이루어야 할 절대적 사명이나 소명이 있긴 한 걸까? 하루 살아내면, 버티어 내면 주어지는 상장도 없다. 근데 왜 우리는 무서운 담임이 내준 숙제 끝내기 마냥 일어나고 먹고 쓰고 또다시 자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는 것일까. 이 삶은 누구를 위해서 이어져야 하는가.


세상은 미쳤고. 미치지 않으면 미친 사람들에게 잡아먹히기만 하는데, 내 속에 자격지심이 나를 괴롭히는 건가, 아니면 그들이 미친 게 맞나. 어떨 땐 내가 다 옳다(책 제목처럼) 하다가도 또 아니다. 내가 너무 예민하다, 그냥 좀 살 수는 없나, 왜 이렇게 많은 것을 느끼고 괴로워야 할까.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딸이 심장이 쪼이는 듯 아프고 폐는 무슨 병인지 기침이 끊이질 않는다, 배도 아프다 하며 전화를 걸어왔다. 며칠 전부터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가 상주할 수 없나, 엄마와 일반병동에서 있게 해 주세요, 라며...... 공중전화에 동전 내려가는 소리는 마치 그 얘기에 속상하고 불안한 내 마음이 덜컥 내려가는 소리 같다. 왜 의사는 치료해 주지 않냐며, 집에서 엄마가 간호해 줄 수 없냐고 한다. 딸아.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야. 딸아 많이 힘든가 보다 푹 쉬어하며 끊었다.


통화를 할 때 떠오르지 않더니, 끊고 나니 선명해졌다. 그래, 네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온몸으로 표현하는구나. 아기가 고집부릴 때 온갖 떼를 다 쓰고 떼굴떼굴 구르며 자기가 원하는 바를 얻어내려 하는 거와 비슷하다. 사춘기 초입의 내딸은 아직도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먹고 싶다는 떡볶이와 김밥을 플라스틱 통에 넣어주고 멀리서 빠빠이 하며 내딸에게 외쳤다. 네가 엄마 보고 싶어서 그랬네. 엄마 자주 올게. 라며. 그리고 걸려 온 전화는 어땠더라. 확실한 건 훨씬 좋아진 목소리였다. 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린이와 청소년 그 어중간한 어디에 위치한 내딸. 엄마만 있으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하원한 둘째와 열심히 버스 그림 퍼즐을 맞추다가 딱 마지막 한 조각이 없어서 한참을 찾았다. 다 맞추고도 안 보이는 그 한 조각 때문에 속상해 참을 수가 없다. 결국 다음 날 아침, 아들과 함께 찾았다. 그 퍼즐 밑에 있었다. 사실 거기 그대로 있었다. 눈에 안 보일 뿐.

우리는 너를 기다리고 있어. 등대가 바다를, 파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며,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내 일이다(김연수 작가님의 책, 오랜만에 다시 읽어야 겠다).

내딸, 나는 네 맘 속에 그대로 있어. 항상 널 생각하고 있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네가 좋아질까, 지금 나와 지낼 수 있을까. 학교를 웃으며 다닐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여기에 있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갈게. 내일은 갈비천왕을 사 갈 거다. 자기 직전에 쿠*에서 네가 좋아하는 빵또아 쿠앤크 한 팩을 시켰는데 바로 집에 왔다. 정말 행복하다. 네가 환하게 웃을 모습을 상상한다. 또 보고 싶다. 너와 소소한 일상이 내 가장 큰 행복이었다. 나는 많은 걸 바란 적 없었어. 아니야 많은 것을 바랐었어. 그래서 큰 교훈을 이렇게 깨달아야 하나보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우리 따로 지내야 할까?, 아니 난 이번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을 거야. 네가 없는 크리스마스는 그냥 지나가는 하루야. 대신 우리는 네가 퇴원하는 날 엄청나게 신나고 재미있는 파티를 열자. 너를 아끼는 일곱 친구를 한데 모아 마라탕도 먹고 방탈출도 하러 가자.


엄마가 너를 기다리고 있어. 너와 함께 할 계획만 잔뜩 세울 거야.


너는 그냥 웃으며 오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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