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도 없으면서 인권교육과정을 등록해서는 화요일부터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일상이 거듭된 후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 아이들에게도 괜스레 미안타.
주말 모인 빨래양은 세 배가 되었고 밀린 설거지 싱크대에 물때도. 해봤자 내 눈에만 보이고 티도 안 나는 일거리이지만 해놓아야만 내 마음이 정돈된다.
오래간만에 해피 방을 정리했다.
이번 주말 청소년참여기구 캠프에 갔다. 나가기 직전에 해피가 이 옷 저 옷 고민한 시간이 강풍이 휩쓸고 간 듯했다. 책상 가득한 화장품과 잡동사니를 락앤락 비닐에 넣었다.
용돈이 생기면 화장품을 갖고 싶어지는 주기가 길다. 소지품이 늘어났다. 하고 싶은 게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다. 엄마 이거 어딨어? 하는 씨름 말고 이건 여기 넣어하는 대화로 말문이 열리길.
가을이 지나고 있다.
밤톨이 털갈이로 청소를 해도 매일 빠지는 털 바람에 더 자주 청소기를 돌리거나 청소도포로 바닥을 훔쳐도 뭐 끝은 없다. 단모 강아지가 삭발을 한다면!? 이상한 상상을 해본다. 더 짧은 털이 떨어지겠지?
로봇 청소기가 있다면? 식기세척기는? 급히 이사 오면서 남이 살게 된 집에 식기세척기를 옵션으로 들여놓았다. 그 집에 유일한 내 소유라고 할 만한 것도 식세기일 뿐. 안방만 내 집이요, 그 외에는 은행꺼랍니다 하는 말도 모두에게 디폴트일까. 그렇다면 이 세상 은행만 계속 부를 불리는 걸까?
신세 한탄이 가득 찬 이번 주라 일기를 시작하지못했다.
이게 정말 내 딸이 보아도 되는 걸까? 한 번 시작되는 푸념은 끝도 없다.
엄마로 주부로 하루씩만 버티자.
그럼 뭐 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아무도 부여하지 않았건만, 사명감인지 재미론지 세상을 탐험하고 다닌다. 누가 그런다. 너도 참
피곤한 백수다.
돌고 돌아 남는 건 관심과 사랑인데,
며칠 전 김상균 교수가 진행한 비대면 부모교육에 줌으로 조인했다.
게임에 미친 듯한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꼽은 것이 여행, 운동, 그리고 뭐더라. 휴대폰보다는 어른들과 함께 가는 여행도, 직접 느끼고 사람과 함께 하는 게 더 좋다는 거다. 어른도 아이도 느끼는 것은 똑같다.
바쁨과 피곤을 핑계로 함께 하지 못해서 좋은 경험을 쌓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다 휴대폰 화면가상세계에 몰두하게 된다.
세세하게는 몰라도 함께 웃은 추억들과 어쩌다 찍은 사진 덕에 기억은 반복 재생된다.
교육센터에서 만난 한 인권강사님께 왜 이 일에 헌신하게 되었는지를 마지막 질문으로 던졌다.
부모교육을 주로 맡던 사회복지사였다고 한다.
문제가 있는 개인을 교육해도 결국에는 반복되는 사회 현상을 목격했다.
결국 개별적인 부모만의 변화로 해결하지 못하는 지점을 깨닫고 이 길을 걷고 있노라 했다.
지역 학부모 아카데미에서 학폭 심의위원회에 출석하시는 변호사님도 자연스레 떠올랐다. 소년원 아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다가 그 아이 삶 속에 우산이 되고 선생님이 되어 주겠다고 교육청에 오셨다고 한 그분이다.
세상에는 아직도 좋은 목표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어쩜 난 이런 사람들을 만나려고 그렇게 헤매었나 모르겠다.
육아는 외롭다. 출산도 혼자 하듯,
아이들에게 엄마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때로 그 책임감이 무겁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는 외침을 들을 때면 힘이 난다.
은행빚 방빚에 시달리는 게 나만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역설적이지만 힘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나는 비슷한 고민을 짊어진 사람들과 어찌 저지 버티며 살아나겠지.
그나저나 이 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썩은 세력들은 안간힘을 내어 자신들의 잇속만을 챙기려 하는 게 뉴스로 보여서 안 그래도 푸념 많은 내게 짐을 보탠다.
애써 눈을 돌리려 해도 불안을 조장하는 뉴스에 눈이 간다.
엄마 우리 전쟁 나는 거야? 하며 갑자기 해피가 물었던 밤 난 얼마나 가슴이 쿵덕쿵덕했던가? 가짜 뉴스에 놀랬던 네가 내게 물었을 뿐인 걸,
친정 엄마도 한 동안은 참치캔이며 뭐며 집에 뭐를 좀 쟁여 놓아야 하냐며 걱정하던 게 떠올랐다.
죄 없는 서민을 불안에 떨게 해서 그들이 얻는 이득이 과연 무엇일까?러시아와 결속하는 북한과 트럼프의 당선은? 계산되지 않는 복잡한 현상들이 얽힌 실타래보다 더 하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칭송하는 각종 문화 예술 분야의 업적으로 그 위상은 날로 높아간다는데, 거꾸로 시민들의 눈을 가리고 아웅 하는 세력들과 공존할 수 있을까?
그래서 최재천 교수님은 말했다. 책에서 그랬던가 유튜브에서 그랬던가.
우리 국민들은 참을성이 없고, 모든 분야에서 출중한 성취를 이뤄낸 만큼, 정치 역시 빠른 시일 내로 '정상'의 상태를 회복하려고 힘을 모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어찌나 위안이 되던지. 찬장 구석에 넣어 놓았던 약을 다시 꺼내지 않아도 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