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일어섰다, 풀처럼.
억압, 주눅, 평균 지향, 중간만 하라. 우리는 모이면 평균치를 밑도는 조용함을 미덕으로 삼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드러내고 싶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적절히 숨겨야 겸손하다 하는 사회를 살려면 고도로 계산된 눈치싸움이 필수이니.
표현하고 싶어! 외치는 너에게 실로 잔혹하고 가혹한 현실이다. 너 좀 나대는거 알지? 작년 애정을 듬뿍 나눠 준 담임마저 슬며시 네게만 챙겨준 조언이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왕, 정의를 지향하고, 나쁜 길을 가는 친구를 선도하고 싶어하는 편. 너를 꽤 세심히 파악하셨다. 그리고 넌 수업 시간에는 가능한 손을 들고 의견을 내거나 질문을 한다. 이것이 나댐이라 정의하는 세상에서라면 그래 나대라 딸아, 평생 나대고 살자. 괜찮다.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모나서 정맞지 말고, 이것은 좀 모순인가. 그러나, 주눅들어서 수업 빨리 끝나기만 바라는 아이들 눈치보고 살 필요없으니까, 눈 딱 감고 하고 싶은거 하고 살자.
해맑게 너답게 살기를 바라는데 그렇게 살아온 네가 요 몇 해동안 마음으로 받은 상처가 깊다.
세상이 유죄지 네 순수는 무죄다. 나는 그렇게 주장한다. 거북이로 살 수 없다, 천적때문에 등딱지에 얼굴만 숨기는 것은 죽은 것과 뭐가 다를까. 하루를 살아도 사는 것처럼 자기를 지키고 또 살아냈다. 그 많은 상황을 겪고도 너는 너이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 오늘까지도.
네가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에서 Die With A Smile 를 따라 듣다 코가 시큰했다.
But since I survived, I realized wherever you go, that's where I'll follow. Nobody's promised tomorrow so I'm gonna love you every night like it's the last night. If the world was ending I'd wanna be next to you If the party was over and our time on Earth was through, I'd wanna hold you just for a while. And die with a smile.
Die With A Smile, Sung by Lady Gaga & Bruno Mars
곁에서, 늘 너를 응원한다, 그게 영원히 내가 다해야 할 의무요, 임무다.
우리가 멀리 떠나온 지금, 그곳에서 그때가 이제서야 그리움으로 치환되었다. 상처를 다시 마주하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기포야 자연스러운 거지만, 눈물정도는 가끔 숨길 힘도 생겼다. 그래도 TPO를 따져가며 걍 터뜨리기도 한다. 그렇게 살 힘을 얻어야 하니까.
아이가 스승이라더니 다 맞는 말이다.
너는 나보다 더 빨리 누웠지만 나보다 더 빨리 일어섰다. 풀처럼.
네가 그랬지 어제, 엄마 이제 난 중심이 생겼어라고. 그러고는 주옥같은 지혜를 나누어 준다.
무조건 자기를 중심으로 살아갈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은 계속할 것.
관계에 지나치게 집중하진 말 것.
돌덩이보다 무겁고 두꺼운 심리학 책 보다 너라는 책이 더 심오하다.
스스로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네가 견뎌야만 했던 고독한 괴로움을 나는 짐작할 뿐.
어리석지만 네가 걸어간 그 길을 내가 느릿느릿 따라간다.
기억하고 싶은 글을 여기에 적어 놓는다. 길다. 그치만 참 좋다.
......아는 것이 인격이 될 때 비로소 나와 세상과 관계가 맺어진다.
관계는 갈등을 불러온다. 사람들은 갈등을 조정하고 조절하여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일어나는데 그 생각을 정리하는 게 삶이고 예술이고 정치고 교육이다. 삶을 정리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간다.
새로운 것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새로움이 예술적일 때 사람들은 감동한다.
감동은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나아가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감동하는 것들은 생명력이 있다. 생명력이 있는 것들은 자연에 있다.
한 그루의 나무는 언제 보아도 완성되어 있고, 언제 보아도 새롭다. 수천 년이 흘러도 오늘 새로워 보이는 그림, 시, 음악, 그게 명품이다.
왜 한 그루의 나무는 언제 보아도 완성되어 있고 언제 보아도 새로울까. 그것은 나무가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딴 곳에 있지 않다.
그대 곁에 있는 나무 한 그루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그 나무에서 새로 일어나는 일에 감동하는 일상,
삶이 곧 예술인 '삶의 예술'이다.
나무가 하는 말을 받아쓰다, 81쪽(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시 , 김용택 지음, 출판사 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