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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일기] 커리어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

by 최호진

부장과의 회의


연휴가 끝나자마자 부장이 직원 몇 명을 회의실로 소집했다. 앉자마자 본인이 연휴 기간 동안 구상했던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기존에 우리가 했던 일과 사뭇 다른 유형의 일이었다. 아이디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보였다. 넘어야 할 산도 많아 보였고.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렵고 힘들고의 문제를 떠나 아이디어가 별로였다. 적어도 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속 마음을 감추려 노력했지만 표정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조용히 입다물고 싶었는데, 자꾸 나에게 의견을 물어 보신다. 어쩔 수 없이 완곡하게 내 의견을 피력했다. 예의를 갖춰가며.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것 같긴 한데, 우리 팀 업무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름 반대의 의사를 표현한다고 했는데 잘 먹히지 않는다. 나의 의견과 관계 없이 부장은 이 사업을 진행하고 싶은 듯 했다. 그리고 자꾸 내게 검토해 보라고 지시를 내리려 했다. 나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몇몇 있었지만 뭔가 나에게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잠깐 사이지만 여러 고민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답을 내리기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럴 때 가장 정확한 건 솔직함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 제 상황으로는 그 일까지 하기는 버거워 보입니다."


쉽지 않은 대답이었다. 내가 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게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부장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내가 그리고 우리 팀에서 하는 게 맞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내가 끌리지 않은 일을 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기적이게도 나는 나 자신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도저히 내 의견을 돌려서 이야기 해서는 안될 거 같아 정확하게 내 속 마음을 표현했다. 떨리는 마음과 후폭풍에 대한 걱정을 숨겨가며.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돌았고, 결국 전체 기획을 맡은 파트에서 간단하게 시장 조사를 하는 선에서 회의는 정리되었다. 물론 회의는 끝이 났지만 찜찜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내 의견을 정확히 말하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아 보였다.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거절은 했지만 찜찜했던 회의를 한 다음 날 아침,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일어나자마자 달리기를 하러 한강에 나갔다. 아내가 에어팟을 선물로 사 준 덕분에 3월부터는 세바시 강의를 들으며 달리기를 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동기부여 강의도 들으니 아침 달리기가 충만해진 느낌이었다.(그래봤자 이틀째) 출발할 때는 내가 원하는 강의를 듣고 돌아 올 때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알아서 정해주는 강의를 듣는 형태로 30분 정도를 달렸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돌아올 때 유튜브가 내게 찜해준 강의를 들으며 전날 회의의 찜찜한 기운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https://youtu.be/b1lDEKGC2lc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내게 큐레이팅된 동기 부여 강의는 구글 상무인 김현우라는 분이 2018년에 한 강의였다. 강의 중 강사가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이야기가 특히 귀에 꽂혔다.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세요. 이럴 때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일, 배울 수 있는 일이 생기고 그렇게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일들을 내가 굉장히 현명하고 이기적으로 얻어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했을 때 나만의 커리어 스토리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현우 구글 상무 "마음껏 꿈꾸고 계획하고 실행하라" 세바시 강의 중에서


주인의식이라는 말에 사실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다. 회사에서 임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하는 말에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주인의식을 가지냐고" 구시렁 거릴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날 강연에서 구글 상무가 말하는 주인의식은 다르게 들렸다. 우리에게 필요한 주인의식은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이 아닌 "나의 커리어" 그리고 "내 삶"에 대한 주인의식이었다.


어떻게 하면 내 커리어와 내 삶에 주인의식을 갖고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특히나 회사 생활에서는 그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 자꾸 강의에서 한 주인의식이란 말이 맴돌았다.


한참을 생각하다보니 중요한 게 보였다.”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한 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매번 No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니다 싶을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어야 내가 주도하는 커리어와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됐다.


부장과의 회의에서 내가 검토하기 어렵다고 말한 것도 나의 커리어에 대한 주인의식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덕분에 찜찜한 기분을 씻을 수 있었다. 내가 주도하는 나의 일에서 부장이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커리어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바탕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노”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노”라고 말하는 게 먹히기 위해서는 수많은 “Yes”도 필요하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신뢰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다 나의 삶을 그리고 커리어를 주인되게 가꿔가는 길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아주 조금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꼭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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