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눈치보지 말고 먹읍시다
"달똥할게요"
복직을 하고 새로운 용어를 접했다. 사람들과 점심약속을 잡으면 다들 "달똥"하겠단다. 나만 모르는 신조어를 회사 사람들이 쓰는 것 같아 신기했다. 요즘 MZ세대들이 쓰는 말인줄 알았는데 내 또래의 사람들도 "달똥"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뭔말인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달똥은 "달력에 동그라미 친다"는 말을 귀엽게 줄인 것이라고 한다. 검색을 해도 잘 안나오는 걸 보니 우리 회사 사람들만 쓰는 용어 같기도 했다. 뜻을 알고나니 "달똥"이라는 말이 정겹게 들렸다. 그 마음에서는 소중한 점심시간을 잘 써보려는사람들의 마음도 보였다. 한 시간의 휴식 타임이 직장인들에게는 꿀맛같은 시간이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꿀맛같은 점심시간이 하루의 일과에서 너무나 중요하다. 오전의 힘듦을 잊고 오후에 활력을 위한 충전을 하는 시간이 바로 점심시간이다. 특히 사람들과 함께 하는 점심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함께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떨면 에너지가 쌓이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래서 나는 항상 "달똥"을 한다. 점심시간에 맛있는 것을 먹으며 떠드는 자유를 느끼고 싶어서 말이다. 코로나라 조심스럽지만 한 두명의 지인들과 점심을 먹으며 회사에서의 애환을 씻어 버린다. 물론 그 씻김이 한 시간이 채 안간다는 게 문제지만.
복직을 하고 달라진 것도 있다.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가급적 회사 이야기를 줄이려고 한다는 게 바로 그 차이다. 특히 상사의 뒷담화는 삼가려고 노력중이다. (물론 하긴 한다. 안한다는 게 아니라 안하려고 노력중이다라고 쓰니 오해는 말아주시길) 대신 그 사이 회사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달리기, 글쓰기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 또한 자신들의 취미에 대한 이야기로 응수한다. 회사가 주제가 아니더라도 회사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요즘 회사 사람들과의 점심 시간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꼭 회사 사람들과만 점심을 하는 건 아니다. 가끔씩 손님들이 멀리서 찾아올 때가 있다. 지난 화요일 점심 때도 그랬다. 먼 곳에서 반가운 손님이 오셨다. 은행을 다니다 지금은 휴직중인 분이셨다. 블로그를 통해 인연을 맺었는데 한 번 뵙고 싶었다. 블로그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한 번 놀러오라고 말씀드렸더니 파주에서 광화문까지 날을 잡아 놀러오셨다. 나를 보러!
멀리서 찾아온 손님에게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예의라 생각하고 조금 일찍 사무실을 나갔다. 눈치가 보였지만 그런 눈치는 업무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혼자서 하고 말이다. 사무실에서 나와 점심시간 동안 나를 찾아온 반가운 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왜 휴직을 했는지, 지금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고민은 무엇인지 처음 만났지만 어색할 틈도 없이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같은 고민을 하고 비슷한 경험을 한 사이라 그런지 공감대가 형성되는 듯 했다. 그렇게 한시간 남짓한 시간을 신나게 떠들며 점심시간을 보냈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 휴직을 했을 때 배우고 싶은 사람들의 회사 앞으로 찾아가 그들과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게 생각났다. 그들에게 참 많은 것을 받았다. 심지어 점심값도 그들이 내줬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점심값을 내고 왔다. 그렇게라도 내가 휴직 때 받았던 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문제는 내가 받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과연 내가 그런 깜냥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것으로도 충분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멀리서 찾아온 분들이 감사할 따름이다.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8시간 근무를 하는 나는 (야근은 가급적 안한다) 하루 업무의 딱 가운데 시간에 점심을 먹는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점심 시간은 단지 밥을 먹는 시간 그 이상이다. 하루의 중간 타임에 호흡을 가다듬고 새롭게 힘을 불어 넣는 시간이기도 하고, 좋은 사람들과 만나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점심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노력 중이다. 굳이 어려운 사람들과 점심을 먹으며 뻣뻣하게 보내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여유있고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그렇다고 매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가끔, 아주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벗어사 카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길 때도 있다. 복잡했던 생각들도 정리하고 책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에게 때로는 "고독"도 필요하니까.
어떻게 보내든 점심시간 한 시간을 내 것으로 보내겠다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단 한시간을 잘 보내는 것도 회사 생활을 에너지 넘치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점심시간을 최대한 여유있게 (조금 시간을 오버할 지라도) 그리고 최대한 자유롭게 보내고 있다.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나의 권리를 즐기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