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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일기] 수다는 나의 힘

개선을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by 최호진

업무시간에 잡담금지라고요?


얼마 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타부서 부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전형적인 상향식 부장이었다. 위만 바라보는 부장이라는 말이다. 윗 사람에게만 잘 보이려고 애를 쓰지만, 아랫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잘 나간다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우리 조직은 아쉽게도 그런 사람들이 빠르게 윗자리에 올라가곤 한다. 아쉽지만 현실은 그렇다.


얼마 전 사람들과 그 부장에 대해 뒷담화를 까게 됐다. (안하려고 하는데, 자꾸 하게 된다. 반성하자) 여러 이상한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압권인 게 하나 있었다. 업무시간에 잡담을 하지 말라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다소 황당했다. 잡담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호했을 뿐더러,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 시간도 아닐텐데 직원들이 떠드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정확한 상황도 잘 모르거니와, 어떤 맥락으로 말했는지에 따라 아 다르고 어 다를 수 있는 이야기여서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에 발끈하고 말았다. 그 부서 직원도 아닌데 말이다.


이유는 하나였다. 일을 하면서 잡담을 안하는 내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게 그런 요구를 했다면 나에게 엄청나게 가혹한 형벌일 것 같았다. 아니면 엄청난 반항을 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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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말을 참나요?


전형적인 외향인인 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듣는 것도 좋지만 말하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중학교 때 talkative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그 단어조차 마음에 들었다. 실제의 의미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나는 말이 많다는 의미의 저 단어가 나를 표현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아내와 연애를 하고 결혼생활을 이어갈 때도 말을 듣기 보다는 하는 편이 많았다. 아내와 잘 맞았던 것도 아내가 나의 말을 잘 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회사 생활에서도 나의 성향은 그대로 이어졌다. 일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물론 진짜 집중할 때에는 아주 가끔씩 말을 안할 때도 있었지만 간단한 일처리를 할 때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항상 시끄러웠다. 누군가는 나 때문에 업무 집중이 안됐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로서는 수다를 참는 게 업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화의 주제를 신변잡기적인 것으로 이어간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주제는 업무에 관한 것이었다. 일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불편한 점들도 나왔고, 그 속에서 우리가 개선해야 할 포인트도 짚어낼 수 있었다.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는 나에게 일을 진행하는 윤활유 같은 것이었다. 혼자로 해결할 수 없는 이슈들을 사람들과 나누며 가장 적합한 솔루션을 찾았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 수다가 큰 힘이 되었다. 아무래도 엄숙한 회의보다는 수다가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렇게 수다가 고귀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금하라고 했다 하니 화가 난 건 당연한 이치였다. 물론 나에게 그것을 금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큰 거 말고 작은 것을 하나씩 하면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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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우리나라에서 카이젠 경영이 화두에 오른 적이 있다. 도요타의 경영방식이라 해서 많은 기업들이 이 방식을 차용해 우리나라 기업에 적용했다. 카이젠은 개선을 뜻하는 일본어이다.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작은 규모의 변화를 실천함으로써 조직과 제품, 서비스, 인적자원 등의 다양한 영역을 개선 또는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CIO Korea 기사 참조)


나 또한 회사 회장님으로부터 카이젠이라는 화두를 여러 번 들었다.(애석하지만 우리 회사 회장은 말로만 카이젠을 외치는 스타일이었다) 일본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 용어를 나 또한 좋아했다. 그 이유는 바로 "개선"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더 낫게 만든다는 뜻을 지닌 이 말은, 현재의 상황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것을 없애고 싸그리 바꿔버리는 개혁과는 다른 개념이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나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에는 개혁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조금씩 바꿔가는 점진적인 개선의 작업이 더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야 말로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인정하며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다야 말로 개선점을 찾아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불편함을 이해하면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을 받아 들이는 것이야 말로 옆 사람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다가 중심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수다를 떨어야 일이 더 잘된답니다.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여자 배구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 몇 번 울컥했다. 한일전에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터키전에서는 높은 블록킹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스파이크를 때려내는 모습에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모습이었다.


"수지야 무조건 레프트야. 무조건 레프트"


김연경 선수가 일본과의 경기에서 5세트 13: 14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수지 선수에게 던진 말이었다. 그리고 김수지 선수는 레프트에 집중해 블록킹을 해서 공을 터치했고, 이를 김연경선수가 수비하고 박정아 선수가 스파이크를 때려 듀스를 만들 수 있었다. 서로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을 예측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것이 승리로 발판이 될 수 있었다.


꼭 올림픽이 아니어도 대화는 정말 중요하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그 속에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야 말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일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니 직원들이 수다를 떠는 것에 대해서 뭐라 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다 잘 되려고 하는 이야기니까 직원들의 가능성을 믿고 수다를 격려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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